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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따뜻한 살인. 7 (효라빠 장편소설)

by 효라빠

출근하기 위해 핸들을 잡은 성균은 긴장이 됐다. 평상시 즐겨 듣던 라디오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대현이 왜 사망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출근해 보니 보안과는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의식 없는 응급 환자를 외부병원으로 보내 진료하고, 지방청과 교정본부에 사망사고 정보 보고와 사망자 가족에게 알리는 뒷수습을 해야 했다.

팀 사무실 역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팀장이 성균을 불렀다.

"어제 이대현 보호실에서 사망한 거 알고 있지?"

"네. 서무한테 들었습니다. 사망 원인은 밝혀졌습니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어. 의사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고 진단서에 적었다는군, 어쩌면 다행이야 도착 할때까지 심폐소생술을 시행 했으니.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겠다는 외부진료 담당의 보고야"

"그렇군요."

"그런데 말이야..."

팀장이 말을 흐렸다.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뭐, 다른 게 있습니까?"

"외진 담당 말로는 몸에 멍자국이 군데군데 보인데. 아무래도 어제 소란 피우는 상황에서 제압하다 생긴 것 같아. 만약 유가족이 그걸 물고 늘어지면 힘들어질 수도 있을 거야"

"네..."

"가족들은 소란 상황을 자세히 모르니 교도소에서 직원들의 과도한 강제력 행사로 사망한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는 거지. 잘 해결되면 좋은데 만약의 사태도 준비해야 할 거야. 고생 다하고 그런 오해를 받으면 안 되니까. 법적 책임까지 따지게 된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럼 복잡해지겠네요."

성균이 짧게 대답했다. 팀장의 말이 무슨 뜻인 지 알았다. 수용자 사망사고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교도소 안에서 수용자 본인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담당근무자가 운이 없으면 징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는 보호실 안에서 수갑을 찬 채로 사망한 경우였다. 사체에서는 멍자국까지 발견됐다. 유가족이 물고 늘어지면 충분히 문제가 되고도 남을 사안이었다.

만약 책임을 따진다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자신이 가장 유력할 것 같았다. 제압할 때 자신의 역할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찹찹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갈 수 있었다. 죄짓고 들어온 수용자들이 교도소 안에서 규율 잘 지키고 반성하는 삶을 살게 끔 하는 게 자신이 국가에서 월급을 받는 이유라 여기고 일을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다. 위에서는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는 게 일 잘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예감이 그리 좋진 않았다. 이대현이 있었던 사동의 분위기 파악을 위해 구내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감사합니다. 3 동하 교사 강경수입니다.]

[교위 김성균입니다. 3 동하 맞죠?]

[네. 맞습니다.]

[이주형 부장이 담당 아닌가요?]

[이 부장님 집에 일 있어서 이번 주 연가 썼습니다.]

[이번 주요? 일주일씩이나?]

[네.]

[무슨 일 있어요? 연가를 일주일이나 쓰게...]

[자세한 사정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담당 근무자인 주형이 연가를 써 다른 직원이 대신 근무를 하고 있었다. 성균은 일주일 동안 주형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이유가 궁금했지만 자신의 상황도 복잡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심란해도 일은 해야겠기에 팀원들과 사동 순찰을 나섰다. 통화했던 데로 이주형은 출근하지 않고 다른 근무자가 담당실을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 방인 징벌방을 확인할 차례였다. 수용자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 촘촘히 쳐진 철창 사이로 시선을 돌렸다. 안에서도 밖의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앉아 있던 수용자가 고개를 들었다. 1004번 최태식이었다. 성균은 최태식이 퇴원해 징벌 집행 중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대현 일에 신경 쓰느라 그의 존재를 깜빡하고 있었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놀라는 듯했지만 둘 다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성균이 먼저 말을 꺼냈다.

"멀 쳐다봐요?"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주임님이 먼저 쳐다봤잖아요"

최태식이 존댓말을 했지만 말투는 빈정거렸다. 반말을 하면 다시 징벌을 받을 수 있어서 마지못해 하는 듯했다. 성균에게 당한 게 떠오르고 본인이 자해를 한 것도 성균 때문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고 있었다.

"내가 1004번을 쳐다보는 건 당연한 공무집행입니다. 교도관은 수용자를 관리해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행동을 하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야~ 이 새끼야! 나도 니 상판대기 쳐다보기 싫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쳇. 잘 나셨습니다. 좋겠네요. 중요한 일 하셔서"
최태식이 비꼬듯 말하며 눈을 내렸다.

"죄짓고 들어온 사람하고는 격이 다르지요. 그것도 지저분한 죄를 짓고 들어온 쓰레기 하고는. 나는 여기 시험 봐서 왔으니까. 귀신은 뭐하는지 몰라 잡아가야 할 놈을 안 잡아가고 씨발~ "

최태식의 빈정거림에 성균이 질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성균의 대답에 최태식이 흥분하며 말했다.

"뭐요?"

"방금 욕했잖아요. 근무자가 수용자한테 욕해도 됩니까? 저 고소할 겁니다."

"무슨 소리하는 거예요? 누가 욕을 했다고 그래요. 내가 내 입 놔두고 혼잣말도 못하나?"

"그래요?"

"그래요."

