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9 (효라빠 장편소설).
회색 파티션 쳐진 강력팀 사무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수시로 울리던 전화벨도 분위기를 느꼈는지 침묵을 지켰다. 아침 조회가 시작되고 형사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수사과장실에 불려 갔다 온 팀장만 그들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막내 김종일 경장이 입을 열었다.
"저... 팀장님. 과장님 화나셨죠?"
"야 인마! 그러면 살인사건 발생하고 6개월이 지났는데 가만히 있겠냐? 범죄자 DNA까지 나왔는데 경찰에서 못 잡고 있다고 방송까지 탔어, 너 같으면 가만히 있겠냐고? 아씨 돌아 버리겠네"
장승처럼 서서 한놈만 걸려라 하고 벼르고 있던 이환 경감이 종일을 보며 소리 질렀다. 다른 팀원들의 머리는 거북이 마냥 수 그러 들었다.
"그러게요."
"그러게요? 고작 할 말이 그러게요?"
이환이 들고 있는 결재판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탕탕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거북이처럼 머리를 깊게 박고 있던 팀원들이 깜짝 놀라 어깨가 들썩 거렸고 머리는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제 [그것도 알고 싶다]에 우리 사건 방송 탄 거 니들 봤어?"
"......"
"봤어? 안 봤어?"
대답 없는 팀원들을 보고 있는 게 답답했는지 환이 더 크게 소리 질렀다.
"봤습니다."
자신들이 범죄를 저지른 마냥 기죽은 목소리가 팀원들의 입에서 가냘프게 흘러나왔다.
"너희들도 봤으니까 알겠지만 사회자가 뭐라고 하던? 유력한 증거인 DNA까지 발견됐는데 경찰에서 못 잡고 있다고 하잖아. 그게 말이 되냐? 어? "
"그러게요."
"야! 그러게요 하지 말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누군가는 대답해야 할거 같아 그중 선임인 전명근 경사가 한 마디 했다가 팀장의 화만 돋았다.
"지금 수사 상황이 어떻게 돼? 피해자 주변인들과 사건 발생 지점 근처 남성들 전부 DNA검사했잖아?"
"당연히 다 했죠."
"그런데 안 나와?"
"이상하게 동일 인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사건 발생지역 근처 거주 중인 남자들과 피해 여고생의 지인들 심지어는 가족들까지 남자란 남자는 다 검사했는데 나오지 않습니다."
명근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미쳐 버리겠군. 과장도 과장인데 여론이 상당히 안 좋단 말이야. 이 사건이 어제 방송 타고 얼마나 이슈가 될지는 안 봐도 눈에 선하다. 빨리 검거하지 못하면 과장이 아니라 서장님. 심지어는 더 윗선까지 난리가 날 수 있다고. 광수대에 특별수사본부 차리라는 압력까지 내려왔는데 서장님이 자존심 상한다고 그전에 빨리 검거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잖아."
"네."
환의 고민 섞인 말에 팀원들은 조용히 고개만 숙였다.
"그리고 이 시간 부로 강력 2팀, 3팀, 4팀까지 해서 당분간 이 사건만 매달릴 거야."
"네."
팀원들은 여전히 더 이상의 대답을 하지 못했다. 광수대에 사건이 넘어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듯했다.
형사들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사체에서 DNA가 발견되어 쉽게 해결할 줄 알았는데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누구보다 답답한 건 팀원들이었다.
명근과 종일은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범죄 현장을 찾았다.
"와~ 형님! 몇 달 사이에 이렇게 바뀌어 버리나요?"
종일이 주변을 둘러보며 차에서 내리는 명근을 향해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무슨 산전벽해도 아니고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변하냐. 수사가 더 힘들어질 거 같은 기분이 팍팍 드는데. 휴~"
명근도 종일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돌렸다.
"사건 현장이라도 다시 보려고 왔는데 크게 의미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무얼 찾겠어요"
"사무실의 수사자료나 처음부터 검토해 보자."
둘은 황당하다는 듯 주변을 서성거렸다.
은혜가 비참하게 살해된 현장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어두워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던 길가에는 많은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고, 으쓱해 공포심을 유발하던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변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곳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보였다.
