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19. (효라빠 장편 소설)
최태식이 의료과에 다녀온 후 주형이 밀린 일을 처리하자 사동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피곤이 몰려와 쉬려 했으나 순찰 시간이 되었다. 순찰 한번 안 돈다고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주형은 성격상 그러지 못했다. 자기 일은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다. 담당실을 나와 20개의 방을 하나씩 시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일주일 동안 몇 사람은 만기가 되어 출소하고 몇 사람은 신입으로 들어와 있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는 교도소 수감 생활 시 주의점 등을 설명해 주며 순찰을 돌았다.
10번 방을 지나갈 때였다.
'뭐지!'
몸을 돌려 방 앞에 섰다. 주형이 누군가를 주시하자 그가 고개를 바닥으로 내렸다.
"거기 벽에 기대어 있는 사람 고개 들어보세요?"
"......"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고개 들어 보라니까요?"
주형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야!"
그의 얼굴이 보이자 주형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곽태성!"
"네. 주임님"
"미치겠네. 출소 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들어와! 네가 정신이 있냐? 없냐? 담당실로 따라와..."
주형이 인상을 쓰며 사동 방문을 열었다. 곽태성은 말없이 주형의 뒤를 쫓아 담당실로 들어갔다.
"휴~ 너 나가기 전에 뭐라고 했어?"
"죄송합니다."
"출소하면 새 출발 한다고 하지 않았어? 뭐가 문제여서 다시 들어온 거야. 응?"
주형이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배신감이 묻어 있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이번엔 뭘로 들어왔어?"
주형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게..."
곽태성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눈빛이 흔들리며 주형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무슨 큰일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불안해 보였다.
"뭘로 들어왔냐고? 빨리 대답 안 해!"
웅얼거리는 태성에게 주형이 쏘아붙였다.
"차털이하다 현행범으로 잡혀 구속됐습니다."
"아이고 잘한다. 잘해. 나가서 잘 살겠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었는데."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것 없고, 일단 들어왔으니 재판 잘 받고 규율 잘 지키서 생활해"
주형이 포기한 듯한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곽태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떨구었다. 면담은 길지 않았다. 주형은 배신감 느껴 할 말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다른 사건으로 머리가 복잡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일 하면서 만기 출소 후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는 경우를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곽태성처럼 나이 어린 수용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면 매우 씁쓸했다. 특이 한건 그들은 교도소 안에서는 생활 잘했다. 인사성도 좋고, 밝게 웃으며 왜 저런 애들이 교도소에 들어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근무하면서 지켜본 결과 이들 대부분의 가정이 불완전하다는 걸 알았다. 바른생활을 하게 옆에서 격려해 주고, 잘못하면 혼도 내며 관리해줘야 할 가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출소 후 자립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슷한 환경에서 사람의 의지에 따라 누군가는 열심히 살아가고, 누군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범죄의 늪에 빠져 들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형 일로도 힘이 드는데 더 기운 빠지고 지쳤다. 담당실에 축 처져 앉아 있는데 기동순찰팀 김성균 주임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이 부장! 오랜만이야. 연가를 꽤 오래 썼던데?"
"네. 형님."
"무슨 일 있었어? 어디 좋은데라도 다녀온 거야?"
주형이 출근했다는 말을 듣고 성균이 순찰을 돌면서 안부차 들렸다.
"아뇨. 집에 일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자신에게 관심 있어 묻는 말이지만 똑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났다. 마음 같아 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발 신경 꺼주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자신의 소심한 성격에 더 화가 났다.
"그렀구먼. 아~ 최태식이 상태 어때? 나 코 걸어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던데"
"글쎄. 저도 오래간만에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오전에 배가 아프다고 해서 의료과 보내줬는데 되게 고마워하던데요."