"어제 보니 이대현을 막 밟아 버리데요? 그 정도면 독직폭행 아닙니까?"

최태식이 약점이라도 잡은 듯 입가에 비굴한 미소를 띠었다.

"독직폭행?"

"네. 독직폭행!"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독직폭행의 범죄 구성요건이 뭔지나 알고 씨부렁 거리나요? 내가 일일이 그런 것까지 말해줄 의무가 없어 말하지 않는데, 1004 번은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당신 징역이나 잘 살아가세요. 알았어요?"

안 그래도 이대현 일로 머리가 복잡한데 최태식이 독직폭행 운운하며 말을 꺼내자 성균은 짜증이 났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주임님이나 신경 끄세요. 국가 공무원이 수용자를 폭행하고 아주 잘나셨습니다. 요즘 인권위원회 직원들이 많이 한가 해 보이던데 제가 일 좀 드려야겠네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의를 보고 참으면 안 되죠. 히히~"

최태식이 불의 운운하며 어제의 일로 성균의 화를 돋우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건 성균의 성질을 건드리려는 계략이었다. 흥분시켜 자신의 몸에 손 대게 한 다음 폭행 당했다고 고소해서 직원들이 좋게 해결하려고 나오면 자신에게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최태식은 자해를 해 직원들을 괴롭히는 방법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도 직원의 약점을 잡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간사한 수용자였다.

"뭐! 불의?"

"이게 불의 아니면 뭐가 불의입니까. 국가 공무원인 교도관이 수용자를 폭행하게 법에 나와 있습니까?"

성균을 더 흥분시키기 위해 최태식은 말을 이어 갔다.

"아이고 이렇게 불의를 잘 아시는 분이 그런 추접한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에 오셨어요? 참 대견하십니다. 씨발!"

성균이 최태식의 말거리에 화가 났는지 마지막에 욕을 했다. 흥분하면 안 되지만 최태식이 불의 운운하자 참지 못했다.

최태식은 성균의 목소리가 커지고 욕이 섞여 나오자 잘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흥분시키면 성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왜요? 나 같은 것은 그런 말 하면 안 됩니까. 불의를 저질러 본 놈이라 어떤 게 불의인지 더 잘 알거든요. 갑자기 불의가 또 당기네. 킥킥킥."

"와~ 또 열받게 하네"

성균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다혈질 성격을 잘 누르지 못해 수용자들과 관계에서 고생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주임님 결혼은 하셨나?"

"입 닥치시죠. 당신이 알바 아니니"

"안 하셨나 보네요? 하하. 그럼 여자친구는 있으시나?"

"조용히 하라고 했다!"

최태식이 붕대가 감긴 한쪽 다리를 살살 만지며 성균을 건들었다. 말투는 여전히 빈정거렸다.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있는 모습이 죄짓고 들어온 사람의 반성하는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만 더 흥분시키면 되겠다는 듯한 여유로움도 느껴졌다. 반면에 성균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넘어 가족까지 들먹이자 목소리도 더 커졌다.

"여자친구는 어디서 사나요? 내가 만기 출소 하면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아~ 이번 징역을 오래 살아야 하니. 그때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부인이겠네요. 그럼 딸을 만나봐야 하나. 주임님은 내 전공이 뭔 줄 아시죠? 이 최태식이가 보통 놈은 아니니까, 무슨 죄를 저질러 여기 들어온 줄은 잘 알고 계시겠죠. 제가 나갈 때쯤이면 딱 건드리기 좋을 나이가 되어 있을 거 같은데요. 킥킥킥"

최태식이 말을 끝내고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이런 개새끼가 뒤질라고 환장을 했나. 좋게 말로 하니까 사람이 만만해 보이나"

가족을 건드린다는 말에 성균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주머니에 있는 전자 키로 방문을 열었다.

"야~ 이 씨발새끼야! 네가 죽고 싶지. 그래 내 손에 죽어봐라. 쓰레기 같은 놈이 지랄을 하는 게 꼴 보기 싫어할 수 없이 참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기서 끝이다."

성균이 최태식의 멱살을 잡았다. 반대편 손은 어깨 위로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최태식의 얼굴을 때릴 것 같았다.

"주임님 안됩니다. 참으세요"

뒤따라 들어온 후배가 성균의 팔을 잡았다.

"놔~ 이 개새끼 내가 죽여 버릴 테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어린 초등학생을 감금해 강간한 새끼가 교도소 들어와서 반성은 못하고. 뭐? 불의? 그래 불의가 뭔지 봐봐라. 이게 불의 다. 이 개새끼야!"

그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주임님! 안 돼요~"

또 다른 후배도 성균의 성질을 알기에 최태식과 떨어 드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이~ 김주임님. 주임님이 불의가 뭔가 한번 보여 주시죠. 나 같은 놈은 좀 맞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 쳐 보세요"

최태식이 멱살 잡힌 얼굴을 성균 쪽으로 들이밀었다.

"오냐. 그래 해 보자"

성균의 손이 더 높이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최태식을 때릴 기세였다.

"안된다니까요. 야~ 빨리 주임님 떼어네."

후배들이 성균의 몸을 방 밖으로 빼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놔~ 이 개새끼는 내가 오늘 죽여 버릴 거니까. 노라고"

사동이 난리가 났다. 후배들이 간신히 성균을 뜯어냈다. 그리곤 문을 닫아버렸다.


