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4 (효라빠 장편 소설)
주형은 성균에 대한 사건을 조회 시간에 들었다. 주형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직원들은 충격을 받았다. 교도소 안에서 수용자의 돌발적인 폭력 행사로 직원이 폭행당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교도소 밖에서 테러를 당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팀장의 말에 의하면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성균이 대처를 잘해 많이 다치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병가 내고 치료 중인 성균이 걱정 됐다. 만약 자신에게 그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렇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팀장은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보안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기자들의 연락이 올 수도 있으니 특히 조심하라고 했다. 가족에게도 일절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도 내려졌다. 지시가 팀장 선에서 나온 건 아닐 것이다. 교도소 내에서 발생하는 수용자에 의한 직원 폭행 사건뿐만 아니라 수용자끼리의 싸움 등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담장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윗사람들은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주형은 말단 공무원이라 보안과장이나 소장 등 높은 자리에 올라가 보지 못해 서인지 무슨 일만 생기면 꽁꽁 싸매기만 하려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국민들도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폭행과 살해위협까지 받으면서 고생한다는 걸 아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었다.
어김없이 입단속 잘하라는 팀장의 교육으로 조회는 끝났다. 주형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수용자에게 보복 당해 병원에서 치료 중인 동료보다 자신의 자리만 염려하는 높은 분들의 행태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전국 교도소에서 수많은 직원이 수용자에게 폭행당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과 욕설 등 정신적 폭력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근무하며 폭행당하는 직원들을 위한 보호조치는 거의 없었다. 직원 폭행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사례 공문 내려 보내고 조심하라는 게 전부였다. 위에서는 할거 했으니 밑의 너희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가라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직원이 수용자를 폭행했다는 외부 민원이 접수되면 위에서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 칼을 들고 내려왔다. 같은 동료라고 봐주는 건 없었다. 법규정에 의해 철저하게 조사하는 것 이상으로 해당 근무자를 치욕스럽게 조사했다.
그 모습은 엄정한 감찰관의 모습이 아니라 뱀의 머리를 지키기 위해 꼬리를 자르려는 이기적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노조나 기타 항변할 단체가 없는 하위 직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교도관은 공안직으로 분류되어 있어 법원이나 다른 행정직 공무원처럼 노조를 결성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칼자루를 쥐고 내려온 그들의 조사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여겨 질지 모르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아래 직원들은 아무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혹시 모르게 닥쳐 올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걸 알면서도 아무 말하지 못하고 고개 숙이며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주형은 또 한 번 비참한 마음뿐이었다.
순간 테러 당하고 병원에서 치료 중인 성균이 더욱 안타깝고 불쌍해 보였다. 성균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고, 많이 다치진 않았다고 하지만 그의 몸상태가 걱정됐다.
이대현과 그 패거리는 조사 수용되어 특별사법경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특별사법경찰관은 살인교사로 검찰에 송치할 거라고 했다. 사건을 처음 제보 해준 곽태성이 떠올랐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무술 유단자인 김성균 주임이라 해도 무탈하게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주형은 태성에게 감사의 표시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인터폰으로 그를 불렀다.
[1800번 곽태성 담당실로 오세요. 면담할 게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곽태성이 담당실로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앳되며 순박하게 생긴 얼굴, 보육원에서 자라지 않고 따뜻한 가정에 자랐다면 교도소에 들어올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앉아."
주형이 플라스틱 의자를 내주며 자리를 권했다.
"네."
"저번에 네가 제보한 거 있지? 목안 사거리파 애들이 이상하다고 한 말."
"네."
태성이 짧게 답하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주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다. 네 제보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정말 김성균 주임님을 해치려고 했습니까?"
태성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다행히 주임님이 대처를 잘해 큰 사고는 없었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쨌는 네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됐어."
