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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따뜻한 살인. 8 (효라빠 장편 소설)

by 효라빠

주형은 형을 혼자 둘 수 없어 일주일 연가를 쓰고 옆을 지켰다.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현실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직장 동료들에게는 아이가 아파 그랬다고 대충 둘러댔다. 인수인계 부에는 인수 사항이 넘쳐났다. 자리를 비운 동안 많은 일이 발생했고 대부분은 주형이 마무리해야 할 일이었다. 어떤 것부터 처리해야 할지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모니터만 바라봤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도 은혜가 그렇게 된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꿈인가 싶었고 꿈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한두 번 아니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형과 은혜를 떠올리면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반 미쳐 버린 형을 자신이 지켜야 하기 때문에 주형은 무너질 수 없고 버텨야만 했다. 형은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았다. 은혜의 사진만 부여잡고 통곡하며 죽고 싶다는 말 뿐이었다. 범인을 잡아 은혜의 원한을 풀어주자고 간신히 설득해 미음이라도 먹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은혜도 수시로 떠올랐다. 그럴 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아이가 당했을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오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가 이런 건가 싶었다. 차라리 온몸이 터져 버렸으면 할 때도 있었다.


'딩동~ 딩동~'

사동에서 누르는 인터폰 소리에 주형이 움찔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일깨워 주었다.

교도소에 돌아온 이상 일은 해야 했다.

[인터폰 눌렀어요?]

[부장님. 면담 좀 할 수 있을까요?]

[급한 거 아니면 다음에 했으면 좋겠는데요.]

[가족들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어 그럽니다. 지금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 알았어요. 수번이 몇 번이에요?]

[1458번 입니다.]

[방문 열어 줄 테니 나오세요]

면담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었지만 가족일로 급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보라미(교도소 내부 망) 검색 창에 수번을 입력했다. 인적사항이 열리고 사진이 떴다. 들어온 지 얼마 안돼 얼굴이 낯설었다. 습관적으로 죄명에 눈이 돌아갔다. 강간치사였다. 마우스를 쥐고 있는 주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건개요를 읽어 보지 않았으나 은혜를 그렇게 만든 놈하고 같은 부류의 죄였다. 지금 방에서 나올 수용자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네. 네."

주형이 말을 더듬었다. 사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자 순간 놀랬다. 아무 일 없는 척 얼굴을 쳐다봤다.

"거기 의자에 앉으세요."

"네."

"가족들에게 전할 말이라니 무슨 일 있어요?"

주형이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키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예전 같으면 좀 더 따뜻하게 대했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3주 전부터 가족들하고 연락이 안 돼 그러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가족이라면 누구 말하는 거예요? 부모님?"

"네. 영치금도 넣어주고 하셨는데 편지 보내도 답장이 없고, 전화해도 받지 않습니다."

"내가 고충처리반에 문의해서 확인해 달라고 할게요. 그렇게 알고 조금 기다려 보세요."

"아~ 네..."

"지금 다른 일 처리해야 하니까 면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가족 연락처 여기 적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면담은 불과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부모님은 뭐 하시냐? 밖에서 뭐 했냐?'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피하고 싶었다.

면담을 끝내고 수용자는 방으로 돌아갔다. 모니터를 켰다. 그전에 보고 있던 화면이 그대로 있었다. 면담했던 수용자의 신분카드가 열려있었다. 사건개요를 클릭했다. 강간치사죄로 살고 있는 그의 범죄 내용이 떴다.


[사건개요 : 서울 동대문구 제기 2동 인근 호프집에서 술을 먹던 중, 늦은 시간 손님이 없자 주방에 있던 과도를 들고 여사장을 위협해 주방으로 끌고 가 강제로 웃을 벗기고......]

주형은 위에서부터 읽어 내려가다 읽기를 포기하고 화면 창을 닫았다.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가슴이 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철창 쳐진 사동 담당실이 자신을 가둬 버리는 것 같았다. 은혜가 떠올랐다. 미치도록 불쌍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참혹했을 순간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는 듯했다.