팀사무실로 복귀하니 성균은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야~ 김성균!"

"네. 팀장님."

"내가 몇 번을 말해야 하냐. 제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라니까? 최태식이 어떤 놈인지 몰라? 만약 네가 그놈을 때렸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옷 벗는 게 아니라 요즘 분위기로는 네가 구속될 수도 있어. 옷을 바꿔 입는다고. 미친놈아! 네가 정신이 있냐? 없냐? 안 그래도 이대현 사망해서 보안과가 시끌시끌한데. 또 사고 치려고 그래?"

"죄송합니다. 팀장님."

팀장이 상황 보고를 받고 노발대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용자 인권이 좋아지면서 사소한 것도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됐다. 그런데 수용자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했다면 그건 징계로 끝날 사안이 아니었다.

최태식은 그걸 노려 성균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팀원들이 자제시켜 그나마 다행이었다.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다른 부서로 인사조치 시킬 테니까 알아서 해. 접견실 가서 수용자 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싶으면 니 맘대로 하라고. 나도 더 이상은 말하기 싫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팀장 말이 맞았다. 성균은 변명도 할 수 없었다. 후배들이 말려 다행이구나 싶었다.


성균과 직원들이 철수하고 방에 최태식 혼자 남았다.

'아~ 아깝네 몇 대만 맞았으면 까마귀(수용자들이 기동순찰팀 부르는 은어) 새끼 보낼 수 있었는데. 아깝다 아까워.'

혼잣말을 하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쇠창살이 쳐진 철문 밖으로 사동 도우미들이 하는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어제 대현이 형님 이야기 들었어?"

"무슨 얘기? 그 형님 까마귀들한테 완전 죽사발이 되어 끌려가던데"

"김성균 주임 완전 또라이잖아. 대현이 형님이 사람 잘못 건드린 거지. 다른 직원도 아니고 김성균 주임 건드려서 징역생활 편하게 하는 사람을 못 봤다. "

"그렇긴 해."

"그건 그렇고. 아까 후생실 도우미한테 들었는데. 대현이 형님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뭐, 죽었다고? 왜 죽어?"

"그건 나도 모르지. 새벽에 직원들 난리가 났데. 구급차 출동해서 외부 진료 나가고 막 그랬데. 기상 점검도 안 한 게 그 이유 때문이래. 교도소에서 점검을 못 할 정도면 보통 사건은 아니잖아."
"진짜 큰일이 생겼나 보네?"

"응급으로 나갔는데 안 돌아왔데. 소문에는 사동에서 죽어서 나갔다던데."

"사동에서? 대현이 형님, 건달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녔는데. 이런 일도 생기네 "

"그러게 말이다."

도우미 두 명이 징벌방 앞에서 짐 정리하며 나누는 대화가 최태식의 귀에 여렴풋이 들려왔다. 최태식은 문에 최대한 붙어 말을 엿들었다.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김대현이 죽었다는 말은 확실하게 들었다.

'뭐라고? 어제 내 옆에서 까마귀들한테 당했던 조직 새끼가 죽었다고. 그것도 교도소 안에서... 이거 그림이 되겠는데...'

최태식이 혼잣말을 하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담당실 인터폰을 눌러 서신을 작성해야 하니 볼펜과 편지지를 넣어 달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담당 근무자가 징벌방에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볼펜이나 편지지를 넣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최태식이 따지기 시작했다.

"부장님 왜 안됩니까?"

"본인은 자해를 해 징벌 집행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넣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법원과 검찰청에 소송서류 작성하는 것도 안됩니까? 이건 수용자 인권 탄압 아닙니까? 법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까?"

최태식이 소송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못하게 한다며 인권 탄압을 운운하며 직원에게 압박을 가했다.

이주형의 연가로 대신 근무 들어온 직원은 입장이 난처해졌다. 최태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소송서류 작성을 위해서는 필기구와 종이를 넣어주게 되어 있었다.

"그럼 본인의 볼펜은 안되고 관에서 지급하는 것으로 넣어 주겠습니다."

"그건 왜 그럽니까?"

"자해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알았으니까 알아서 하시고 빨리 볼펜이나 넣어 주세요"

최태식이 짜증 난다는 투로 담당 근무자에게 소리 질렀다.

근무자는 최태식이 어떤 수용자인지 알기에 싸우기 싫어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교도관 새끼들은 꼭 성질을 내야 말을 들어주고만, 한 두 번도 아니고 이러니까 내가 자해를 하지. 씨발 짜증 나'

분이 덜 풀렸는지 주먹으로 벽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

근무자의 지시를 받은 사동도우미가 볼펜과 양면지를 가져다주었다. 마루 바닥에 엎드린 최태식이 종이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표정에는 비굴한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이대현의 사망사건은 다행히 생각보다 수월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가족들이 대현의 죽음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도 짐이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고만 치고 다녔고 성인이 되서도 조직생활을 하면서 빈 둥 거리며 살아갔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다행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돈이 필요하다며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안하무인이었다. 외부담당 근무자는 이대현의 죽음에 오히려 가족들이 안도하는 눈빛이었다는 말도 했다.

교도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치고 쉽게 해결되는 이유였다.