"아닙니다. 김성균 주임님은 제가 잘 모르지만 부장님이 저에게 잘해주셔서 당연히 말해야겠더라고요. 평상시 부장님이 저를 챙겨 주신 거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조직들이 괴롭힐 때도 그렇고 영치금 떨어졌을 때 한 번씩 넣어 주신 것도 그렇고.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아본 건 주임님이 처음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사고 쳐 경찰에 잡히면 친구들은 부모님이 경찰서에 찾아와 혼내는 게 저는 너무 부러웠어요. 제 주위에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거든요. 사회 나와 아르바이트나 짧은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저에게 관심 가져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정하게 말 걸어준 사람은 부장님이 처음이었습니다. 부장님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저한테는 정말 큰 사랑이었습니다. 가끔 혼내시며 소리칠 때도 기분 좋았습니다. 저를 아낀다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 졌으니까요. 부장님! 저 다음 주면 만기 출소합니다. 앞으로 힘들거나 안 좋은 마음이 생기면 부장님이 해주신 말씀과 따듯한 관심 떠 올리며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태성이 울먹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주형은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봤다.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그 말을 듣고 있네. 뭔가 이상한데. 하하"
주형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진심입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 만기가 얼마 안 남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다음 주 인지는 몰랐네. 나가면 뭐 할 거야? 갈 곳은 있어?"
"직업훈련과에서 하는 취업 프로그램 신청했습니다. 담당 계장님 말씀으로는 근처 숙식 제공해 주는 조선소에 취업시켜 준다니 그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가서 부딪쳐 봐야죠."
결연하게 말하는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일단 뭐든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욕심만 안 내면 돼. 사람 사는 거 별거 없다. 욕심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망치게 하는 거야.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 누구는 명품 백 메고, 누구는 외제차 타고 그런 건 아무 필요 없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 만나 가정 꾸려 아이 낳고 알콩달콩 사는 게 행복인 거야. 돈은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거지만 돈이 행복을 위해서 전부인 건 아니야. 돈은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말 안 할 정도만 있으면 돼. 너는 아직 나이 어리니까 지금 밖으로 나가도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내 말 명심해. 다시 말하지만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 알았어?"
주형이 친동생에게 말하듯 조언했다.
"네. 부장님 보란 듯이 열심히 살겠습니다."
"다시는 징역에서 안 만나는 거다? 하하"
"약속하겠습니다."
태성이 방으로 들어가고 담당실엔 주형만 남았다.
그의 진심어림 반성과 앞으로 잘 살아가겠다는 다짐에 주형은 이게 교정교화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따뜻하게 반겨 줄 가족 없이 사회로 나가 방황하고,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오는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태성의 모습은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다. 주형이 수용자의 말을 믿지 못할 땐 자신의 마음속에 순수성이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직접 경험해 생긴 거라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씁쓸해졌지만 속는 셈 치고 한번 더 믿어 보기로 했다.
곽태성 같은 부모 없는 어린 수용자들을 보면 몇 년 전 회사 봉사 동아리 직원들과 크리스마스 봉사 활동 갔을 때가 떠올랐다. 봉사 동아리 회원은 아니었지만 인원이 부족해 친한 선배의 부탁으로 자리를 메꾸기 위해 서였다.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과 바비큐 장비를 챙겨 도착했다. 간단하게 오전 행사를 끝내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숯불 위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는 삼겹살과 갈비를 보고 군침을 흘렸다. 집어 먹을 만큼 익었지만 눈치를 보느라 누구 하나 먹지 못했다. 그러다 담당 선생님이 먹으라고 하자 허겁지겁 먹었다. 배를 채운 후 몇몇 아이들이 주형의 팔을 잡고 서로 안기려고 했다.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몰랐다. 같이 간 선배가 귀띔을 해줬다. 아이들이 부모의 정을 받지 못해 그러는 거라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그만 울컥해졌다.
주형은 보육원을 가보기 전만 해도 이제는 부모 없는 아이들이 없는 줄 알았다. 옛날 티브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아이들이 많았다. 그때 눈치 살피며 정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서 자신이 세상을 잘못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로 교도소에 들어오는 소년수나 보육원에서 생활했다는 수용자를 볼 때면 자신의 팔에 매달려 한 번이라도 더 안겨 보려고 다투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태성도 그런 곳에서 자란 아이였다.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태성을 버리고 떠났고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태성을 보육원에 맡겼다. 아버지는 겨울이 지나면 데리러 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보육원에서 자라며 범죄 저질러 소년교도소까지 다녀왔다. 부모 있는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기엔 항상 돈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빈 차나 빈 집을 털고 다니기 시작했다. 몇 번의 교도소 수감을 하고 나자 어느덧 소년수에서 성인수가 되어 있었다.