"그래? 그놈이 그런 말도 하네. 어쨌든 최태식이 신경 좀 써죠. 완전 좆밥이야. 요구사항 있으면 절대 들어주지 말고 규정대로 처리해. 그런 놈들 하나 둘 들어주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 챙겨줘 봤자 고맙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담당 근무자에게 더 큰 걸 요구하니까. 내가 지금까지 지켜봐 보면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의 특징 중 하나가 고마움을 모른다는 거야. 그러니까 절대 잘해 줄 필요 없어. 알았지?"
성균이 최태식의 말이 나오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형이 힘없이 대답했다. 성균과 대화하는 게 싫지 않았지만 지금 기분으로는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앞에서 조용히 사라져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말은 하지 못하고 성균의 말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대꾸했다.
"어디 아파? 얼굴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주형의 힘없는 목소리와 일주일 사이에 핼쑥해져 버린 얼굴을 보며 성균이 물었다.
"아뇨. 며칠 잠을 잘 못 잤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주형이 지친 기색으로 답했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성균은 주형의 속도 모르고 걱정된다는 듯 계속 질문을 했다. 주형은 제발 빨리 가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니에요..."
이제는 버틸 만큼 버텼다는 표정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성균도 그 모습에 더는 붙잡지 않았다.
"많이 피곤해 보이네. 좀 숴. 사동 순찰 돌러 왔으니 한 바퀴 돌고 갈게"
성균이 말을 맺으며 일어났다.
"아~ 저기"
담당실 밖으로 성균이 나가려고 하자 주형이 할 말이 있다는 듯 성균을 불렀다.
"왜?"
몸이 문에 반쯤 걸친 상태로 성균이 고개를 돌렸다.
"곽태성이라고 기억나세요?"
"누구였더라. 내가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하하"
"저번 김대현 사건 때 제보 했던 수용자요. 형님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는데 출소해 버려 못 만났거든요"
"아~ 맞아! 기억나. 그건 왜?"
주형이 갑자기 곽태성의 이름을 꺼내자 성균이 궁금하다는 듯 다시 담당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친구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래? 아이고. 내가 그때 뭐라고 그랬어. 사람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잖아."
성균이 반가우면서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요. 수용 생활 할 때 열심히 해서 나가면 생활 잘할 줄 알았는데... 다 제 마음 같지 않나 봅니다."
주형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징역 잽이들 말은 안 믿어. 어쨌거나 나한테는 고마운 놈이니 얼굴 한 번 봐야겠군. 그놈 지금 어디에 있어?"
"네. 10번 방에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보고 갈게. 고생해."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주형의 얼굴에 성균은 짧게 말하고 사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거실인 10번 방에는 8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복도 쇠창살에 검은색 기동순찰팀 제복을 입은 성균이 서자 다들 긴장한 듯 눈치를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곽태성이 누구야?"
"저... 전데요?"
화장실 앞에 앉아있는 20대 초반의 청년이 엉거주춤 거리며 일어났다.
"네가 곽태성이야?"
"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리며 눈빛이 흔들였다.
"너 죄 졌어? 내가 너 잡아먹기라고 하냐? 왜 그렇게 벌벌 떨어?"
성균이 불안해하는 곽태성을 보며 웃으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주임님이 갑자기 저를 불러 당황해서 그럽니다."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긴장한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긴 죄 지었으니 여기 들어왔겠지. 킥킥."
교도소에 죄를 짓고 들어온 사람에게 죄를 지었냐고 물어보는 게 웃겼는지 성균이 피식 웃었다. 곽태성의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손을 보며 베테랑 교도관인 성균이 웃고 있었지만 이상한 촉이 느껴졌다.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지만 수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저를 찾의싶니까?"
곽태성이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별건 아니고 저번에 제보해 줘서 고마워서 그래. 야~ 기동순찰팀이라고 맨날 지적하고 혼만 내겠냐? 하하. 너 아니었으면 그때 큰일 날뻔했다. 고맙다."
"아... 아닙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안도하는 표정으로 곽태성이 말했다.
"사회로 나갔으면 생활 잘해야지. 또 들어오면 어떡하냐?"
"그러게요.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안에서 생활 잘해라"
"네. 알겠습니다."