성균의 사무실로 최태식이 있는 사동 담당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형은 연가 중이라 아직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김 주임님. 지금 통화가능하세요?]

[네. 말씀하세요]

[저~ 이대현 사망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원만하게 합의가 됐다고 들었는데요? ]

[이대현 가족들과의 문제가 아니라서요.]

[가족들과의 문제가 아니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최태식 있잖습니까. 이 사동에 있는 장기수.]

[네. 알고 있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태식을 모를 수가 없죠]

[최태식이 검찰과 인권위, 신문사에 고발장 제출한다며 저에게 보고문을 제출했습니다]

[탄원서요? 무슨 탄원서요?]

[전화로 말씀드리기 그러니까 사무실에 들러 보여드리겠습니다. 내용이 아주 가관입니다.]

[알겠습니다.]


대직 근무를 들어온 3동 하층 담당이 기동순찰팀 사무실을 찾아왔다.

"주임님 여기 고발장과 탄원서입니다. 내용은 같습니다. 하나만 읽어 보셔도 될 겁니다."

"네."

성균은 담당근무자가 전해주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수신인이 대검찰청으로 되어 있었다.


[존경하는 검찰총장님께. 불의를 저지른 교도관을 고발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합니다.

저는 목안 교도소에 수용 중인 1004번 최태식 수용자입니다.

제가 검찰총장님께 이렇게 고발장을 제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2000년 00월 00일 피해자인 이대현과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대현이 소란을 피우자 담당 근무자가 지원 요청 해 기동순찰팀이 출동했습니다.

기동순찰팀이 도착하자 이대현은 흥분을 가라앉혔습니다. 하지만 김성균 주임을 포함한 4명의 대원들은 막무가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군화를 신고 있고 손에는 삼단봉과 방패, 가스총까지 들려 있었습니다. 동료 수용자 이대현이 위압적인 모습에 놀라 잘못했다고 말했어도 막무가내로 그를 넘어트렸습니다. 그러더니 무자비하게 발로 밟고 주먹으로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에 이대현은 비명을 지르며 봐달라고 빌었지만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이대현의 정신이 가물가물 해질 때까지 폭행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불쌍할 정도였습니다. 폭행에 못 이겨 정신을 잃자 양팔을 꺾어 수갑을 채웠습니다. 이대현은 천정을 향해 누워있고 김성균주임은 군홧발로 가슴을 짓이겼습니다. 헐떡 거리는 숨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습니다. 제가 봤을 땐 폭행으로 호흡을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목에 사슬이 걸린 개가 끌려가듯 질질 끌려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뒤로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방으로 전방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우연히 사동 도우미들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같은 방의 동료 수용자였던 이대현이 사망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정리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대현은 김성균을 포함한 4명의 교도관들의 폭행에 의해 사망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고발장을 제출하는 이유는 불의를 저지른 교도관들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자 함입니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범죄자들을 관리하는 교도관은 더욱더 법적 공정함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교도소에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죄짓고 들어온 수용자도 같은 사람이고 그들도 인권이 있습니다.

교도관들의 폭력에 사망한 동료 수용자의 진실이 밝혀져 망자의 명예가 회복되고, 아울러 수용자의 인권이 존중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 편지를 검찰, 인권위원회, 신문사에 제보할 것입니다.

만약 검찰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같은 법무부 소속이라 제 식구 감싸기라고 판단하고 신문사에 적극적으로 제보할 것입니다.

검찰총장님께서 불의에 대항해 정의를 바로 세워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지 봉투에는 빨간색으로 [고발장 제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속에든 양면지에 손글씨로 또박또박 써진 글을 읽은 성균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와~ 내가 욕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이 새끼는 사람 새끼가 아니다.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지 아는 사람이 '불의' 운운하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대직 근무자 앞에서 혼잣말 하는 성균의 얼굴은 어이 없어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무슨 내용인데 그러세요?"

"신일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뭐가요?"

"1004번 최태식 알지?"

"네."

"그 자식이 검찰청에 나를 고발한다고 고발장을 썼는데 내용이 아주 가관이다. 정말 어이가 없다."

"무슨 내용인데요?"

"나와 우리 팀원들을 고발한데 이대현을 살해했다고. 그것도 그거지만 불의 운운하며 쓴 내용이 정말 당황스럽다. 초등학생을 감금과 강간해서 교도소에 들어와 죗값을 치르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읽어봐도 될까요?"

"그래."

성균이 후배에게 종이를 건네며 대직 근무자에게 말했다.


"부장님, 최태식이 검찰에 보낼 거면 봉인을 해서 바로 보냈을 텐데, 입구를 풀로 붙이지도 않고 겉봉투에는 [고발장 제중]이라고 빨간색으로 써 논거 보면 뭔가 이상 하지 않나요?"

"그렇죠? 저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긴 해요."

그도 성균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에게 일부러 이걸 보라고 하는 거 같은데요. 혹시 서신을 주면서 무슨 말은 없었습니까?"

"특별한 말은 없었습니다."

"우리한테 무슨 요구사항이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봉인도 하지 않고 이렇게 하지 않죠. 분명히 차후에 말을 할 겁니다."

"네."

대직 근무자도 성균의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주면 이주형 부장 출근하죠?"

"네. 다음 주에 출근합니다."