교도소 안에서는 착실하게 생활했다. 죄짓고 들어온 범죄자가 교도소 안에서 착실하다는 게 이해 안 되지만 규율도 잘 지키고 성실하게 살았다. 주변 사람들과도 잘 지냈고 사동 도우미 역할을 하면서 몸이 불편한 수용자나 다른 사람들도 잘 챙겼다. 그리고 항상 밝은 모습이었다. 주형은 그를 볼 때마다 교도소에서는 저렇게 밝게 생활하는데 왜 사회만 나가면 범죄를 저지르고 또 들어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돌봐 줄 가족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집 나간 엄마는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고, 어린 태성을 보육원에 맡겼던 아빠도 이제는 지워 버렸다.
주변엔 그를 돌봐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교도소에서 지원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숙식 제공하는 조선소에 취업되었다는 거였다. 주형은 이번엔 제발 사회에 잘 적응해서 새로운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주형은 성균의 병실에 들렀다.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던 성균이 문 열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형이 들어오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 이게 누구야. 이 부장 아니야?"
"몸은 괜찮으세요?"
병원 매점에서 사 온 음료수 박스를 침대 옆에 놓으며 말했다. 성균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며칠 깍지 않은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만 빼면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팔에 꽂고 있어야 할 수액도 자기가 빼 버렸는지 바늘이 매트리스 옆에 떨어져 있었다.
"어때 보여? "
"괜찮아 보이시는데요?"
"그렇게 보이면 괜찮은 거겠지. 하하. 그냥 와도 되는데 뭘 음료수까지 사 왔어?"
"빈손으로 오기 그렇잖아요."
심각하게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밝아 보였다.
"자네가 생명의 은인이니까 고맙다고 먼저 인사했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씨발~ 자네 아니었으면 병실이 아니라 장례식장 냉장고에 누워 있을 뻔했잖아. 킥킥"
성균이 웃으며 말은 하지만 무언가 언짢은지 욕을 섞어 대답했다. 거칠게 말하지만 얼굴 표정은 웃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주형은 성균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행히 주임 님이나 되니까 별 탈 없이 끝났지 저 같았으면 제대로 당했을 겁니다."
"자네한테는 나 같은 일이 안 생기겠지. 하하. 회사는 별일 없지? 분위기는 어때?"
"직원들이 다 놀랬죠. 주임님같이 테러당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요. 위에서 보안 철저히 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직원들도 자기들끼리만 숙덕숙덕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그럴 줄 알았다. 우리 같은 것들 죽어 나가도 윗대가리들 눈 하나 깜빡하겠어. 지들 승진이나 출세에 지장 없으면 된 거지. 씨발~ 좆같네~ 좆같아!"
성균이 짜증 났는지 욕을 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침대 모서리에 던졌다. 리모컨이 두세 번 구르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탁~' 하는 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성균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주형은 괜한 말을 했나 싶었다. 대충 얼버무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 부장. 미안해. 자네한테 성질낸 건 아니야. 윗분들 하는 게 짜증 나서 순간 욱했네. 그리고 이제는 말 편하게 하지? 우리가 한 두 해 본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주임 님, 이 부장 하겠어. 앞으로는 형, 동생 하자?"
화통한 성격의 성균이 주형에게 이 부장 이 부장 하려니 답답했었다.
"그러세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주형이 얼떨결에 답했다. 하지만 주형의 성격상 바로 형님이나 형이라는 호칭은 못할 것 같았다.
"주형아. 내가 십 년 넘게 교도관 생활하면서 어쩔 때 제일 열받았는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요"
"한 번 맞춰봐. 문제 냈는데 바로 포기하면 재미없잖아."
성균이 화나 있는 듯하면서도 웃으며 말했다. 주형은 이번에도 성균이 농담으로 하는 건지 진짜 화가 나서 그러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상황을 초월해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용자랑 싸웠을 때 아닐까요. 아니면 수용자한테 위해를 당했던가..."
"땡!"
"저는 그럴 거 같은데. 주임님은 아닌가 봅니다?"