성균이 짧게 감사 표시를 하고 다른 방으로 순찰을 돌았다. 교도소에 다시 들어오지 않고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더 친절하고 진심 어리게 했을 텐데 교도소에서 보게 되자 성균도 곽태성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재 입소 한 것에 그에 대한 신뢰가 깨져 버렸다.
몇 걸음 더 가자 최태식이 수용 중인 징벌방이 나왔다. 최태식이 자신에게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성균은 귀찮기도 하고 조금은 부담스러워 그냥 지나쳐 버릴까 했지만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철문에 달린 시찰구로 들여다보니 최태식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들고 있는 볼펜은 징벌실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볼펜이었다. 징벌방에서는 일반 볼펜은 사용할 수 없었다. 필기구뿐만 아니라 책과 노트도 제한적으로 쓸 수 있었다. 일반 볼펜을 삼켜 자해를 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1004번 최태식 씨!"
시찰구에 대고 성균이 최태식을 불렀다. 바닥에 엎드려 글을 쓰고 있던 최태식이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성균의 얼굴을 알아봤는지 대답이 날카로웠다.
"지금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볼펜은 뭡니까?"
성균도 질 수 없다는 듯 따져 물었다.
"이건 제 볼펜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당당하다는 듯 최태식이 대꾸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성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일반 사람 같으면 눈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로 살기가 느껴졌다.
"지금 본인이 징벌 집행 중인 건 알고 있죠? 그리고 여기는 징벌방이라는 것도요?"
성균도 눈을 부릅뜨고 최태식을 쳐다보며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여기는 인권도 없습니까? 내가 소송서류 작성하는데 그것도 문제가 됩니까?"
"소송서류 작성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허가되지 않은 개인 볼펜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관에서 지급하는 징벌방용 볼펜을 줄 테니 지금 사용하는 것은 이쪽으로 주세요. 개인 사물에 함께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균은 최태식이 더 이상 말대답을 하지 못하게 규정을 설명하면서 볼펜을 반납할 것을 지시했다.
"씨발~ 짜증 나게 하네. 이제는 볼펜 가지고도 지랄이네"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했어요? 방금 욕했어요?"
"뭔 욕을 해요 혼잣말도 못합니까. 아~ 짜증 나서."
최태식이 말하며 볼펜을 배식구를 향해 던졌다. 볼펜은 모서리에 맞고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좋게 말할 때 규정대로 따르기 바랍니다. 안 그럼 혼날 수 있어요~"
성균이 비꼬는 투로 말했다.
"알았으니까. 주임님은 주임님 일이나 하세요. 그리고 제가 보낸 서신은 잘 받으셨죠? 킥킥킥"
최태식도 질 수 없다는 듯 비웃으며 말했다. 빡빡 밀어버린 민머리와 눈이 치켜 올라간 날카로운 인상으로 비웃는 모습이 소름 끼쳤다.
"아이고 덕분에 여러 곳에 이름 팔리게 생겼습니다.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하하하. 본인이 그럴수록 더 규율에 맞게 생활해야 한다는 것만 알면 되겠네요. 지켜봅시다. 내 징역이 편한지, 당신 징역이 편한지."
"그러시죠."
둘 사이의 말은 사라지고 눈빛이 모였다. 격투기 선수들이 시합 전 기선 제압을 위해 눈싸움을 하듯 둘 사이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둘 다 서로 지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몇 초간의 시간이 흐르고 사동도우미가 식수 배식을 한다는 말에 둘의 눈은 풀렸다.
성균은 다음 사동으로 순찰을 가고 징벌방에 최태식만 남았다.
'그래. 봐보자. 이 간수새끼야. 네가 얼마나 징역을 편하게 사는지 내가 도와줄게. 여기저기 들쑤셔 놨으니 조만간 참 편해질 거다. 조사받느라 진땀 좀 흘려봐라.'
혼잣말을 하며 자리를 떠난 성균을 저주했다.
몇 시간 전 주형의 따듯한 배려에 감사함을 느꼈던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그의 눈빛엔 살기가 돌았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