"사무실 들어가자"
"네. 형님"
명근은 차문을 열며 기운 빠진 듯 종일에게 말했다. 자동차 엔진소리도 터덜터덜 힘없이 돌아가는 듯했다.
현장에서 복귀한 사무실은 소란스러웠다. 소란스럽다기보다는 일방적 통곡과 일방적 발악이었다.
"우리 은혜를 이렇게 만든 놈을 왜 잡지 못하는 겁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기에 지금까지 못 잡는 거냐고요? 어제 TV에서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질 거 같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제발 말 좀 해보시라고요?"
사무실에는 도형이 와 있었다. 몇 달 휴직한 후 복직해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데 방송에서 은혜사건이 나오는 것을 본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방송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1시간의 방영 시간 내내 도형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다. 간신히 마음 추스르며 일상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답답한 마음에 경찰서에 들른 거었다. 소리치는 도형의 입에서는 진한 알코올 냄새가 흘러나왔다.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그를 위로해 주는 건 쓰디쓴 소주밖에 없었다.
"아버님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며 꼭 검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종일이 도형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언제 잡을 거냐고! 내 새끼 저렇게 만든 놈 언제 잡을 거냐고!"
도형이 갑자기 종일의 멱살을 잡았다.
"헥헥... 마음을 알겠는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왜. 안되는데? 왜! 왜! 왜!"
술에 취한 도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버님. 그만하세요. 자꾸 이렇게 하시면 공무집행방해죄가 됩니다. 헉헉~"
옆에 서있던 명근이 종일의 멱살 잡은 손을 뜯으며 말했다.
"공무집행! 그래 고소해라. 고소해. 아무 필요 없다.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놈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건 줄 아냐? 우리 은혜 그렇게 만든 놈 잡히면 나도 은혜 따라가려고 맘먹고 있다. 그래 고소해!"
도형의 손과 목소리에는 더 힘이 들어갔다.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사람에게 법적 잣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오히려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우리 직원이 말한 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명근이 상황을 수습하려고 말을 꺼냈다.
"엉엉엉. 은혜야. 불쌍한 우리 은혜가 어쩌다가 네가 이렇게 됐니. 다 아빠가 잘못했다. 이 아빠가 못나서 그런 거다. 미안해. 은혜야"
종일의 멱살을 잡은 도형의 손은 누가 말리지 않아도 스르르 풀렸다. 그리곤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도형의 갑작스러운 울음에 멍하니 서있던 종일은 당황했다. 집으로 돌아가 계시라는 직원들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종일아, 이주형 씨 연락처 있지? 전화해서 빨리 모셔 가라고 해"
환이 막내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무리 봐도 도형은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 줄 알기에 법대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종일이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신호음이 울리고 주형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주형 씨 되시죠?]
[그런데, 누구세요]
[목안 경찰서 김종일 경장입니다.]
[경찰서요?]
굵직하고 낯선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와 경찰서라고 하자 주형이 긴장된 채 전화를 받았다.
[형님이 지금 저희 사무실에 계시는데 약주를 많이 드셔서 모시고 가야 할거 같습니다.]
[형이요?]
[네. 지금 인사불성입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갈게요]
주형은 야근 끝내고 쓰러질 듯 피곤했지만 형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차를 몰아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에 도착해 강력반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형이 울고 불고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저기~ 아까 전화받았던 사람입니다."
주형이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놓여있는 책상에 앉아있는 종일에게 말을 걸었다.
"전화요?"
정신없이 수사 서류를 검토하던 종일이 자신이 전화 한 걸 깜빡하고 있었다.
"이도형 씨 동생입니다. 형을 데려가라는 전화받았는데요."
"아~"
종일이 그제야 소란 피우다 지쳐 잠든 도형이 떠올랐다.
"저희 형이 시끄럽게 한다고 하시던데 형은 어디 있나요?"
"저기..."
종일이 눈빛으로 사무실 한 편의 긴 의자에 쪼그리고 누워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도형은 신발 한 짝이 벗겨지고 점퍼도 절반이 흘러내린 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었다.
그걸 본 주형이 울컥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사건이 있기 전에도 술을 즐겨마시긴 했지만 어디 가서 실수하거나 주사를 부리진 않았다. 그런 형이 대낮에 그것도 경찰서에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다 제풀에 지쳐 잠이 들어 있었다.
