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15. (효라빠 장편소설)
출근하기 위해 핸들을 잡은 성균은 긴장이 됐다. 평상시 즐겨 듣던 라디오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대현이 왜 사망했는지 정확한 이유가 궁금했다.
출근해 보니 보안과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의식 없는 수용자를 외부병원으로 보내 사망확인하고, 지방청과 교정본부에 사망사고 정보 보고와 사망자 가족에게 알리는 뒷수습을 해야 했다.
팀 사무실에 들어가니 역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팀장이 조용히 성균을 불렀다.
"어제 이대현이 보호실에서 사망한 거 알고 있지?"
"네. 서무한테 들었습니다. 사망 원인은 밝혀졌습니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어. 의사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고 확인서에 적었다는군, 정확 한건 부검을 해봐야 알지 않겠냐는 외부진료 담당의 보고야"
"그렇군요."
"그런데 말이야..."
팀장이 말을 흐렸다.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뭐, 다른 게 있습니까?"
"외진 담당 말로는 몸에 멍자국이 군데군데 보인데. 아무래도 어제 소란 피우는 상황에서 제압하다 생긴 것 같아. 만약 유가족이 그걸 물고 늘어지면 일이 힘들어질 수도 있을 거야"
"네..."
"가족들은 소란 상황을 자세히 모르니 교도소에서 직원들의 과도한 강제력 행사로 사망한 게 아니냐고 의혹 제기 할 수 있다는 거지. 잘 해결되면 좋은데 만약의 사태도 준비해야 할 거야. 고생은 다하고 그런 오해를 받으면 안 되니까. 법적 책임까지 따지게 된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럼 복잡해지겠네요."
성균이 짧게 대답했다. 팀장의 말이 무슨 뜻인 지 알았다. 수용자 사망사고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교도소 안에서 수용자 본인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담당근무자가 운이 없으면 징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는 보호실 안에서 수갑을 찬 채로 사망한 경우였다. 사체에서는 멍자국까지 발견됐다. 유가족이 물고 늘어지면 충분히 문제가 되고도 남을 사안이었다.
만약 책임을 따진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자신이 가장 유력할 것 같았다. 제압할 때 자신의 역할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찹찹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죄 짓고 들어온 수용자들이 교도소 안에서 규율을 잘 지키고 반성하는 삶을 살게 끔 하는 게 자신이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이유라 여기고 일을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다. 위에서는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게 일 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예감이 그리 좋진 않았다. 이대현이 있었던 사동의 분위기 파악을 위해 구내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감사합니다. 3 동하 교사 길현상입니다.]
[교위 김성균입니다. 3 동하 맞죠?]
[네. 3동하 입니다.]
[거기 이주형 부장이 담당 아닌가요?]
[이 부장님 집에 일 있어서 이번 주 연가 썼습니다.]
[이번 주요? 일주일 씩이나?]
[네.]
[무슨 일 있어요? 연가를 일주일이나 쓰게...]
[자세한 사정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담당 근무자인 주형이 연가를 써 다른 직원이 대신 근무를 하고 있었다. 성균은 일주일 동안 주형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이유가 궁금했지만 자신의 상황도 복잡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심란했지만 일은 해야겠기에 팀원들과 사동 순찰을 나섰다. 통화했던 데로 이주형은 출근하지 않고 다른 근무자가 담당실을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 방인 징벌방을 확인할 차례였다. 수용자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 촘촘히 쳐진 철창 사이로 시선을 돌렸다. 안에서도 밖의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앉아 있던 수용자가 고개를 들었다. 1004번 최태식이었다. 성균은 최태식이 퇴원해 징벌 집행 중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대현 일에 신경 쓰느라 그의 존재를 깜빡하고 있었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놀라는 듯했지만 둘 다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짧은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성균이 먼저 말을 꺼냈다.
"멀 쳐다봐요?"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주임님이 먼저 쳐다봤잖아요"
최태식이 존댓말을 했지만 말투는 빈정거렸다. 반말을 하면 다시 징벌을 받을 수 있어서 마지못해 하는 듯했다. 성균에게 당한 게 떠오르고 본인이 자해를 한 것도 성균 때문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고 있었다.
"내가 1004번을 쳐다보는 건 당연한 공무집행입니다. 교도관은 수용자를 관리해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행동을 하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야~ 이 새끼야! 나도 니 상판대기 쳐다보기 싫다! 싫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쳇. 잘 나셨습니다. 좋겠네요. 중요한 일 하셔서"
최태식이 비꼬듯 말하며 눈을 내렸다.
"죄짓고 들어온 사람하고는 격이 다르지요. 그것도 지저분한 죄를 짓고 들어온 쓰레기 하고는. 나는 여기 시험 봐서 들어왔으니까. 귀신은 뭐하는지 몰라 잡아가야 할 놈을 안 잡아가고 씨발~ "
최태식의 빈정거림에 성균이 질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성균의 대답에 최태식이 흥분하며 말했다.
