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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ㅅㄱ Mar 14. 2023

미궁 1.

따뜻한 살인 20회 (효라빠 장편소설).

회색 파티션이 쳐진 강력팀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수시로 울리던 전화벨도 분위기를 느꼈는지 침묵을 지켰다. 아침 조회가 시작되고 형사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수사과장실에 불려 갔다 온 팀장만 그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 숨을 쉬었다.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막내 박호 순경이 입을 열었다.

"저... 팀장님. 과장님이 화내시나요?"

"야 인마! 그러면 살인사건 발생하고 6개월이 지났는데 가만히 있겠냐? 범죄자 DNA까지 나왔는데 경찰에서 못 잡고 있다고 방송까지 탔어, 너 같으면 가만히 있겠냐고? 아씨 돌아 버리겠네"

장승처럼 서서 한놈만 걸려라 하고 벼르고 있던 김동한 경감이 박호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팀원들의 머리는 거북이 마냥 수그러 들었다.

"그러게요."

"그러게요? 고작 할 말이 그러게요?"

동한이 들고 있는 결재판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탕탕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거북이처럼 머리를 깊게 박고 있던 팀원들이 깜짝 놀라 어깨가 들썩 거렸고 머리는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제 [그것도 알고 싶다]에서 우리 사건 방송 탄 거 니들 봤어?"

"......"

"봤어? 안 봤어?"

대답 없는 팀원들을 보고 있는 게 답답했는지 동한이 더 크게 소리 질렀다.

"봤습니다."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른 마냥 기죽은 목소리가 팀원들의 입에서 가냘프게 흘러나왔다.

"너희들도 봤으니까 알겠지만 사회자가 뭐라고 말하던? 유력한 증거인 DNA까지 발견됐는데 경찰에서 못 잡고 있다고 하잖아. 그게 말이 되냐? 어? "

"그러게요."

"야! 그러게요 하지 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누군가는 대답해야 할거 같아 그중 선임인 차월곤 경사가 한 마디 했다가 팀장의 화만 돋았다.  

"지금 수사 상황이 어떻게 돼? 피해자 주변인들과 사건 발생 지점 근처 남성들 전부 DNA검사했잖아?"

"당연히 다 했죠."

"그런데 안 나와?"

"네. 이상하게 동일 인물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건 발생지역 근처 거주 중인 남자들과 피해 여고생의 지인들 심지어는 가족들까지 남자란 남자는 다 검사했는데 나오지 않습니다."

월곤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미쳐 버리겠군. 과장도 과장인데 여론이 상당히 안 좋단 말이야. 이 사건이 어제 방송 타고 얼마나 이슈가 될지는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우리가 빨리 검거하지 못하면 과장이 아니라 서장님. 심지어는 더 윗선까지 난리가 날 수 있다고. 광수대에 특별수사본부 차리라는 압력까지 내려왔는데 서장님이 자존심 상한다고 그전에 빨리 검거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잖아."

"네."

동한의 고민 섞인 말에 팀원들이 고개 숙인 채 조용히 대답했다.

"그리고 이 시간 부로 강력 2팀, 3팀, 4팀까지 해서 당분간 이 사건만 매달릴 거야."

"네."

팀원들은 여전히 더 이상의 대답을 하지 못했다. 광수대에 사건이 넘어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듯했다. 

그들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사체에서 DNA가 발견되어 쉽게 해결할 줄 알았는데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누구보다 팀원들이 가장 답답한 심정이었다.  


월권과 박호는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범죄 현장을 찾았다.

"와~ 형님! 몇 달 사이에 이렇게 바뀌어 버리나요?"

박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차에서 내리는 월권을 향해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무슨 산전벽해도 아니고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변하냐. 왠지 수사가 더 힘들어질 거 같은 기분이 팍팍 드는데. 휴~"

월권도 박호의 말에 동의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건 현장이라도 다시 보려고 왔는데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무얼 찾겠어요"

"사무실의 수사자료나 처음부터 검토해 보자. 답이 안 나오네."

둘은 황당하다는 듯 주변을 서성거렸다. 

은혜가 비참하게 살해된 현장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두워서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던 길가에는 많은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고, 으쓱해 공포심을 유발하던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변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곳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보였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네. 형님"

월권은 차문을 열며 힘없는 목소리로 박호에게 말했다. 자동차 엔진소리도 터덜터덜 힘없이 돌아가는 듯했다.


현장에서 복귀한 사무실은 소란스러웠다. 소란스럽다기보다는 일방적 통곡과 일방적 발악이었다. 

"우리 은혜를 이렇게 만든 놈을 왜 잡지 못하는 겁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지금까지 못 잡는 거냐고요? 어제 TV에서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질 거 같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제발 말 좀 해보시라고요?"

사무실에는 도형이 와 있었다. 몇 달간 휴직한 후 복직해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데 어제 방송에서 은혜사건이 나오는 것을 본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방송을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1시간의 방영 시간 내내 도형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다. 간신히 마음 추스르며 일상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무너지고 말았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에 들른 거었다. 소리치는 도형의 입에서는 진한 알코올 냄새가 흘러나왔다.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그를 위로해 주는 건 쓰디쓴 소주밖에 없었다. 