"형~ 일어나 집에 가자"
"어어... 으으... 누구세요?"
도형은 자신을 깨우는 주형의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나야 주형이. 여기 경찰서야 정신 차려. 집에 가야지."
"주형이 왔구나. 주형아~ 우리 은혜 불쌍해서 어쩌냐. 엉엉엉. 나 미쳐 버리겠다. 살고 싶지가 않다. 은혜 그렇게 만든 놈 잡아서 교도소 가는 거라도 보고 죽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되고 미치겠다. 어떻게 해야 하냐?"
도형이 또다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형 마음 알아. 일단 집에 가자."
형의 울부짖음에 그걸 보고 있는 주형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형을 달래는 목소리가 점점 먹먹해지고 주형도 울먹였다. 그걸 보고 있는 강력반 형사들도 코끝이 찡해졌다. 그들 모두 범인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한 죄인이 된 듯했다.
"주형아 이분들한테 제발 범인 좀 잡아 달라고 부탁드려 줘. 엉엉엉. 주형아!"
"알았어. 내가 말 잘해볼게. 일단 집으로 가자. 자 일어나"
주형이 의자에 누워 울고 있는 형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면서 만취 상태인 도형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꼬구라졌다. 옆에 있던 종일이 달려들어 도형의 팔을 잡았다.
"아이코 큰일 날뻔했네요. 제가 차 있는 곳까지 같이 부축해 드릴게요"
종일도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감사합니다."
주형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형의 팔짱을 끼워 사무실을 나왔다. 성인 남자 두 명이 부축을 했지만 술 취해 인사불성인 남자를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차 안으로 밀어 넣다시피 해 차에 태웠다.
"형사님 감사합니다."
"아뇨. 저희가 빨리 범인을 검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검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종일이 주형에게 미안해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형이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완전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어요."
주형이 붉어진 눈으로 종일을 바라봤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종일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금연한다며 끊은 지 몇 달 된 담배가 무척 그리워졌다.
[다음 회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형은 도형을 간신히 집으로 데리고 왔다. 현관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와본 형의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은혜와 같이 살 때 형수님이 없어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포근했던 집은 온통 쓰레기 투성이에 바닥에는 빈 술병만 나뒹굴었다. 싱크대에는 먹고 남은 배달음식들이 쌓여있고, 냉장고에는 몇 개 안 되는 반찬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형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형! 형 마음은 이해되지만 이렇게 살면 안 돼"
"......"
소파에 앉아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도형은 아무 말 없었다.
"내 말 들려?"
"말해"
"형이 힘든 줄 아는데 이제 정신 좀 차리자"
"미친 새끼"
도형의 입에서 순간 욕이 튀어나왔다.
"흥분하지 말고."
"너는 이해할 줄 알았는데, 너도 내 마음을 모르는구나."
"그런 말이 아니야. 형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나를 생각한다고?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소파에 기대어 멍하게 천장만 올려보고 있던 도형이 몸을 돌려 주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언제 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형이 한번 둘러봐.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주형도 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 그전처럼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우리 은혜가 죽은 게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살아가면 잘 사는 거니? 그게 맞는 거야?"
도형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형! 내 말 뜻은 그게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은 해야 되지 않겠냐는 거야. 이렇게 막 산다고 하늘에 있는 은혜가 잘한다고 할거 같아? 만약 내가 은혜라면 아빠가 이렇게 사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미친 소리 하지 마. 그건 네가 내 입장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야. 범인도 잡지 못하고 몇 달이 흘렀는데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살 수 있겠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는 그렇게 못하니까.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
흥분해 말을 이어가던 도형이 눈물을 터트렸다. 주형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형이 형수를 하늘로 보내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은혜 때문이었기에 도형의 말에 아무런 대꾸 하지 못했다.
'아! 아! 이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우리 은혜 이렇게 만든 새끼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미친 듯이 울던 도형이 욕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꽉 쥔 주먹으로 미친 듯이 소파를 두드렸다. 매퀘한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주변에 있는 것은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리모컨, 쿠션, 굴러다니던 광고지가 거실 이곳저곳으로 날아갔다. 그러다 소파에서 굴러 떨어지자 거실 바닥을 정신없이 때렸다.