"뭐요?"
"방금 욕했잖아요. 근무자가 수용자한테 욕해도 됩니까? 저 고소할 겁니다."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누가 욕을 했다고 그래요. 내가 내 입 놔두고 혼잣말도 못하나?"
"그래요?"
"그래요."
"어제 보니 김대현을 막 밟아 버리데요? 옆에서 지켜봤는데. 그 정도면 독직폭행 아닙니까?"
최태식이 약점이라도 잡은 듯 입가에 비굴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독직폭행?"
"네. 독직폭행!"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네. 독직폭행의 범죄 구성요건이 뭔지나 알고 씨부렁 거리나요? 내가 일일이 그런 거 까지 말해줄 의무가 없어서 말 안 하는데, 1004 번은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당신 징역이나 잘 살아가세요. 알았어요?"
안 그래도 김대현 일로 머리가 복잡한데 최태식이 독직폭행 운운하며 말을 꺼내자 성균이 짜증이 났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주임님은 신경 끄세요. 국가 공무원이 수용자를 폭행하고 아주 잘나셨습니다. 요즘 인권위원회 직원들이 많이 한가 한 거 같던데 제가 일 좀 드려야겠네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의를 보고 참으면 안 되죠. 히히~"
최태식이 불의 운운하며 어제의 일로 성균의 화를 돋우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건 성균의 성질을 건드리려는 계략이었다. 흥분시켜 자신의 몸에 손에 대게 한 다음 폭행 당했다고 고소한 후 사건이 복잡해질 것 같아 직원들이 좋게 해결하려고 나오면 자신의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최태식은 몸에 자해를 해서 직원들을 괴롭히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직원의 약점을 잡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간사한 수용자였다.
"뭐! 불의?"
"이게 불의 아니면 뭐가 불의입니까. 국가 공무원인 교도관이 수용자를 폭행하게 법에 나와 있습니까?"
성균을 더 흥분시키기 위해 최태식은 말을 이어 갔다.
"아이고 이렇게 불의를 잘 아시는 분이 그런 추접한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에 오셨어요? 참 대견하십니다. 씨발!"
성균이 최태식의 말거리에 화가 났는지 마지막에 욕을 했다. 흥분하면 안 되지만 최태식이 불의 운운하자 참지 못했다.
최태식은 성균의 목소리가 커지고 말에 욕이 섞여 나오자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흥분시키면 성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왜요? 나 같은 것은 그런 말 하면 안 됩니까. 불의를 저지른 놈이라 어떤 게 불의인지 더 잘 알거든요. 갑자기 불의가 또 당기네. 킥킥킥."
"와~ 또 열받게 하네"
성균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다혈질 성격을 잘 누르지 못해 실제로 수용자들과의 관계에서 고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주임님 결혼은 하셨나?"
"입 닥치시죠. 당신이 알바 아니니"
"안 하셨나 보네요? 하하. 그럼 여자친구는 있으시나?"
"조용히 하라고 했다."
최태식이 붕대가 감긴 한쪽 다리를 살살 만지며 성균에게 말을 걸었다. 말투는 여전히 빈정거렸다.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있는 모습이 죄를 짓고 들어온 사람의 반성하는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만 더 흥분시키면 되겠다는 듯한 여유로움도 느껴졌다. 반면에 성균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 가족을 들먹이자 더 흥분했고 목소리도 커졌다.
"여자친구는 어디서 사나요? 내가 만기 출소 하면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아~ 이번 징역을 오래 살아야 하니. 그때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부인이겠네요. 그럼 딸을 만나봐야 하나. 주임님은 내 전공이 뭔 줄 아시죠? 이 최태식이가 보통 놈은 아니니까, 무슨 불의를 저질러 여기 들어온 줄은 잘 알고 계시겠죠. 제가 나갈 때쯤이면 딱 건드리기 좋을 나이가 되어 있을 거 같은데요. 킥킥킥"
최태식이 말을 끝내고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네가 안 넘어오고 배기는지 봐보자 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개새끼가 뒤질라고 환장을 했나. 좋게 말로 하니까 사람이 만만해 보이나"
가족을 건드린다는 말에 성균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주머니에 있는 전자 키로 철문을 열었다.
"야~ 이 씨발새끼야! 네가 죽고 싶지. 그래 내 손에 죽어봐라. 쓰레기 같은 놈이 지랄을 하는 게 꼴 보기 싫어도 할 수 없이 참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기서 끝이다."
성균이 최태식의 멱살을 잡았다. 반대편 손은 어깨 위로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최태식의 얼굴을 때릴 거 같았다.
