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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ㅅㄱ Apr 27. 2023

DNA 2.

따뜻한 살인 25.(효라빠 장편소설)

곽태성은 DNA채취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철문이 꽝 닫히는 소리에 동료 수용자들이 그를 쳐다봤다.

"뭘 봐~ 시발 짜증 나게"

"어이~ 태성이 왜 그런가"

평상시 조용히 지내던 곽태성의 행동에 다른 수용자가 어이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퍽!'

곽태성이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옆에 가지런히 놓아둔 모포를 발로 찼다. 

"신경 쓰지 말고 당신들 일이나 하라고 열받으니까!"

"야~ 인마, 뭐라는 거야? 누가 널 건들었다고 지랄이야"

그 방의 가장 연장자로 봉사원(반장)을 맡고 있는 수용자가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열받아서 그러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이 새끼가 미쳤나!"

반장이 곽태성의 멱살을 잡았다. 

"그래 미쳤다!"

곽태성도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소리 질렀다.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였다.

주변 수용자들이 둘을 뜯어말렸다. 반장이 싸우면 같이 징벌받을 걸 알기에 못 이긴 척 멱살을 놓았다. 주먹은 올라가지 않았지만 둘은 욕을 주고받으며 언성을 높였다.

소란이 커지자 옆의 수용자가 비상벨을 눌렀고 주형이 달려왔다.

"무슨 일 있어요?"

비상벨 알람 소리에 놀라 다급하게 뛰어온 주형이 방 사람들에게 물었다.

"부장님 별일 아닙니다. 저와 곽태성이 대화하면서 목소리가 조금 커졌습니다."

반장이 연장자답게 분위기를 수습하듯 주형에게 예의 바르게 말했다.

"진짜 별일 아닌 거예요?"

주형이 다시 한번 물었다.

"네, 얘기 끝났으니 조용히 있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다른 수용자들도 일을 크게 만들기 싫은 눈치인지 아무 말없이 분위기만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곽태성은 혼자 씩씩 거리고 있었다.

"곽태성 너는 왜 그렇게 흥분해 있어?"

"악~~"

주형의 말에 곽태성이 소리 질렀다. 

"야! 너 왜 그래?"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곽태성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아니라고 말하면서 계속 흥분해 있잖아. 이게 뭐가 아니야?"

"그냥 신경끄십쑈"

곽태성이 등을 돌리며 말을 잘랐다. 주형과 다른 수용자들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쳐다봤다. 평상시 곽태성의 행동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곽태성은 주형의 말이라면 무조건 '네~네~'로 끝낼 정도로 잘 따랐다. 방의 다른 수용자들과도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 곽태성이 DNA채취를 끝내고 정반대의 행동을 하자 다들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일단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있어."

반장과 곽태성의 말다툼이 수그러 들자 주형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마무리했다. 주형이 담당실로 돌아가자 방안의 수용자들도 자기 하던 일을 계속했다. 

구석에 앉은 곽태성은 자신의 짐꾸러미에서 수첩을 꺼냈다. 거기에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듯한 그림과 메모들이 적혀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동그라미에 빨간색 엑스 표시가 두 개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곽태성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수첩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목안경찰서 강력팀 사무실은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DNA법이 시행되면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용자들의 DNA가 확인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경찰서에서는 미제 사건을 해결한 곳도 있었다. 대부분의 전과자나 범죄자 들은 하나의 범죄만 저지르지 않았다. 검거되지 않는다면 비슷한 내용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에 잡히더라도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굳이 자신의 여타 범죄행위를 말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징역형을 더 받고 싶은 사람은 없으므로 범죄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런 범죄는 암수범죄가 되어 사라질 가능성이 많았다.

간혹 살인이나 성폭행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고의로 교도소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주변인이나 지인들 위주로 탐문 수사하기 때문에 교도소까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용의자가 특정된 후에 소재 파악이 되지 않으면 교정기관에 수사협조 공문을 보내기도 하지만 특정되지 않으면 교도소에 확인한다는 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게 강력 범죄를 실행하고 교도소를 은신처로 활용하는 이유였다. 절도나 경미한 범죄를 일부로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온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 잠잠해지면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통용되는 것이다. 교도소에 갈 살인자나 성폭행범들이 자기 발로 교도소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팀장님! 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박호 경장이 프린터에서 출력한 공문을 들고 팀장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뭔데 그렇게 난리야?"

"저... 저... 여기 공문 있습니다."

박호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서의 한 부분을 지목했다. 

"참나 시끄럽기는, 뭐가 있다는 거야?"

"네"

그 문서에는 DNA 확인자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자신들이 범죄현장에서 발견했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문서였다.

"그러니까 목안교도소에서 동일한 DNA가 확인이 됐다는 말이잖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드디어 범인을 잡았네. 하하하"

"이제 고생 끝났습니다."