"그럼 이주형 부장과 함께 처리해야 겠습니다. 서신은 제가 가지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교대시간이 끝나 사동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혹시 최태식이 무슨 말을 하거나, 요구사항 있다고 하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성균은 대직근무자와 말을 마치고 의자에 앉았다. 역시 인간쓰레기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태식은 엄중관리 대상자이고 수용자 사망사고와 관련이 있어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팀장과 보안과장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팀장님 최태식이 이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대현 사망사고가 마무리된 거 같아도 아직은 아닌 듯합니다. 검찰은 우리 쪽이라 기소하지는 않겠지만, 인권위와 신문사는 최태식의 말을 믿고 이대현의 사망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최태식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이대현이 강제력 행사에 의해 제압당하고 그 후 사망한 것은 사실이니까. 가족들도 조용히 끝낼 것처럼 말하지만 누군가 펌프질을 해 합의금을 받아낼 수 있다고 한다면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너나 우리 팀은 상당히 피곤해지겠지."

성균의 말을 듣고 팀장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미간의 주름이 더 깊게 파여 보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안과장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도 알잖아. 윗사람들은 언론이나 민원에 예민한 거. 조용히 마무리했으며 하지..."

"조용히 라면?"

"최태식을 만나 원하는 걸 알아보고, 들어줄 게 있으며 들어주란 말이지"

"그럼 그 자식이 해 달라는 데로 해주라는 뜻인가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자신의 요구사항을 위해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등 자해를 밥먹듯이 하는 놈인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하나를 들어주면 나중에는 두 개, 세 개를 요구하는 놈이라는 것을."

성균이 보안과장의 뜻이라는 팀장의 말을 듣고 흥분하며 따졌다.

"야~ 인마. 나는 모르냐. 그런데 어쩌겠냐. 보안과장 입장이 그러는데 우리 조직 스타일 알잖아. 계급이 깡패라는 거 나도 지금 속이 속이 아니다. "

"팀장님, 그래도 그놈의 요구사항은 다 들어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조사해서 징벌 먹여야 한다고 봅니다. 세게 나가는 게 맞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런데 그놈 방법 알잖아.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의사 표현을 할 거야. 그게 언론사 제보가 될지 또 다른 자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라고 하면 되죠. 우리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또 자해를 한다고 해도 본인이 힘들지 우리가 힘듭니까. 우리 할 일이 많아져 바쁘긴 하겠지만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균이 여전히 흥분한 채로 말했다.

"자네 말이 무슨 뜻인 줄 안다니까 하지만 윗분들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잖아. 자신들 승진에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내가 너보다 머리가 더 아프다. 너는 나한테 구시렁 대기라도 하지만 나는 너와 과장 사이에 끼여서... 아이고 머리야. 일단 최태식이 만나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조만간 그놈이 우릴 찾을 거니까. 시나리오 뻔하잖아. 검찰에 고발하고, 언론사에 제보할 놈이 편지 봉투 앞면에 다 보라고 그렇게 써 놨겠냐. 일단 지켜보자"

팀장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쓰며 성균의 말을 잘랐다. 성균도 팀장의 입장을 잘 알기에 기다려 보기로 했다.


최태식은 서신과 보고전을 담당에게 제출하고 징벌방 벽에 기대어 저려오는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징벌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반방에는 티브이가 있어 교도소 안의 무료함을 달랠 수도 있고, 책이라도 볼 수 있었지만 징벌방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도 자해해 징벌받는 게 힘들었지만 교도소 안에서 독종으로 보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몇 번 더 자해를 하면 특별관리 대상이 되어 독방을 얻을 수 있고, 직원들이 귀찮아서라도 다른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교도관들이 깐깐하다고 해도 그들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최태식도 어느 정도 자신의 요구사항이 관철된다면 조용히 지낼 마음도 먹고 있었다.

'지금 쯤이면 내 행동에 대해 대충 눈치를 챘을 텐데 슬슬 시작해 볼까...' 혼잣말하며 벽에 붙어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16방 인터폰 눌렀어요?]

[담당님.]

대직 담당은 인터폰에서 최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긴장이 됐다. 최태식이 인터폰을 눌러 좋은 말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요?]

[기동순찰팀 팀장님 면담을 원합니다.]

[면담 사유가 뭔가요?]

[담당님은 알 필요가 없으니 최태식이 면담신청 한다고 전해 주세요.]

최태식의 말투는 여전히 건방졌다. 근무자는 미지정 사동을 대신 근무 하는 것도 짜증이 났는데 최태식이 자신을 허수아비로 취급하는 행태에 화가 났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대신근무 들어왔지만 담당근무자입니다. 이유를 알아야 팀장님에게 이런 용건 때문에 면담 신청을 한다고 말 할거 아닙니까?]

[씨발~ 거참 피곤하네 구네... 그렇게 궁금하면 최태식이 또 자해한다고 말하십시오!]

인터폰에 들려오는 최태식의 목소리가 점점 앙칼져 갔다. 근무자를 완전 무시 하는 발언이었다. 담당근무자는 더 말해봐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아무 대답 하지 않고 팀사무실로 전화를 돌렸다.


[팀장님! 3 동하 교사 김권후입니다.]

[어~ 무슨 일이야?]