성균이 형, 동생 하자고 했지만 주형의 입에서는 형님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윗 대가리들 하는 꼴이 어이없을 때 제일 짜증 나. 사고 터지면 자기들 승진에 누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어떻게 하면 꼬리 잘라 사건 덮으려 하고. 거기다 밑도 끝도 없는 공문 내려 보내 위에서는 이렇게 지시했으니 나머지는 너희들 책임이다 선이나 긋고. 얼마 전 독거 사동 수용자가 쇠창살에 목매달아 자살했다고 창틀에 촘촘한 방범 창 설치하라는 공문 내려온 거 봤지? 그거뿐이냐. 수용자 가 운동시간에 뛰다가 넘어져 다쳤다고 근무자들이 안전교육 안 시켜 관리 소홀이라는 경위서 받고, 다음부터는 무식하게 수용자 운동할 때 무조건 뛰지 못하게 하고"
"네"
"거기서 끝이면 말도 안 해. 요즘 수용자들 어떻게 지내냐? 요즘 징역이 징역이냐? 완전 수련회지. 아니다 고등학교 수련회도 요즘 교도소보다 더 빡셀거다. 살인, 강도, 강간하며 사기치고 들어온 것 들을 왜 이리 잘해주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일일이 다 말하려니 또 빡치네... 담에 얘기하자.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더 우울해지려고 그러네. 이번 사건 너한테 제보한 얘가 누구라고 했지? 뭔 태성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성균이 더 말하려다 짜증 나는지 말을 맺었다.
"곽태성입니다. 주임님 목숨 살린 건 제가 아니라 곽태성 같아요"
"뭐~ 어쨌든 네가 그놈 잘 챙겨줘서 내가 혜택을 보네. 하하하. 이게 다 네 덕이지"
"아닙니다."
주형이 칭찬에 부끄러운 듯 말을 얼버무리며 손에 들려있는 매실 음료수 병을 따 목을 축였다.
"출근하면 그 친구 불러 고맙다고 해야겠네"
"그게... 며칠 전에 출소했습니다."
"그래? 얼굴 보고 고맙다고 하려 했는데. 좀 서운한데"
"제가 주임님 입장 설명 해 줬습니다. 주임님 마음 알고 출소했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고. 걔는 어떤 애야?"
"나이는 20대 초반인데 절도로 1년 살았습니다. 큰 사고 치고 그런 건 아닌데 돈이 궁하면 주차되어 있는 차나 빈집을 털었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셔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소년수로도 잠깐 살았고요. 애가 심성은 착한데 꼭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더라고요."
"딱 보니 그놈 또 들어오겠다. 나한텐 고마운 일 해서 좋은 놈이지만...."
성균이 주형의 말을 한참 듣다가 냉정하게 말했다.
"나가면 잘 살아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징역 살면서 반성을 많이 한 것 같더라고요"
"우리 주형이 참 순수해. 하하"
성균이 방금 전까지 화 나 있더니 웃으며 주형에게 농담을 건넸다.
"네?"
"순진하다고. 아직도 수용자 말을 이렇게 잘 믿는 거 보니."
"믿는 거보다는... 걔가 정말 생활 잘했거든요. 나가서 새롭게 살아갈 계획도 있고요."
주형이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졌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당당하게 밀고 갈 자신이 없었다.
"걔 다시 들어 온다 에 내 손 모가지 건다. 킥킥"
성균이 영화 대사 흉내 내듯 말하며 소매를 걷어 손목을 보여 줬다. 주형은 말없이 성균만 바라봤다. 당당하게 말하는 성균을 보며 몇 년 후면 나도 저렇게 냉정해질까 싶었다. 마음이 공허해졌다. 태성이 새로운 사람으로 변할 거라 믿고 있는데, 성균과 대화해 봤자 이상한 소리만 들을 것 같아 대화를 돌렸다.
"주임님은 윗분들 하는 걸 보면서 직업에 대한 회의가 들으셨나 봐요?"
"회의? 무슨 회의? 간부회의? 킥"
성균이 썰렁한 농담을 던졌다. 주형은 너무 아재 개그라 접대용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이런 개그를 하는 사람이 있네요."
"미안 미안해. 병원에 누워 있다 보니 유머 감이 다 떨어져 버렸네. 빨리 감 주어야겠군. 하하. 내가 꼰대는 아니었는데. 회의라..."
성균이 농담을 마무리 짓고 주형의 질문에 잠시 눈을 감았다.
"윗 분들 처사에 열받는다고 하셨잖아요?"
"그거는 그냥 열받는 거고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원래 이기적이거든. 우리가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을 괜히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인간 본성인 이기심을 누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지. 여기만 그러겠어? 경찰, 군대, 일반 사기업 어디나 다 비슷해. 네가 아직 세상을 덜 살았나 보다. 우리 주형이 역시 순수해. 자네가 '회의'라고 하니 이 말을 해주고 싶네. 나는 이게 '회의' 일지 두려움 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이 수시로 들어."
"무슨 생각인데요?"