"아버님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며 꼭 검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박호가 도형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언제 잡을 거냐고! 내 새끼 저렇게 만든 놈 언제 잡을 거냐고!"

도형이 갑자기 박호의 멱살을 잡았다. 

"헥헥... 마음을 알겠는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왜. 안되는데? 왜! 왜! 왜!"

술에 취한 도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님. 그만하세요. 자꾸 이렇게 하시면 공무집행방해죄가 됩니다. 헉헉~"

옆에 서있던 월곤이 박호의 멱살 잡힌 손을 뜯으며 말했다.

"공무집행! 그래 고소해라. 고소해. 아무 필요 없다.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놈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건 줄 아냐? 우리 은혜 그렇게 만든 놈 잡히면 나도 은혜 따라가려고 맘먹고 있다. 그래 고소해!"

도형의 손과 목소리에는 더 힘이 들어갔다.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사람에게 법적 잣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오히려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우리 직원이 말한 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월곤이 옆에서 상황을 수습하려고 말을 꺼냈다. 

"엉엉엉. 은혜야. 불쌍한 우리 은혜가 어쩌다가 네가 이렇게 됐니. 다 아빠가 잘못했다. 이 아빠가 못나서 그런 거다. 미안하다. 은혜야"

박호의 멱살 잡은 손은 누가 말리지 않아도 도형의 손에서 힘없이 풀렸다. 이번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도형의 울음에 멍하니 서있던 박호는 당황했다. 집으로 돌아가 계시라는 직원들을 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박호야, 이주형 씨 연락처 있지? 전화해서 빨리 모셔 가라고 해라"

동한이 막내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무리 봐도 도형은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고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 줄 아는데 법대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박호가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신호음이 울리고 주형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주형 씨 되시죠?]

[네. 그런데 누구세요]

[목안 경찰서 박호 경장입니다.]

[경찰서요?]

굵직하고 낯선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와 경찰서라고 하자 주형이 긴장된 채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이 지금 저희 사무실에 계시는데 약주를 많이 드셔서 모시고 가야 할거 같습니다.]

[형이요?]

[네. 지금 인사불성입니다. 빨리 집으로 모셔야 할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갈게요]

주형은 야근을 끝내고 쓰러질 듯 피곤했지만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차를 몰아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 도착했다. 강력반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조용했다. 형이 울고 불고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저기. 아까 전화받았던 사람입니다."

주형이 사무실 문에서 가장 가까이 놓여있는 책상에 앉아있는 박호에게 말을 걸었다. 

"전화요?"

정신없이 수사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박호가 자신이 전화 한 걸 깜빡하고 반문을 했다.

"이도형 씨 동생입니다. 형을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았는데요."

"아~ 맞다!"

박호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말을 했다.

"저희 형이 시끄럽게 한다고 하시던데 형은 어디 있나요?"

"저기..."

박호가 대답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눈빛으로 사무실 한편의 긴 의자에 쪼그리고 누워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도형이 신발 한 짝은 벗겨지고 점퍼도 절반이 흘러내린 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걸 보고 있는데 가슴이 울컥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사건이 있기 전에도 술을 즐겨마시긴 했지만 어디 가서 실수하거나 주사를 부리진 않았다. 그런 사람이 대낮에 경찰서에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다 제풀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형, 일어나 집에 가자"

"어어... 으으... 누구세요?"

자신을 깨우는 주형의 말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야 주형이. 정신 차려. 집에 가야지."

"주형이 왔구나. 주형아~ 우리 은혜 불쌍해서 어쩌냐. 엉엉엉. 나 미쳐 버리겠다. 살고 싶지가 않다. 은혜 그렇게 만든 놈 잡아서 교도소 가는 거라도 보고 죽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되고 미치겠다. 어떻게 해야 하냐?"

도형이 또다시 대성통곡을 했다. 

"그래. 형 마음 알아. 일단 집에 가자. 여기 경찰서야."

형의 울부짖음에 그걸 보고 있는 주형도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형을 달래는 목소리가 점점 먹먹해지고 주형도 울먹였다. 그걸 보고 있는 강력반 형사들도 코끝이 찡해졌다. 서서 지켜보고 있던 그들 모두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에 죄인이 된 듯했다.

"주형아 이분들한테 제발 범인 좀 잡아 달라고 부탁드려 줘. 엉엉엉. 주형아!"

"알았어. 내가 말 잘해볼게. 일단 집으로 가자. 자 일어나"

주형이 의자에 누워 울고 있는 형을 일으켜 세웠다. 만취 상태인 도형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옆에 있던 박호가 달려들어 도형의 팔을 잡았다.

"아이코 큰일 날뻔했네요. 제가 차 있는 곳까지 같이 부축해 드릴게요"

박호의 목소리도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감사합니다."

주형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형의 팔짱을 끼고 사무실 문을 나왔다. 성인 남자 두 명이 부축을 했지만 술 취해 인사불성인 남자를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힘들게 차 안으로 밀어 넣다시피 해 차에 태웠다.

"형사님 감사합니다."

"아뇨. 저희가 빨리 범인을 검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잡도록 하겠습니다."

박호가 주형에게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형이 원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지금 완전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어요."

주형이 붉어진 눈으로 박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박호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서는 그의 입에서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금연한다고 끊은 지 몇 달된 담배가 무척 그리워졌다. 


[다음회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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