'은혜를 죽인 범인이 경찰에 잡혀 만약 내가 있는 교도소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만약이 아니었다. 주형이 근무하고 있는 교도소 관할에서 범죄가 발생했으므로 그곳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았다. 목이 타고 긴장이 됐다. 손은 떨려왔다.

'범인이 내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하지...'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단순한 범죄도 아니고 은혜를 그렇게 만든 살인자가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혜의 복수를 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까지 관리했던 수용자들과 같이 대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다면 그건 은혜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결론은 나지 않고 수많은 질문 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과 가족들에게 너무 힘든 시련을 준 하늘이 무심할 뿐이었다.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갔는데 왜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딩동~ 딩동~'

인터폰 소리가 또 울렸다. 7~80명이 수용되어 있는 주형의 사동은 여전히 현실이었다.

16번 방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최태식의 방이었다.

[16방 인터폰 눌렀어요?]

[부... 부장님]

[얘기하세요.]

[저... 배... 배가....]

스피커에서 떨리는 최태식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평상시 위압적인 말투와 사뭇 달랐다. 무슨 말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작게 들려왔다.

[뭐라고요? 잘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해 보세요.]

[부장님. 배가 아파서 그러는데 의료과 좀 보내주세요.]

[배가 아파요?]

[네...]

최태식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조회 시간에 최태식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니 주형은 믿지 못했다.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는 아픈 사람처럼 들렸지만 직접 확인을 해봐야 했다.

머리는 복잡하지만 사동 근무자로 앉아 있는 이상 일을 안 할 수 없었다. 의자에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태식 씨!"

주형이 철문에 붙어있는 쇠창살 쳐진 시찰구를 통해 최태식을 불렀다.

"으~~"

최태식은 배를 쥐어 잡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배 아파요?"

"너무 아픕니다. 의료과 좀 보내주세요"

말하는 모습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주형은 혼자 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전에 근무자가 문을 열자 최태식이 직원을 공격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가만있을 수 없었다. 수용자를 관리할 때 인간적으로 대했던 주형이기에 최태식이라 하더라도 아파하는 모습에 문을 열었다. 웅크리고 있는 최태식의 등에 손을 올렸다.

"배가 어떻게 아파요?"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습니다."

고통 때문인지 날카로운 인상이 더 차갑게 보였다.

"바르게 누워 보세요"

"네..."

최태식이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주형은 최태식의 이마에 손을 대 봤다. 손이 뜨거울 정도로 열도 나고 있었다.

"일단 의료과로 갑시다."

한쪽 다리에 붕대가 감겨있어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주형이 최태식의 팔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웠다.

"사동 도우미~ 원진아~ 서원진! 이리 와서 좀 도와줘~ 휠체어 가져와라! "

복도에서 일하고 있는 사동 도우미를 불러 최태식을 휠체어에 태워 의료과로 보냈다.

담당실로 돌아온 주형은 무의식 적으로 다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모니터 속 인수인계 폴더를 클릭했다.


최태식은 의료과 침대에 누웠다. 일단 진통제와 수액을 맞았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배가 지금처럼 심하게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걱정해 준 것도 처음이었다.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끙끙 앓고 있을 때 등 과 이마를 어루만져 주었던 주형의 따듯한 손길이 떠올랐다. 살면서 처음 겪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 엄마의 정을 못 느껴 봤다. 만약 자신에게 엄마가 있었다면 그런 포근한 손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40살이 훌쩍 넘어 그런 걸 느껴 본다는 게 서글프기도 했고 주형이 감사하기도 했다. 수액을 다 맞고 다시 사동으로 돌아왔다. 담당실의 주형은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부장님 의료과 다녀왔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많이 아파 보이던데"

주형이 의료과에 다녀온 최태식을 보며 말했다.

"주사 맞고 약 먹으니 좋아졌습니다. 가스 차서 장이 뒤틀린 것 같다고 하네요"

"다행이네요"

"저..."

최태식이 말을 더듬었다. 표정도 평상시의 표독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뭐가요?"

최태식이 고맙다는 말을 힘겹게 꺼냈고, 주형은 뭐가 고마워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저를 의료과에 보내 준거요."

"그건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죠."

"...... 그보다 저를 따듯하게 만져준 거요."

"만져 주다니요?"