"자네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 피해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어? 사랑하는 내 부인이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내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 같은 내 딸이 강간을 당한다고 말이야"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 피해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있어?' 사랑하는 내 부인이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내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 같은 내 딸이 강간을 당한다고 말이야"
성균의 눈빛이 순간 싸늘해졌다.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있다 허리를 곧게 세웠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병실의 분위기가 팽창된 주먹의 혈관처럼 긴장 됐다.
"네?"
성균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형이 당황했다. 대답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 성균에게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살기가 두렵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줘야 해? 또 입에 담고 싶지 않은데."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습니다."
주형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는 아직... 그런 고민은 해본 적 없어 뭐라 말씀드리기가..."
주형이 말을 더듬었다.
"나는 왜 이런 말을 할거 같아?"
"글쎄......"
"교도관 생활 하면서 언제 회의가 들었냐고 물었지? 내 성격이 강성이라 잘 버텨 회의가 든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수용자에게 욕을 들었을 때, 주먹으로 맞았을 때 그럼에도 위에서는 아무것도 신경 써주지 않았을 때, 이번 사건처럼 죽을 뻔했을 때... 맞아 회의 많이 들었어. 그래도 이런 건 나에게 발생한 일이고 내가 교도관으로서 겪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방금 말한 데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 강도, 강간 등 범죄 피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가 징역형 받아 내가 일하는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가 가장 고민이 돼. 엄밀히 말하면 걱정이 된다고 해야겠지. 당연히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사람일은 모르잖아. 맨날 행복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만약 내가 말한 상황이 영화였다면 주인공이 범인을 체포해 교도소에 가는 걸로 끝이 나겠지. 범인은 그것으로 죗값 치르고. 내가 교도관이 아니어서 현재의 교도소가 어떤 곳인지 몰랐다면, 나도 범죄자가 교도소에 들어가 자유를 박탈 당한채 구금되어 있는 것으로 법의 의한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교도관이고 우리나라의 교도소가 어떤 곳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거지.
여자를 강간하고 들어와 놓고 사동에서 희희낙락 거리며 야한 잡지 보면서 나가서는 또 범죄 저지를 생각을 하고, 자기 부모를 살해한 인간쓰레기가 따뜻하게 난방되는 방에서 과자랑 제철 과일 구매해 먹으며 티브이를 보고, 수 백억 사기 친 사기꾼이 사기 친 돈은 짱박아 놓고 교도소에 들어와 몸으로 때운 후 출소해서는 호의호식하며 살아가고,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괴롭힌 조직 폭력배들이 방 안에서 교도관 몰래 운동을 하며 훈제 닭이나 참치 사 먹으며 몸 만들고. 자기가 잘못해서 징벌받은 수용자가 교도소 관련해서 말도 안 되는 정보공개를 청구해 직원들 괴롭히고... 더 말할까? 말 안 해도 자네도 잘 알고 있잖아. 요즘 징역이 얼마나 편한지. 그들을 볼 때마다 이게 죗값 치르는 건지 휴양을 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아. 모르지 내가 인권의식이 없어 그러는 건지. 나도 주변 사람들과 무난하게 지내는 사람 중 하난데 말이야. 하하.
어쨌든 영화에서는 죄짓고 교도소 들어가면 끝이 나지,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고통스러운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현실의 교도소는 그게 아니거든. 이들이 나와 직접 관련 없으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근무하는 곳에 내 가해자가 있다면 그냥 놔둘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해. 아직 답을 구하진 못했어. 제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야. 한 가지 정확한 건 그냥 참고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거란 거지. 어쩌면 죽여버릴 것 같기도 해. 내 어머니를 살해한 놈, 내 여자친구를 강간한 놈을 잔인하게 그것도 아주 잔인하 게.
.. 교도소에서 교도관에 의해 살인이 발생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가해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내막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 살인은 조금 따뜻하게 보이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게 아름다울 수 없지만 그런 사연 있는 살인이라면 나는 따뜻한 살인이라고 여길 거야.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나도 미지수지고 교도관인 내가 제복에서 수용자 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수용자가 되는 죗값을 치러야겠지. 모르지 스스로 죗값 하기 위해 자살해 버릴지."
성균의 눈빛이 활화산에서 내뿜는 용암처럼 불타올랐다. 주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눈 빛은 이글거렸지만 표정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흥분하지도 그렇다고 담담하지도 않았다. 주형은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긴장이 돼 손에 들고 있는 음료수 병에만 힘이 들어갔다.