"주임님 안됩니다. 참으세요"
뒤따라 들어온 후배가 성균의 팔을 잡았다.
"놔~ 이 개새끼 내가 죽여 버릴 테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어린 초등학생을 감금해서 강간한 새끼가 교도소 들어와서 반성은 못하고. 뭐? 불의? 그래 불의가 뭔지 봐봐라. 이게 불의 다. 이 개새끼야!"
그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주임님! 안 돼요~"
또 다른 후배도 성균의 성질을 알기 때문에 그의 몸을 안고 최태식과 떨어 드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이~ 김주임님. 주임님이 불의가 뭔가 한번 보여 주시죠. 나 같은 놈은 좀 맞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 쳐 보세요"
최태식이 멱살 잡힌 얼굴을 성균 쪽으로 들이밀었다.
"오냐. 그래 해 보자"
성균의 손이 더 높이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최태식을 때릴 기세였다.
"안된다니까요. 야~ 빨리 주임님 떼어네."
후배들이 성균의 몸을 방 밖으로 빼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놔~ 이 개새끼는 내가 오늘 죽여 버릴 거니까. 노라고"
사동이 난리가 났다. 후배들이 간신히 성균을 뜯어냈다. 그리곤 문을 닫아버렸다.
팀사무실로 복귀하니 성균은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야! 김성균!"
"네. 팀장님."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하냐. 제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니까? 최태식이가 어떤 놈인지 몰라? 만약 네가 그놈을 때렸으면 어땠을 것 같아? 옷 벗는 게 아니라 요즘 분위기로는 네가 구속될 수도 있어. 옷을 바꿔 입는다고. 이 미친놈아. 네가 정신이 있냐? 없냐? 안 그래도 김대현이 사망해서 보안과가 시끌시끌한데. 또 사고 치려고 그래?"
"죄송합니다. 팀장님."
팀장이 상황 보고를 받고 노발대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용자 인권이 좋아지면서 사소한 것도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됐다. 그런데 수용자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했다면 그건 징계로 끝날 사안이 아니었다. 책임도 성균 혼자 지는 게 아니라 팀장과 보안과장까지 직원 관리 책임으로 큰 징계를 받을 수 있었다.
최태식은 그걸 노려 성균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팀원들이 자제시켜 그나마 다행이었다.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다른 곳으로 인사조치 시킬 테니까 알아서 해. 접견실 가서 수용자 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싶으면 니 맘대로 해. 나도 더 이상은 말하기 싫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팀장의 말이 맞았다. 성균은 변명도 할 수 없었다. 후배들이 말려서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성균과 직원들이 철수하고 방에 최태식 혼자 남았다.
'아~ 아깝네 몇 대만 맞았으면 까마귀(수용자들이 기동순찰팀을 부르는 은어) 새끼 보낼 수 있었는데. 아깝다 아까워.'
혼잣말을 하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쇠창살이 쳐진 철문 밖으로 사동 도우미들이 하는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어제 대현이 형님 이야기 들었어?"
"무슨 얘기? 그 형님 까마귀들한테 완전 죽사발이 되어 끌려가던데"
"김성균 주임 완전 또라이잖아. 대현이 형님이 사람 잘못 건드린 거지. 다른 직원도 아니고 김성균 주임 건드려서 징역생활 편하게 하는 사람을 못 봤다. "
"그렇긴 해."
"아~ 그건 그렇고. 아까 후생실 도우미한테 들었는데. 대현이 형님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뭐, 죽었다고? 왜 죽어?"
"그건 나도 모르지. 새벽에 직원들이 난리가 났데. 구급차 출동해서 외부 진료 나가고 막 그랬데. 기상 점검도 안 한 게 그 이유 때문이래. 교도소에서 점검을 못 할 정도면 보통 사건은 아니잖아."
"진짜 큰일이 생겼나 보네?"
"응급으로 나갔는데 안 돌아왔데. 소문으로는 사동에서 죽어서 나갔다던데."
"사동에서? 대현이 형님 건달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녔는데. 이런 일도 생기네 "
"그러게 말이다."
도우미 두 명이 징벌방 앞에서 짐 정리하며 나누는 대화가 최태식의 귀에 여렴풋이 들려왔다. 최태식은 문에 최대한 붙어 귀를 쫑긋 세우며 말을 엿들었다.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김대현이 죽었다는 말은 확실하게 들었다.
'뭐라고? 어제 내 옆에서 까마귀들한테 당했던 조직 새끼가 죽었다고. 그것도 교도소 안에서... 이거 그림이 되겠는데. 킥킥킥'
최태식이 혼잣말을 하며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담당실 인터폰을 눌러 서신을 작성해야 하니 볼펜과 편지지를 넣어 달라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