"아... 아닙니다. 어쨌든 고마웠습니다. 저 들어가겠습니다."

최태식은 짧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본 적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었나 떠올려 봤다. 방금 이주형 부장에게 한 말이 처음 같았다. 자신의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멍하니 시멘트 벽의 쇠창살 처진 창밖만 쳐다봤다. 하얀 구름이 보였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음 주 화요일 뵙겠습니다.]재회2


최태식이 의료과 다녀온 후 주형이 밀린 일을 처리하자 사동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피곤이 몰려와 쉬려 했으나 순찰 시간이 되었다. 순찰 한번 안 돈다고 문제 되지 않았지만 주형은 성격상 그러지 못했다. 자기 일은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다. 담당실을 나와 20개의 방을 하나씩 시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일주일 동안 몇 사람은 만기가 되어 출소하고 몇 사람은 신입으로 들어와 있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는 교도소 수감 생활 시 주의점 등을 설명하며 순찰을 돌았다.

'뭐지!'

10번 방을 지나갈 때였다.

몸을 돌려 방 앞에 섰다. 주형이 누군가를 주시하자 그가 고개를 바닥으로 숙였다.

"거기 벽에 기대어 있는 사람 고개 들어보세요?"

"......"

그는 아무 대답 없었다.

"고개 들어 보라니까요?"

주형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야!"

얼굴이 보이자 주형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죄송합니다."

"곽태성!"

"네. 주임님"

"미치겠네. 출소 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들어와! 네가 정신이 있냐? 없냐? 담당실로 따라와..."

주형이 인상 쓰며 사동 방문을 열었다. 곽태성은 말없이 주형의 뒤를 쫓아 담당실로 들어갔다.

"휴~ 너 나가기 전에 뭐라고 했어?"

"죄송합니다."

"출소하면 새 출발 한다고 하지 않았어? 뭐가 문제여서 다시 들어온 거야. 응?"

화난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배신감이 묻어 있었다.

"드릴 말씀 없습니다. 잘 살아보려 했는데..."

"이번엔 뭘로 들어왔어?"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그... 그게..."

곽태성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눈빛이 흔들리며 주형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무슨 큰일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불안해 보였다.

"뭘로 들어왔냐고? 빨리 대답 안 해!"

웅얼거리는 태성에게 주형이 쏘아붙였다.

"차털이하다 현행범으로 잡혀 구속됐습니다."

"아이고 잘한다. 잘해. 나가서 잘 살겠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었는데."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것 없고, 일단 들어왔으니 재판 잘 받고 규율 잘 지키서 생활해"

곽태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떨구었다. 면담은 길지 않았다. 주형은 배신감 느껴할 말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다른 사건으로 머리가 복잡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일 하면서 만기 출소 후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는 경우를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곽태성처럼 나이 어린 수용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면 매우 씁쓸했다. 특이 한건 그들은 교도소 안에서는 생활 잘했다. 인사성도 좋고, 밝게 웃으며 왜 저런 애들이 교도소에 들어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근무하면서 지켜본 결과 이들 대부분의 가정이 불완전하다는 걸 알았다. 바른생활을 하게 옆에서 격려해 주고, 잘못하면 혼도 내며 관리해줘야 할 가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출소 후 자립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슷한 환경에서 사람의 의지에 따라 누군가는 열심히 살아가고, 누군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범죄의 늪에 빠져 들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형 일로도 힘이 드는데 더 기운 빠지고 지쳤다. 담당실에 축 처져 앉아 있는데 기동순찰팀 김성균 주임이 노크 하고 들어왔다.

"이 부장! 오랜만이야. 연가를 꽤 오래 썼던데?"

"네. 형님."

"무슨 일 있었어? 어디 좋은데라도 다녀온 거야?"

주형이 출근했다는 말을 듣고 성균이 순찰을 돌면서 안부차 들렸다.

"아뇨. 집에 일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자신에게 관심 있어 묻는 말이지만 똑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났다. 마음 같아 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발 신경 꺼주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런 자신의 소심한 성격에 더 화가 났다.