"저는 아직 그런 고민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지. 내가 조금 이상한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생기지 말아야지. 그게 맞지."
주형의 당황한 모습에 성균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네..."
"이런 말 한다고 날 이상하게 보지 마. 나도 교도관 되기 전만 해도 아주 인권 친화적인 사람이었어. 하하. 그렇다고 지금 비 인간적이라는 건 아니지만. 예전엔 나도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게 있을 수 없고, 다른 형벌은 다 되돌릴 수 있지만 사형이란 벌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역사적으로도 '인혁당 사건'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 법을 이용해 사법살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교도관이 되기 전까지였어. 막상 교도관이 되어 교도소가 어떤 곳이고 죄짓고 들어온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니 사형제도는 꼭 필요하고 수용자의 인권보다는 피해자의 보호와 보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도 출정 근무할 때 법정 나가 보면 알잖아. 사람 한 명 죽였다고 사형 선고 안 해. 정말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죽여야 사형 선고 하는 거지. 그 정도 범죄를 저지르면 그게 사람이야? 인간쓰레기 아니 괴물이지. 그 괴물을 국가 세금으로 먹이고 입힌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사회에서는 돈 한 푼 없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데. 지금의 사형제도는 있으나 마나 한 형벌이지만, 만약 나와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대통령이 나와 괴물들을 정리한다고 하면 나는 사형실에서 죽음의 단추를 누를 의향도 있어. 그게 별거야.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닌데. 쓰레기를 치우고 괴물을 정리하는 건데."
성균의 말에는 자신만의 확신과 믿음이 차 있었다.
"네."
주형의 대답은 여전히 짧았고 성균의 표정은 변함없이 무덤덤했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신념을 잠시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교회 목사가 매주 하나님을 믿으라고 설교를 하듯 일상처럼 얘기했다.
그런 성균에 대해 주형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주형은 법을 근거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성균의 의견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성균의 눈을 보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성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주변 동료들에게서 인간쓰레기는 정리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으니까.
"그런 마음 가지고 수용자 대하려면 힘들지 않으세요?"
주형이 성균의 가슴속에 무언가 차 있는 것 같아 질문을 던졌다. 그런 증오심을 안고 근무하라면 자기는 도저히 못할 것 같았다.
"내가 힘들다고?"
"주임님 말씀 들어 보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복잡한 감정이 느껴져요."
"뭐가 복잡할까? 증오? 복수? 하하. 내가 교도관 하기 전 무슨 일 했는지 알아?"
"모르겠는데요"
성균이 자신의 전 직장에 대해 질문을 하자 주형이 머리를 갸우뚱했다.
"나 여기 들어오기 전에 신협 다녔어. 은행이지. 조금은 특이한. 내 업무는 주변 상가를 돌면서 돈을 수금하는 일이었어.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하루 종일 가게에서 장사하기 때문에 은행 갈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내가 직접 방문해 예금, 적금 등 번거로운 금융 업무를 처리해 주는 거지.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어. 땡볕이 내리쬐는 8월의 한 여름이었지. 얼마나 더운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의 안장이 뜨거워 살이 데일 정도였으니까. 그날은 습하기까지 했어. 오후가 되니 갈증이 나서 죽겠더라고.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길래 시원한 음료수 한 병 사 마시려고 주머니를 뒤졌어. 그런데 하필 외근 나오면서 지갑을 안 챙긴 거야. 목은 마를 대로 마르지 돈은 없지 정말 미치겠더군.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수를 훔쳐 먹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할 수 없었지 돈이 없었으니 꾹 참고 버틸 수밖에. 일이 끝나고 사무실에 도착해 가방을 여는데 그날 수금한 돈이 3천만 원 정도 들어 있는 거야. 그것도 현찰로. 그걸 보는데 그 많은 돈도 일이라고 여기니 돈이 돈으로 보이지 않더구나 무슨 말인 줄 알겠어?"
"......"
주형이 아무 말 없었다.
