주짓수 시합에서 큰 부상을 당한 이유로 아픈 몸에 신경 쓰다 보니 글 쓸 때 집중이 되지 않아 펜을 잡지 못했다. 그렇게 한, 두 달이 지나고 서서히 몸은 좋아졌다. 슬슬 글을 좀 써볼까 했는데 얼마 전부터 시작한 새벽 검도가 글쓰기 발목을 잡고 있다.
회사 동호회에서 아침 6~7시에 하는 검도인데 검도란 운동은 처음 하다 보니 이것저것 알아갈게 많아 아직도 글쓰기는 휴장 중이다. 8월 달에 전국 생활체육 유도대회까지 출전할 거 같아 아무래도 본격적인 글쓰기는 휴가까지 다녀온 9월이나 될 거 같다.
이번 글의 제목은 '시'에 관한 건데 쓸데없는 서설이 너무 길어진 거 같다.
저번 주부터 전남도립도서관(전남 무안 소재)에서 운영하는 시 창작 강의를 듣고 있다. 이 수업은 심화반이지만 그전 초급반과 연계된 수업이다.
강사는 우리 지역 시인이신 박성민 시인님이다. 얼마 전에 [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있는가]라는 신간 시집도 출판하신 멋진 시인이다.
강의 제목은 [당신도 시를 '잘' 쓸 수 있다]이다. 수강생은 대략 20여 명 정도이고 대부분이 연세가 있으신 분이다. 40대 중반인 내가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나이 좀 먹은 축에 드는데 여기서는 '젊은 사람'으로 불린다.
오랜만에 젊은 사람으로 통하니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하하하
첫 시간은 '사랑 시 쓰기'에 관해 공부를 했다. 선생님이 준비한 자료에 사랑에 관한 시들이 여러 편 적혀있었다.(연인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내가 알고 있던 시들도 있고 처음 본 시도 있었다. 강의 자료에 적혀있는 시들을 수강생들이 돌아가며 읽으면 선생님이 시 소개와 시를 쓰는 방법 등을 설명해 주셨다.
두 시간의 수업시간 중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다음 시간에는 그 시들 중에서 가장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를 뽑아 그 이유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송찬호 시인의 [찔레꽃]이라는 시가 제일 좋았다. 처음 본 시였고 송찬호 시인님도 선생님 소개로 처음 알게 된 시인이었다.
찔레꽃 /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했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렇데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얫어라 벙어리처럼 하얫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시도 올려본다.
내가 이 시가 참 좋았던 이유는 사랑하는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보내야 하는 그 가슴 애절함이 너무나 잘 표현한 듯했다. 가슴 아파 밖에 나가기도 싫어 눈썹까지 밀었고, 시간이 지나면 가슴속에서 서서히 잊힐 거라 생각했던 그녀였을 것이다. 신부가 찔레나무 숲에 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마도 자신을 잊고 잘사라고 써져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편지를 다 읽어 버리면 사랑하는 그녀는 영영 떠나버릴 거 같아 차마 다 읽지도 못했다.
세월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와 오래된 사기의 흰빛은 희미한데, 그날의 찔레꽃도 이십 수년이 지난 찔레꽃도, 그때의 마음도 이십 수년이 지난 지금의 그의 마음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오월이 뱀이 되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피치 못해 내줘야 했던 그녀를 그리워하는 오월의 뱀이 되었다.
시를 읽은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을 다르지만 나는 이 [찔레꽃]이라는 시가 수업시간 내내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른 분들도 가장 감명받은 시를 뽑았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어떤 연세 지긋하신 어머님께서는 시를 선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울컥해지셨다. 읽은 시에서 그동안 자신의 살아온 삶을 볼 수 있었다고 하셨다. 분위기도 숙연해졌다.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는 알 수는 없지만 시를 통해서 그 삶이 질곡 많았고 고난스러웠을 것이라는 걸 대략 떠올릴 수 있었다.
또한 분은 셀러리맨으로 은퇴하고 노후를 즐기는 아버님이셨는데 [황지우 시인의 시]를 말하며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그동안 직장 생활하며 본인이 느꼈던 애환을 말씀하셨다.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는 그 어르신은 '나 이렇게 살았습니다.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성공은 못했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50대 중반의 아주머니는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라는 시를 말씀하셨다.
이 시는 본인이 참 좋아하는 시라고, 자신이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때 이 시가 그녀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었던 시라고 말씀하셨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앞만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는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랬다. 자신의 너무나 아팠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말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분의 얼굴이 궁금해 뒤를 돌아봤다. 평범해 보이는 아주머니셨다. 그분의 얼굴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해 보였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가슴 한편이 울컥해졌다. 우리의 삶은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다. 항상 행복한 게 아니라 대부분 불행하고 가끔 행복한 게 맞을 것이다.
그 가끔의 행복 그리고 위안을 시가 만들어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의 짧은 수업으로 시를 곧바로 잘 쓰게 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두 시간의 시간에 어떤 시들이 독자로 하여금 가슴을 울리게 하고, 자신의 아련한 젊음이 아쉬워 눈물짓게 하고, 어떤 시가 머리 히끗한 노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젊은이보다 우렁차게 자신의 삶을 얘기할 수 있고, 어떤 시가 자기 인생을 접으려고 했던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짧은 두 시간의 수업으로 시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내가 시를 좋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