김동한 경감과 박호 경장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서로 얼싸안았다.

"이 새끼. 이래서 우리가 못 잡고 있었구먼. 이놈 죄명은 뭐야?"

"확인해 보니 특수절도랍니다."

"뭐? 특수 절도?"

"강간살인을 한 놈이 특수절도라..."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 서울에서도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현장에서도 동일한 DNA가 사체에서 나왔습니다."

"정말 죽일 놈이군. 그러니까 젊은 여성을 두 명이나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거네?"

"맞습니다. 잘못됐으면 연쇄살인이 발생할 뻔했습니다."

"꼬리가 길어 잡힐 것 같으니 절도로 징역 살고 있었구먼."

"그런 거 같습니다. 정말 흉악한 놈입니다."

"목안교도소에 빨리 공문 보내고, 조사 일정 잡아"

"알겠습니다."


교도소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 수용자 아침 작업장 출역이 끝나고 기동순찰팀 팀원들은 사무실에 모였다. 팀장은 경찰에서 온 수사협조 공문을 팀원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얼마 전 '그것도 알고 싶다'라는 TV프로에서 우리 지역에 발생한 살인 사건 방송을 여러분들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한동안 시끌시끌했죠. 그 사건 용의자 DNA가 얼마 전 우리가 채취한 DNA와 동일하다고 판명 났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 수사협조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 용의자는 현재 미지정 사동에 수용 중인 1800번 곽태성입니다. 아직 본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곽태성은 엄중관리대상으로 지정해서 특별관리에 들어갈 겁니다."

"팀장님! 곽태성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씀이신가요?"

성균이 곽태성이라는 말에 놀라 팀장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피해자의 시신에서 나온 정액과 곽태성의 DNA가 같으니 확실하지 않겠어?"

"DNA가 동일하다면 맞겠죠. 그놈 평상시엔 조용하고 수용생활도 잘했는데, 정말 사람 모르겠네요."

성균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소문으로는 서울에서 비슷한 사건이 또 있다는 말이 있어. 그때도 증거는 있는데 범인을 못 잡았거든.

"그렇다면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계획적인 거로 봐야겠는데요?"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그 수용자가 전 징역 살면서 자네 도와줬다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조폭이 저를 보복하려고 했던걸 이주형 부장에게 알려서 제가 큰 위기를 넘겼죠. 그것도 그거지만 주형이 생각하니 큰일인데요"

성균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뭐가 큰일이야. 자기 사동에서 평상시와 같이 관리하면 되는 거지"

"그게..."

성균이 말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게 답답했는지 팀장이 다그치듯 말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무슨 일 있어?"

"이걸 말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 답답하게 왜 그래. 빨리 말해봐"

팀장이 짜증을 내자 성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여고생인 거 알고 계시죠? 그 여고생이 이주형 부장의 조카입니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 얼마 전에 그 충격으로 이 부장의 형이 자살했습니다."

"뭐라고? 진짜?"

팀장이 놀라며 물었다.

"이 부장이 병가 내고 출근 안 했던 것도 형이 그렇게 자살해 버리자 힘겨워서 그랬을 겁니다. 조카 사건도 있고 형까지 그렇게 되어 버리니 지금 제정신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자신이 관리하는 사동에 그 가해자가 있으니 그걸 알면 심정을 말이 아닐 겁니다."

"그래? 이 부장 이 사실을 알면 충격이 크겠는데, 무슨 조치를 취하긴 해야겠군. 수용자를 다른 사동으로 옮기던지 아니면 이 부장 배치를 바꾸던지 말이야"

"그래야겠죠"

"이 부장은 아직 모르겠지?"

"그러겠죠. 저도 팀장님을 통해 방금 들었으니까요"

성균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고 사무실은 한숨 소리만큼이나 깊은 정막에 빠져 들었다.

적지 않은 시간 교도소에 일하면서 성균이 항상 걱정했던 일이 주형에게 벌여져 버렸다. 자신이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 피해자가 되어 그 가해자를 교도소에서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주형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이후로 많은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질 거라는 것은 확실했다. 한 명의 사악한 범죄자 때문에 주형은 조카와 형을 잃었다. 더군다나 그 범죄자는 주형 자신이 애틋한 마음을 가지며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었던 수용자였기에 정신적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이 비참한 사실을 알게 될걸 생각하니 자신의 일처럼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듯했다. 성균은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이라고 결론을 지어 놓고 있었다. 그건 비참하게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법에 따라 형벌을 집행하는 집행자이지만 그 상황에서는 법률이 아니라 자신의 형벌을 집행할 거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처참한 집행을 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주형은 어떻게 대처를 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넘어야 할 큰 산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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