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살인 24.(효라빠 장편소설)
주형을 진정시키고 성균은 팀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공문을 읽으며 팀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팀의 막내가 성균에게 말을 걸었다.
"주임님 이번에 공문 하나 내려왔는데 아직 안 보셨죠?"
"무슨 공문?"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DNA법)]이 새로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용자들의 디엔에이를 채취하라는 공문이 검찰청에서 왔습니다. 저희 팀에서 하라고 하는데요"
"디엔에이법이라고?"
"네."
"그러면 교도소의 모든 수용자들을 하는 거야?"
"그렇진 않구요. 법률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범죄에 해당하는 수용자만 한답니다. 검찰청에서 보낸 공문에 명단이 있습니다."
"법률 조문과 공문 좀 볼까?"
"여기 있습니다."
성균은 팀원이 건네는 서류를 받았다.
후배 대원이 설명한 대로 강력사건의 범죄수법이 흉포화, 지능화, 연쇄범죄화됨에 따라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미리 확보 · 관리하는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데이터베이스제도를 도입해서 강력범죄가 발생하였을 때 등록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와의 비교를 통하여 신속히 범인을 특정 · 검거하고, 무고한 용의자를 수사선상에서 조기에 배제하며, 더 나아가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가 등록된 사람의 재범방지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제정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자신의 일거리가 하나 더 생겼지만 범인검거와 재범방지를 위해 좋은 법으로 보였다.
공문의 뒷장을 넘기자 DNA 채취할 수용자의 명단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았다. 눈에 띄는 수용자의 이름도 보였다. 최태식과 곽태성도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DNA채취는 어떻게 하는 거야?"
"이게 채취 키트인데요. 당사자 입을 벌려 타액을 키트에 묻혀 봉하면 됩니다. DNA채취 후 동의받은 서류와 채취한 키트를 검찰청으로 보내면 끝납니다."
"보기보다 간단하네?"
"네. 하지만 대상자가 많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채취 키트 챙겨서 준비해 바로 가게."
"주임님. 명단에 최태식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놈이 순순히 하려 할까요?"
"거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사동에 곽태성도 있으니 같이 하면 되겠다"
"알겠습니다."
대상자 명단을 보며 팀원들과 업무 분장을 했다. 최태식이 있는 사동은 성균이 가기로 했다. 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순순히 할거 같지 않았다. 후배를 보내기보다는 본인이 해야 할거 같았다. 최태식의 DNA를 채취하는 것도 탐탁지 않았지만 주형을 다시 본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미지정 사동으로 들어갔다. 담당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주형이 피곤에 지친 듯 퀭한 모습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 부장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은데. 하하"
성균이 사동에서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들리자 멋쩍어하며 말했다.
"또 무슨 일 있습니까?"
"흠, 나도 자주 오기 싫은데... DNA법이라고 이번에 새로 생겼는데 자네 사동에도 대상자들이 있어서 DNA채취 좀 해야겠어"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요?"
"공문 봐봐"
성균이 서류철을 건네며 말했다.
"최태식과 곽태성이 해당되네요?"
"그놈들 면상 보기 싫은데 또 봐야겠군. 짜증 나는구먼"
"최태식과 사이도 좋지 않은데 다른 직원을 보내지 그러셨어요."
"최태식 같은 문제수는 나만 보기 싫겠어 다른 직원도 마찬가지겠지."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최태식과 언성을 높이고 실랑이를 해서 다른 직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건 자신이 지는 것 같았고,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을 건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이 부장. 최태식과 곽태성 방문 열어주고, 인터폰으로 담당실로 나오라고 해줘"
"네. 알겠습니다."
담당실로 그들이 왔다. 성균은 DNA법 조항과 검찰청에서 온 공문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여기 조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번에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재정이 됐습니다. 검찰청에서 보낸 공문에 명단이 있어 DNA채취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뭔 소립니까?"
최태식이 성균의 설명을 듣고 인상을 쓰며 물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최태식 씨가 이 법에 해당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DNA를 채취해서 검찰청의 데이터 베이스에 보관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합니까?"
"거기 조문에 적혀 있잖아요. 범죄 혐의가 있을 때도 하지만 재범방지 차원에서도 한다고. 아~ 됐고. 나는 법과 규정에 따라서 하는 겁니다. 저는 분명히 고지해 줬습니다. 입 벌리세요. 빨리 채취합시다."
자꾸 물어보는 최태식에 성균이 짜증 나는 듯 대답했다.
"성질머리 하고는. 내가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본인이 거부한다면 검찰청에서 법원에 강제집행 영장을 청구해 판사의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할 수 있습니다."
"영장이요?"
"그래요."
최태식이 영장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최태식 씨 여기에 해당된 범죄를 저지른 건 사실이잖아요. 웬만하면 하세요. 나중에 영장 받아 강제로 하게 되면 더 좋을 게 없지 않겠어요? 어차피 해야 될 거 같은데 지금 해버리세요."
담당실 의자에 앉아 듣고 있던 주형이 말했다.
"흠... 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하겠습니다."
주형의 말에 최태식이 고분고분 해졌다. 최태식은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았지만 주형의 지시에는 잘 따랐다. 자해로 몸이 불편한 자신을 의료과 보내주는 등 이것저것 잘 챙겨주자 주형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으악~~ 악~"
갑자기 최태식이 배를 움켜잡으며 쓰러졌다.