"그렀구먼. 최태식 상태 어때? 나 코 걸려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던데"

"글쎄. 저도 오래간만에 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오전에 배 아프다고 해서 의료과 보내줬는데 되게 고마워하던데요."

"그래? 그놈이 그런 말도 하네. 어쨌든 최태식 신경 좀 써죠. 완전 좆밥이야. 요구사항 있으면 절대 들어주지 말고 규정대로 처리해. 그런 놈들 하나 둘 들어주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 챙겨줘 봤자 고맙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담당 근무자에게 더 큰걸 요구하니까. 내가 지금까지 지켜봐 보면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의 특징 중 하나가 고마움을 모른다는 거야. 그러니까 절대 잘해 줄 필요 없어. 알았지?"

성균이 최태식 말이 나오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형은 성균과 대화하는 게 싫지 않았지만 지금 기분으로는 그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앞에서 조용히 사라져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속마음은 밝히지 못하고 성균의 말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대꾸했다.

"어디 아파? 얼굴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주형의 힘없는 목소리와 일주일 사이에 핼쑥해져 버린 얼굴을 보며 성균이 물었다.

"며칠 잠을 잘 못 잤더니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주형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성균은 주형의 속도 모르고 걱정된다는 듯 계속 질문을 했다. 주형은 제발 빨리 가줬으면 했다.

"아니에요..."

"많이 피곤해 보이네. 좀 숴. 사동 순찰 돌러 왔으니 한 바퀴 돌고 갈게"

성균도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더는 말 걸지 않았다.

"아~ 저기~"

담당실 밖으로 성균이 나가려고 하자 주형이 할 말이 떠 올랐 다는 듯 성균을 불렀다.

"왜?"

몸이 문에 반쯤 걸친 상태로 성균이 고개를 돌렸다.

"곽태성이라고 기억나세요?"

"누구였더라. 내가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하하"

"저번 이대현 사건 때 제보 했던 수용자요. 형님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는데 출소해 버려 못 만났거든요"

"아~ 맞아! 기억나. 그건 왜?"

주형이 곽태성 이름을 꺼내자 성균이 궁금하다는 듯 다시 담당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친구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래? 아이고. 내가 뭐라고 그랬어. 지켜봐야 한다고 했잖아."

성균이 반가우면서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요. 수용 생활 할 때 정말 열심히 해서 나가면 생활 잘할 줄 알았는데... 다 제 마음 같지 않나 봅니다."

주형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징역 잽이들 말은 안 믿어. 어쨌거나 나한테는 고마운 놈이니 얼굴 한 번 봐야겠군. 그놈 지금 어디 있어?"

"10번 방에 있습니다."

"알았어. 보고 갈게. 고생해."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 주형의 표정에 성균은 짧게 말하고 사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거실인 10번 방에는 8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복도 쇠창살에 검은색 기동순찰팀 제복을 입은 성균이 나타나자 다들 긴장한 듯 아무 이유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곽태성이 누구야?"

"저... 전데요?"

화장실 앞에 앉아있는 20대 초반의 청년이 엉거주춤 거리며 일어났다.

"네가 곽태성이야?"

"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리며 눈빛이 흔들였다.

"너 죄 졌어? 내가 너 잡아먹기라고 하냐? 왜 그렇게 벌벌 떨어?"

성균이 불안해하는 곽태성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주임님이 갑자기 저를 불러 당황해서 그럽니다."

아니라고 하지만 긴장한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긴 죄 지었으니 여기 들어왔겠지."

교도소에 죄짓고 들어온 사람에게 죄를 지었냐고 물어보는 게 웃겼는지 성균이 피식 웃었다. 곽태성의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손을 보며 베테랑 교도관인 성균이 웃고 있었지만 이상한 촉이 느껴졌다.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지만 수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저를 찾으싶니까?"

"별건 아니고 저번에 제보해 줘서 고마워서 그래. 야! 기동순찰팀이라고 맨날 지적하고 혼만 내겠냐?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뻔했다. 고맙다."

"아... 아닙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안도하는 표정으로 곽태성이 말했다.

"사회로 나갔으면 사고치지 말고 잘 살아야지. 또 들어오면 어떡하냐?"

"그러게요.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안에서 생활 잘해"

"알겠습니다."