"내가 수용자를 볼 때 그런 심정이야. 뉴스에서 미성년자를 감금해 강간한 범죄자나 보험금 노리고 계획적으로 살인한 살인자를 보면 어때? '저런 죽일 놈들, 저게 인간이야?' 하겠지. 막상 교도소에 들어오면 어떻게 해? 그들은 우리가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되는 거지. 그 무덥던 날 손에 현금 가방이 있었지만 돈이라는 인식을 못해 꺼낼 생각을 못한 거와.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들을 내가 옆에서 데리고 있는 거와 동일하다는 거지. 공통적인 건 둘 다 처리해야 할 일의 대상이라는 거야. 돈은 은행 직원의 일이었고, 우리가 관리하는 인간쓰레기는 교도관의 일이고. 자네 말처럼 내 가슴속에 무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범죄자를 복수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지. 처음 자네에게 질문 던졌듯. 내 사랑하는 가족이 피해자라면 나는 그 수용자를 일의 대상으로 여기지 못할 거야. 복수의 대상으로 보겠지. 그때 참을 수 있을까 하는 게 내가 교도관 하면서 갖는 회의인지 아니면 고민인지 하는 걱정이야."
"아....."
주형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느낌이 와?"
"주임님 말씀이 조금 이해는 됩니다."
"자네는 나처럼 너무 고민은 하지 마. 내가 이렇다는 거지 교도관이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집에 안 가봐도 돼? 애들이 아빠 기다리겠는데. 셋이나 된다면서. 부럽네. 나는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성균이 할 말을 다 했는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저도 저지만 오래 있으면 주임님 쉬시는데 방해되니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방해는 무슨. 나야 할 일도 없는데. 빨리 가서 애들 챙겨. 제수씨가 혼자서 힘들 텐데"
"네. 몸 관리 잘하시고 출근하면 뵐게요"
주형이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성균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이가 범죄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는 내가 근무하는 곳에 수감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갑자기 두려워졌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성균의 말대로 교도관이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범인이 교도소 가는 걸로 끝났을 텐데. 교도관인 자신은 고통이 다시 시작될 것 같았다. 드라에서 시즌1이 끝나고 시즌 2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처럼. 오히려 시즌2가 더 참혹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성균은 복수를 감행할 것처럼 말했다. 복수보다 더 잔혹한 보복을. 그러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보복으로 행한 살인이 따뜻하게 여겨질까란 고민이 됐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 따뜻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서 안갯속을 걷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길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런 답도 없이 차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천하의 김성균 주임도 결론 내지 못 했는데...'
차를 주차시키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종이 박스를 정리하던 경비 아저씨가 인사했지만 주형은 앞만 보고 걸었다. 평소와 다르게 답례도 없이 멍하게 지나가는 그의 모습이 경비 아저씨 눈에 이상하게 보였는지 그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봤다.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방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와이프도 세 아이를 챙기느라 지쳤는지 거실 소파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갈색 염색이 다 바래버린 긴 생머리는 노란 고무줄로 묶여있고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없이 저녁 먹었다는 걸 보여주는 듯 목 늘어난 티셔츠엔 밥알이 몇 개 붙어 있었다. 그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다. 웅크린 모습이 불편해 보여 방으로 옮기려다 잠이 깰까 봐 이불만 살짝 덮어줬다. 자신이 병문안가 있는 동안 아내가 아이들과 어떤 전쟁을 치렀을지 짐작이 갔다.
아이들은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었다. 머리의 방향은 제 각각 이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너무 사랑스러웠다. 하늘에 천사가 있다면 지상에 있는 천사는 이 아이들 같았다. 막내는 언니 다리에 머리가 끼어 있어도 세근 세근 잠이 들어있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들어 반듯하게 옮겨 주었다. 그러자 마자 다시 꿈틀거리더니 언니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 통통한 볼에 희미한 실핏줄이 비쳤다. 손등으로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아이 특유의 젖 비린내가 올라왔다. 행복해졌다. 한 없이 행복해졌다. 철창이 쳐진 곳에서 범죄 저지른 수용자들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버틸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 같은 공간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 주형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었다.
갑자기 병실에서 성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겨울 꽁꽁 얼어있는 강 위에 돌이 떨어져 순식간에 금이 가듯 행복한 마음이 끔찍한 기억으로 바뀌어 버렸다. 천사 같은 아이들이 잔혹한 범죄를 당한다고 생각하니 치가 떨렸다.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짜증이 났다. 아이들 방에서 나와 욕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로 온몸을 적셨다. 조금이나마 정신이 돌아왔다. 다행히 악귀가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거울을 봤다. 피곤에 찌들어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흰머리카락이 부척 늘었고 눈가의 주름도 몇 개가 생긴듯했다. 거실과 방에서 자고 있는 가족을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자신에게는 전혀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여기며 샤워기를 틀어 몸과 얼굴을 씻었다. 그리곤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한 채 욕실 밖으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