[1004번 최태식이 팀장님 면담을 하고 싶다는데요?]

[면담?]

[네.]

[뭐 때문에 그러는데?]

[면담 사유를 말하라고 하니까. 신경질을 내면서 안 가르쳐 줍니다. 몇 번 물어보니 자해를 할 거라고 말하던데요]

[알았어. 싸가지 없는 새끼. 동행 근무자 보낼 테니 상담실로 보내]

[네. 알겠습니다.]

팀장은 최태식이 슬슬 자신의 발톱을 내 비치려고 하는 걸 감지했다.


최태식이 휠체어를 타고 상담실로 들어왔다. 팀장이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들어와요. 면담하고 싶다고 했다며?"

"네. 계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발목은 좀 어때? 뭐 하러 힘들게 자꾸 일을 벌여? 그래 봤자 본인 몸만 힘들지. 의사가 한 번만 더 그러면 걷기 힘들다고 했다면서? 이제 조용히 살아. 몸 아프면 징역이든 밖이든 힘드니까"

수용관리의 베테랑답게 팀장이 최태식의 안부부터 물었다.

"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러고 싶겠습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그러는 거죠."

팀장의 말에 최태식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팀장이 수용관리의 베테랑이라면 최태식은 수용생활의 베테랑이었다. 자신에 대한 걱정은 단순한 립서비스라고 여기고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제 고발장은 읽어 보셨습니까?"

"어~ 엉~ 읽어 봤지. 뭘 엄청 적었던데. 불의가 어쩌고 저쩌고... 하하"

안 봤다고 하기 그래 사실대로 대답했다. 최태식도 그런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는지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불의는 불의 니까요..."

"그건 그렇고 남자답게 시원하게 말하지?"

"시원하게요?"

"그래. 그걸 담당에게 제출한 이유가 있잖아. 자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불의 따졌어. 안 그래? 솔직히 말해봐 원하는 게 뭐야?"

"그... 그게..."

팀장의 거침없는 말에 최태식이 당황한듯했다. 기동순찰 팀장이 보통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여기서 잘못했다간 요구사항이 아니라 징벌만 더 받을 거 같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다 얻지는 못하더라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치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말해봐.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고발장을 읽어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저는 그 사건을 다 알고 있습니다. 제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요구사항이 뭐냐고? 뭔지 말을 해야 들어주든가 말든가 할 거 아냐?"

"흠... 일단 합의금 명목으로 영치금 500만 원을 넣어주시고 독방하나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서화를 하는데 그것과 관련된 용품들을 방에서 사용할 수 있게 끔 허락해 주시면 됩니다."

"뭐? 영치금 500만 원? "

팀장이 최태식의 요구사항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다른 부분은 그러려니 하고 허락해 줄 수 있었지만 돈을 요구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정도는 줘야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까?"

최태식이 팀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상담실에 순간 긴장이 돌았다.

"야~ 이거 너무 세게 나오는데.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군지 알지?"

"그걸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그럼. 자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알겠네?"

"무슨 말씀인지?"

"지금 협박을 하고 있잖아, 공갈 협박. 있지도 않은 사실로 교도관을 상대로 돈을 뜯어 내려고 하고 있잖아?"

"아~ 그렇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이 다 거짓이란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언론사나 인권위에 추가 제보를 하겠습니다"

최태식은 팀장이 기선제압하려 한다고 여겼다. 본인도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봐야 본인만 힘들어질걸. 우리라고 가만히 있겠어? 내용을 보니 교도관에 의해 폭행당해 사망했다는 둥 허위의 사실이 적혀 있고. 그 걸 꼬투리 삼아 영치금을 넣어 달라고 말하는 건 협박 같은데? 징역 오래 살았으면서도 추가형을 받고 싶은가 보지? 인간적으로 독방을 준다던가 교정교화 차원에서 서화 용품을 사용하라고 해줄 수는 있지만 없는 일을 가지고 영치금을 넣어 달라는 등 돈을 요구하는 건 너무 나가는 거 아냐?"

"흠... 그건 지켜보시면 알겠죠. 팀장님은 팀장님대로 하십시오. 저는 저대로 하겠습니다."

"본인이 그렇다면 알아서 해. 분명히 말해 두지만 허위사실로 그런 행동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거니까. 아직 시간 많으니 차분히 생각해 봐"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깨지지 않았다. 각자의 입장만 듣고 마무리되는 듯했다.

'아~~'

갑자기 최태식이 배를 움켜 잡고 얕은 신음을 내뱉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팀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최태식이 인상을 쓰자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또 무슨 자해를 한 건 아니겠지? 몸으로 때우는 시대는 지났잖아. 앞으로는 그런 행동 자제해. 본인 몸만 힘들지..."

"괜찮습니다."

둘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최태식은 면담을 마치고 징벌방으로 돌아왔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렇지만 내가 분명히 말했으니 머리는 아플 거야. 돈이 안되면 다른 거라도 얻어 내야지.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 자해하면서 지낼 수는 없으니까' 혼잣말을 하며 벽을 멍하니 쳐다봤다.