성균이 짧게 감사 표시를 하고 다른 방으로 순찰을 돌았다. 교도소에 다시 들어오지 않고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더 친절하고 진심 어리게 했을 텐데 교도소에서 보게 되자 성균도 곽태성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재 입소 한 것에 그에 대한 신뢰가 깨져 버렸다.

몇 걸음 더 가자 최태식이 수용 중인 징벌방이 나왔다. 최태식이 자신에게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성균은 조금은 부담스러워 그냥 지나쳐 버릴까 했지만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철문에 달린 시찰구로 들여다보니 최태식이 종이에 무언가 적고 있었다. 들고 있는 볼펜은 징벌실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볼펜이었다. 징벌방에서는 일반 볼펜은 사용할 수 없었다. 필기구뿐만 아니라 책과 노트도 제한적으로 쓸 수 있었다.

볼펜 스프링을 늘여 트린 후 삼켜 자해를 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1004번 최태식 씨!"

시찰구에 대고 성균이 최태식을 불렀다. 바닥에 엎드려 글을 쓰고 있던 최태식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뭡니까?"

성균의 얼굴을 알아봤는지 대답이 날카로웠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볼펜은 뭡니까?"

성균도 질 수 없다는 듯 따져 물었다.

"이건 제 볼펜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당당하다는 듯 최태식이 대꾸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성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일반 사람 같으면 눈을 마주치기 힘들 정도로 살기가 느껴졌다.

"지금 본인이 징벌 집행 중인 건 알고 있죠? 여기는 징벌방이라는 것도요?"

성균도 눈을 부릅뜨고 최태식을 쳐다봤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여기는 인권도 없습니까? 소송서류 작성하는데 그것도 문제가 됩니까?"

"소송서류 작성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데, 허가되지 않은 개인 볼펜을 사용하는 건 문제가 됩니다. 관에서 지급하는 징벌자용 볼펜을 줄 테니 지금 사용하는 것은 이쪽으로 주세요. 개인 사물과 함께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균은 최태식이 더 이상 말대답 하지 못하게 규정을 설명하며 볼펜 반납할 것을 지시했다.

"씨발~ 짜증 나게 하네. 이제는 볼펜 가지고도 지랄이네"

"뭐라고 했어요! 방금 욕했어요?"

"뭔 욕을 해요 혼잣말도 못합니까. 아~ 짜증 나서."

최태식이 말하며 볼펜을 배식구를 향해 던졌다. 볼펜은 모서리에 맞고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좋게 말할 때 규정에 따르기 바랍니다. 안 그럼 혼날 수 있어요!"

성균이 비꼬는 투로 말했다.

"알았으니까. 주임님은 주임님 일이나 하세요. 그리고 제가 보낸 서신은 잘 받으셨죠? 킥킥"

최태식도 질 수 없다는 듯 비웃었다. 빡빡 밀어버린 민머리와 눈이 치켜 올라간 날카로운 인상으로 비웃는 모습이 소름 끼쳤다.

"아이고 덕분에 여러 곳에 이름 팔리게 생겼습니다.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하하하. 본인이 그럴수록 더 규율에 맞게 생활해야 한다는 것만 알면 되겠네요. 지켜봅시다. 내 징역이 편한지, 당신 징역이 편한지."

"그러시죠."

둘 사이의 대화는 사라지고 눈빛만 모였다. 격투기 선수들이 시합 전 기선 제압을 위해 눈싸움하듯 둘 사이에 스파크가 일었다. 몇 초가 지나고 사동도우미가 식수 배식을 한다는 외침에 둘의 눈은 풀렸다.

성균은 다음 사동으로 순찰을 가고 징벌방에 최태식만 남았다.

'그래. 봐보자. 이 간수새끼야. 네가 얼마나 징역을 편하게 사는지 내가 도와줄게. 여기저기 들쑤셔 놨으니 조만간 참 편해질 거다. 조사받느라 진땀 좀 흘려봐라.'

혼잣말을 하며 자리를 떠난 성균을 저주했다.

몇 시간 전 주형의 따듯한 배려에 감사함을 느꼈던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그의 눈빛엔 살기가 돌았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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