"이봐 1004번 최태식 왜 이래?"
성균이 당황한 듯 최태식을 불렀다. 최태식은 바닥에 엎드려 배의 통증을 호소했다.
'참나~ 이거 하기 싫어서 쨉 쓰는 거야 뭐야!'
성균이 어이없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요즘 종종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다음 주에 외부병원에서 위내시경 검사 일정도 잡혀 있습니다. 일부러 그러진 않을 거예요."
주형이 성균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며 최태식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최태식 씨 많이 힘들어요? 의료과 가볼래요?"
"참을만합니다. 오전에 처방받은 약이 있으니 일단 먹고 버텨 보겠습니다."
"많이 안 좋으면 DNA채취는 다음에 해도 되니까 방으로 들어갑시다."
"아닙니다. 그냥 빨리 끝내고 쉬겠습니다."
최태식이 배를 움켜 잡은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DNA채취를 했다.
"다 됐으니까 최태식 씨는 방으로 들어가세요"
"알겠습니다."
채취를 끝낸 최태식이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끊긴 후유증 때문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최태식의 DNA채취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주형의 설득 덕분에 빨리 끝내자 성균은 한숨 놓았다. 이제 곽태성만 남았다.
"곽태성 방금 말한 거 들었지?"
"네."
"너도 해당되니까 DNA채취하자"
"저... 하기 싫습니다."
"뭐?"
"안 하고 싶습니다."
곽태성이 DNA채취를 거부했다. 성균은 성폭력등 강력범죄자인 최태식이 아니라 특수절도 잡범인 곽태성이 거부하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뭔 소리야? 여기 법 조문과 공문 있잖아. 다시 한번 읽어줘? 너한테 피해 가는 거 없어. 그리고 너만 특별하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해당된 사람은 다 하는 거야."
"......"
곽태성이 성균이 보여주는 서류철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 읽었지? 여기 동의서에 사인하고, 입 벌려봐 빨리 끝내자."
"진짜 하기 싫은데요."
곽태성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왜? 하기 싫은 이유라도 있어? "
"그냥 하기 싫은데요"
"그냥이 어딨어 인마. 이게 애들 장난이야. 지금은 임의로 하는 거지만 네가 부동의 하면 검찰청에서 법원 영장발부받아 강제로 할 수 있다니까?"
"......"
곽태성이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
"왜 그래 태성아~ 너 지금까지 수용 생활 잘했잖아. 그리고 부장님이 너 얼마나 챙겨주냐. 그런데 네가 안 하면 되겠어? 네가 정말 하기 싫다면 안 해도 되지만 잘 생각해 봐."
성균이 담당인 이 부장까지 내세우며 말을 꺼냈다.
"그래 웬만하면 해버려. 문서 보니까 한다고 해서 특별하게 피해 가는 것도 없던데. 태성아 빨리 하고 마무리하자"
"...... 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주형의 설득에 곽태성이 동의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처럼 보였다.
"그래. 아주 보기 좋다~ 하하하. 역시 이 부장이 근무를 참 잘해."
곽태성이 동의하자 성균이 웃으며 말했다.
"곽태성이 너 다른 범죄 있는 거 아냐? 또 절도했지? 하하하"
성균이 입을 벌리고 있는 곽태성을 향해 농담을 건넸다.
"컥컥 아뇨. 아뇨."
갑자기 곽태성이 놀라며 대답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눈빛이 흔들렸다.
"뭘 이런 거로 식은땀까지 흘리고 그래.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나."
곽태성의 DNA채취도 주형 덕분에 무난하게 마무리 됐다. 곽태성이 방으로 들어가고 담당실에는 주형과 성균 그리고 막내 팀원만 남았다.
"곽태성이 저놈 저렇게 예민하게 굴 이유가 있나? 내가 한 농담에 식은땀까지 흘리던데. 저 새끼 저거 진짜 다른 범죄 있는 거 아냐?"
성균이 수상하다는 듯 막내 직원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최태식 보다 더 튀는데요"
"그렇지? 네가 봐도 이상하지?"
"네."
"확실해 저놈 또 어디서 절도한 게 있어. 그게 걸릴까 봐 저 지랄을 하는 거야. 하여튼 도둑놈 새끼들은 믿을 수가 없어."
성균이 DNA채취 키트와 서류등을 챙기며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꼭 그게 아닐지도 모르죠. 자기 DNA채취한다면 저 같아도 거부감이 들 거 같은데요"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주형이 말했다.
"역시 이 부장은 보살이야. 하하하. 이렇게 수용자들 입장도 잘 이해해 주고. 그런 덕분에 애들이 이 부장 말은 잘 들어서 수월하게 끝내긴 했네. 고마워 하하. 우리 철수할게 고생해"
"네. 고생하셨습니다.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서 더 바쁘겠습니다."
"할 수 없지 어떡하겠어. 그래도 이게 나중에 한몫 단단히 할거 같단 생각이 들어. 징역 안에 나쁜 놈들 꽉 찼잖아. 내가 힘들어도 그런 놈들 하나라도 더 잡아내면 좋은 거지"
성균이 신이 난 듯 웃는 목소리로 말하고 나갔다.
썰물이 빠져나가듯 순식간에 사람들이 나가자 담당실은 고요해졌다. 주형은 또다시 멍하니 의자에 몸을 묻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