좁은 방에서 그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었다. 움직였더니 자해한 발목이 시큰거렸다. 짜증이 올라왔다. 주먹으로 벽을 쳤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건너 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떤 새끼가 치는 거야~~~'

옆방에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앉아 있는데 배가 또 찌릿했다. 한동안 배가 더부룩하고 속이 안 좋았는데 그 부위가 따끔거렸다. 처음 겪어 보는 통증이었다. 손으로 배를 주무르자 다행히 고통은 사라졌다.

'왜 배까지 아프고 지랄이야' 혼잣말을 하며 주먹으로 다시 벽을 쳤다. 건넌방에서는 또 소리가 들려왔다.

'벽 치지 말라고 새끼야~ 너 죽고 싶어?' 최태식이 키득 거리며 벽을 더 세게 두드렸다.

'야~ 이 개새끼야~~' 고함 소리는 사동 전체에 울려 퍼졌다.


"팀장님 최태식이 만나 보셨습니까?"

"응, 방금 면담하고 왔어"

"뭐라고 합니까?"

"영치금 넣어주고, 몇 가지 요구사항도 말하던데"

"영치금이요? 그건 돈 달라는 말이잖아요?"

"그렇지"

"얼마나 넣어 주라는데요?"

"500만 원. 하하"

팀장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놈 제정신이 아니네요"

"그러게. 내가 봤을 땐 그냥 나불대는 것 같아. 정확히 모르고 찔러보는 거겠지. 그냥 무시하는 게 나을 거야. 잡다한 거 한 두 개 들어주면 조용히 살겠지"

"팀장님이야 워낙 베테랑이니까.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하늘은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놈 안 잡아가고"

성균이 어이없다는 듯 하늘을 원망했다.

"그러게 말이야. 하늘도 무심하시지. 맞아, 면담을 하는데 갑자기 최태식이 고통스러워하며 배를 움켜 잡더라니까."

"또 뭘 삼킨 거 아닐까요? 그러거도 남을 놈이잖아요."

"그런 거 같지는 않았는데 뭔가 이상했어. 표정이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였거든."

"네."

팀장이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둘의 대화는 마무리 됐다. 성균은 최태식이 또 다른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긴장이 됐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회 1로 넘김(삭제 요망)

주형은 형을 혼자 둘 수 없어 일주일 연가를 쓰고 옆을 지켰다.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현실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직장 동료들에게는 아이가 아파서 그랬다고 대충 둘러댔다. 인수인계 부에는 인수 사항이 넘쳐났다. 자리를 비운 동안 많은 일이 발생했고 대부분은 주형이 마무리해야 할 일이었다. 어떤 것부터 처리해야 할지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모니터만 바라봤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도 은혜가 그렇게 된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꿈인가 싶었고 꿈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한두 번 아니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형과 은혜를 떠올리면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반 미쳐 버린 형을 자신이 지켜야 하기 때문에 주형은 무너질 수 없고 버텨야만 했다. 형은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았다. 은혜의 사진만 부여잡고 통곡하며 죽고 싶다는 말 뿐이었다. 범인을 잡아 은혜의 원한을 풀어주자고 간신히 설득해 미음이라도 먹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은혜도 수시로 떠올랐다. 그럴 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아이가 당했을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오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가 이런 건가 싶었다. 차라리 온몸이 터져 버렸으면 할 때도 있었다.


'딩동~ 딩동~'

사동에서 누르는 인터폰 소리에 주형이 움찔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일깨워 주었다.

교도소에 돌아온 이상 일은 해야 했다.

[인터폰 눌렀어요?]

[네, 부장님. 면담 좀 할 수 있을까요?]

[급한 거 아니면 다음에 했으면 좋겠는데요.]

[가족들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어 그럽니다. 지금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 알았어요. 수번이 몇 번이에요?]

[1458번입니다.]

[방문 열어 줄 테니 나오세요]

면담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었지만 가족일로 급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보라미(교도소 내부 망) 검색 창에 수번을 입력했다. 인적사항이 열리고 사진이 떴다. 들어온 지 얼마 안돼 얼굴이 낯설었다. 습관적으로 죄명에 눈이 돌아갔다. 강간치사였다. 마우스를 쥐고 있는 주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건개요를 읽어 보지 않았으나 은혜를 그렇게 만든 놈하고 같은 부류의 죄였다. 지금 방에서 나올 수용자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네. 네."

주형이 말을 더듬었다. 사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자 순간 놀랬다. 아무 일 없는 척 얼굴을 쳐다봤다.

"거기 의자에 앉으세요."

"네."

"가족들에게 전할 말이라니 무슨 일 있어요?"

주형이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키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예전 같으면 좀 더 따뜻하게 대했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3주 전부터 가족들하고 연락이 안 돼 그러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가족이라면 누구 말하는 거예요? 부모님?"

"네. 영치금도 넣어주고 하셨는데 편지 보내도 답장이 없고, 전화해도 받지 않습니다."

"내가 고충처리반에 문의해서 확인해 달라고 할게요. 그렇게 알고 조금 기다려 보세요."

"아~ 네..."

"지금 다른 일 처리해야 하니까 면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가족 연락처 여기 적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면담은 불과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부모님은 뭐 하시냐? 밖에서 뭐 했냐?'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피하고 싶었다.

면담을 끝내고 수용자는 방으로 돌아갔다. 모니터를 켰다. 그전에 보고 있던 화면이 그대로 있었다. 면담했던 수용자의 신분카드가 열려있었다. 사건개요를 클릭했다. 강간치사죄로 살고 있는 그의 범죄 내용이 떴다.