'하느님, 제발 가르쳐 주세요. 당신은 다 알고 있잖아요. 우리 은혜를 이렇게 만든 놈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제발 부탁합니다. 제발! 제발! 죽이지 않을 거면 내 앞에라도 나타나게 해 주세요. 제가 복수하겠습니다. 하느님 제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다. 은혜엄마를 데려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왜 우리 은혜까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당신은 신이니까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이유라도 말해주세요. 엉엉엉'
도형의 온몸이 뒤틀리고,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핏줄이 터져 버린 두 눈은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주형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형의 미친듯한 처절한 통곡을 올곳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서 눈물만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신이라도 원망해야 형의 가슴속 한이 조금이라도 옅어질 거 같았다. 계속 소리 지르던 도형은 제 풀에 지쳤는지 은혜만 외치며 거실 바닥에 널부러 졌다.
"주형아! 주형아!"
"응. 말해"
"나 이제 어떻게 사니? 어떻게 살면 좋겠니? 제발 가르쳐 주라. 흑흑흑"
도형이 흐느끼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형이 바닥에 누워있는 형의 얼굴을 감싸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형도 도형을 안고 흐느낄 뿐이었다.
"미안해 형. 내가 도와줄 게 없네. 진짜 미안해. 아까 형사님이 그러는데 수사팀을 더 늘려서 검거하려고 노력하고 있데. 그러니 금방 잡힐 거야. 조금만 기다려보자."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데? 우리 은혜가 그렇게 비참하게 가버렸는데"
"......"
주형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도형을 더 끌어 앉았다. 은혜가 그렇게 되고 수없이 들은 말이지만 항상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 되어있었다.
울다 지친 도형의 정신이 조금은 돌아왔는지 말라비틀어진 인형이 되어 몇 마디 꺼냈다.
"주형아 이제 집에 가봐. 가서 애들도 챙겨야지. 너도 언제까지 내 옆에서 있을 수 있겠냐. 술좀 깬 거 같으니 가봐. 미안하다. 형이 못난 모습만 보여서"
"내가 국밥이라도 한 그릇 포장해 올게 잠깐 기다리고 있어."
마냥 있을 수 없던 주형이 저녁이라도 먹이려고 했다.
"괜찮아. 배달시켜서 먹을게. 빨리 가서 제수씨랑 애들하고 저녁 먹어. 나는 알아서 할게. 밥생각도 없고 일단 한숨 자야겠어."
"그래? 그럼 자고 일어나서 꼭 뭐라도 먹어.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
"알았어. 빨리 가봐"
형을 혼자 두고 가는 게 마음 놓이지 않았지만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주형은 야근을 끝내고 하루종일 형에게 매달려 있어서 인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입맛이 없었지만 와이프 성화에 못 이겨 저녁을 몇 술 뜨고 자리에 누웠다. 멍한 정신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져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싶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너무 피곤해 바로 잠이 들지 않아 고통스럽게 버티다 가까스로 잠깐 잠이 들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아~ 이 씨~'
짜증 나는 듯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에는 목안경찰서 김종일 경장이었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돼 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경찰에서 전화 올리가 없는데...'
통화 버튼을 누르는 짧은 순간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목안경찰서 김종일 경장입니다]
[네. 형사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 저]
종일이 말을 바로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말하세요.]
잠을 못 자 피곤한 주형은 짜증이 올라왔다.
[그게.....]
[말하라니까요.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뭐 하시는 거예요?]
예민해 있던 주형이 종일에게 소리 질렀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혀... 형... 형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주형이 아무 말 없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라고요? 다시 말해 보세요]
[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형이 죽었다고요?]
[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낮에 형이랑 계속 같이 있었는데. 형사님도 봤잖아요. 형이 소란 피워 경찰서에서 데리고 온 것을...]
주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 그게.... 형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사시던 아파트 뒷산 나무에 목을 걸어 자살했습니다. 지나가던 주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
주형의 다리가 풀렸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아야. 형이 자살했데..."
멍한 상태인 주형이 가냘프게 아내에게 전했다.
"뭐라고요?"
미아가 알아듣지 못했는지 다시 물었다.
"형이 죽... 죽었데..."
그의 입에선 똑같은 말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