[사건개요 : 서울 동대문구 제기 2동 인근 호프집에서 술을 먹던 중, 늦은 시간 손님이 없자 주방에 있던 과도를 들고 여사장을 위협해 주방으로 끌고 가 강제로 웃을 벗기고......]

주형은 위에서부터 읽어 내려가다 읽기를 포기하고 화면 창을 닫았다.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가슴이 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철창 쳐진 사동 담당실이 자신을 가둬 버리는 것 같았다. 은혜가 떠올랐다. 미치도록 불쌍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참혹했을 순간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는 듯했다.

'은혜를 죽인 범인이 경찰에 잡혀 만약 내가 있는 교도소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만약이 아니었다. 주형이 근무하고 있는 교도소 관할에서 범죄가 발생했으므로 그곳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았다. 목이 타고 긴장이 됐다. 손은 떨려왔다.

'범인이 내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하지...'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단순한 범죄도 아니고 은혜를 그렇게 만든 살인자가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혜의 복수를 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까지 관리했던 수용자들과 같이 대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다면 그건 은혜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결론은 나지 않고 수많은 질문 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과 가족들에게 너무 힘든 시련을 준 하늘이 무심할 뿐이었다.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갔는데 왜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딩동~ 딩동~'

인터폰 소리가 또 울렸다. 7~80명이 수용되어 있는 주형의 사동은 여전히 현실이었다.

16번 방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최태식의 방이었다.

[16방 인터폰 눌렀어요?]

[네. 부... 부장님]

[얘기하세요.]

[저... 배... 배가....]

스피커에서 떨리는 최태식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평상시 위압적인 말투와 사뭇 달랐다. 무슨 말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작게 들려왔다.

[뭐라고요? 잘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해 보세요.]

[부장님. 배가 아파서 그러는데 의료과 좀 보내주세요.]

[배가 아파요?]

[네...]

최태식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조회 시간에 최태식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니 주형은 믿지 못했다.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는 아픈 사람처럼 들렸지만 직접 확인을 해봐야 했다.

머리는 복잡하지만 사동 근무자로 앉아 있는 이상 일을 안 할 수 없었다. 의자에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태식 씨!"

주형이 철문에 붙어있는 쇠창살 쳐진 시찰구를 통해 최태식을 불렀다.

"으~~"

최태식은 배를 쥐어 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배 아파요?"

"너무 아픕니다. 의료과 좀 보내주세요"

말하는 모습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주형은 혼자 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전에 근무자가 문을 열자 최태식이 직원을 공격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수용자를 관리할 때 인간적으로 대했던 주형이기에 최태식이라 하더라도 아파하는 모습에 문을 열었다. 웅크리고 있는 최태식의 등에 손을 올렸다.

"배가 어떻게 아파요?"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습니다."

고통 때문인지 날카로운 인상이 더 차갑게 보였다.

"바르게 누워 보세요"

"네..."

최태식이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주형은 최태식의 이마에 손을 대 봤다. 손이 뜨거울 정도로 열도 나고 있었다.

"일단 의료과로 갑시다."

한쪽 다리에 붕대가 감겨있어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주형이 최태식의 팔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사동 도우미~ 이리 와서 좀 도와줘~ 휠체어 좀 가져와 "

복도에서 일하고 있는 사동 도우미를 불러 최태식을 휠체어에 태워 의료과로 보냈다.

담당실로 돌아온 주형은 무의식 적으로 다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모니터 속 인수인계 폴더를 클릭했다.


최태식은 의료과 침대에 누웠다. 일단 진통제와 수액을 맞았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배가 지금처럼 심하게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걱정해 준 것도 처음이었다.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끙끙 앓고 있을 때 등 과 이마를 어루만져 주었던 주형의 따듯한 손길이 떠올랐다. 살면서 처음 겪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 엄마의 정을 못 느껴 봤다. 만약 자신에게 엄마가 있었다면 그런 포근한 손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40살이 훌쩍 넘어 그런 걸 느껴 본다는 게 서글프기도 했고 주형이 감사하기도 했다. 수액을 다 맞고 다시 사동으로 돌아왔다. 담당실의 주형은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부장님 의료과 다녀왔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많이 아파 보이던데"

주형이 의료과에 다녀온 최태식을 보며 말했다.

"주사 맞고 약 먹으니 좋아졌습니다. 가스가 차서 장이 뒤틀린 거 같다고 하네요"

"다행이네요"

"저..."

최태식이 말을 더듬었다. 표정도 평상시의 표독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뭐가요?"

최태식이 고맙다는 말을 힘겹게 꺼냈고, 주형은 뭐가 고마워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저를 의료과에 보내 준거요."

"그건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죠."

"...... 그보다 저를 따듯하게 만져준 거요."

"만져 주다니요?"

"아... 아닙니다. 어쨌든 고마웠습니다. 저 들어가겠습니다."

최태식은 짧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본 적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었나 떠올려 봤다. 방금 이주형 부장에게 한 말이 처음 같았다. 자신의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멍하니 시멘트 벽의 쇠창살 처진 창밖만 쳐다봤다. 하얀 구름이 보였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음 주 화요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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