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살인. 11(효라빠 장편소설)
주형을 진정시키고 성균은 팀사무실로 돌아왔다. 공문을 읽으며 팀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주임님 이번에 공문 하나 내려왔는데 아직 안 보셨죠?"
"무슨 공문?"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DNA법)]이 새로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용자들의 디엔에이를 채취하라는 공문이 검찰청에서 왔습니다. 저희 팀에서 하라고 하는데요"
"디엔에이법이라고?"
"네."
"그러면 교도소의 모든 수용자들을 하는 거야?"
"그렇진 않구요. 법률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범죄에 해당하는 수용자만 한답니다. 검찰청에서 보낸 공문에 명단이 있습니다."
"공문 좀 볼까?"
"여기 있습니다."
성균은 팀원이 건네는 서류를 받았다.
후배 대원이 설명한 대로 강력사건의 범죄수법이 흉포화, 지능화, 연쇄범죄화됨에 따라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를 미리 확보 · 관리하는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데이터베이스제도를 도입해서 강력범죄가 발생하였을 때 등록된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와의 비교를 통하여 신속히 범인을 특정 · 검거하고, 무고한 용의자를 수사선상에서 조기에 배제하며, 더 나아가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가 등록된 사람의 재범방지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제정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일거리가 하나 더 생겼지만 범인검거와 재범방지를 위해 좋은 법으로 보였다.
공문의 뒷장을 넘기자 DNA 채취할 수용자 명단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았다. 눈에 띄는 수용자의 이름도 보였다. 최태식과 곽태성도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DNA채취는 어떻게 하는 거야?"
"이게 채취 키트인데요. 해당자 입의 타액을 키트에 묻혀 봉하면 됩니다. DNA채취 후 동의받은 서류와 키트는 검찰청으로 보내면 끝납니다."
"보기보다 간단하네?"
"하지만 대상자가 많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채취 키트 챙겨서 준비해 바로 가게."
"주임님. 명단에 최태식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놈이 순순히 하려 할까요?"
"거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사동에 곽태성도 있으니 같이 하면 되겠다"
"알겠습니다."
대상자 명단을 보며 팀원들과 업무 분장을 했다. 최태식이 있는 사동은 성균이 가기로 했다. 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순순히 할 것 같지 않았다. 후배를 보내려니 먼가 불안했다. 최태식의 DNA를 채취도 부담 스러 웠지만 주형을 다시 본다는 것도 꺼림칙했다.
미지정 사동으로 들어갔다. 담당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자 주형이 피곤에 지친 듯 퀭한 모습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 부장 너무 자주 보는 것 같은데. 하하"
성균이 사동에서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들리자 멋쩍어했다.
"또 무슨 일이세요?"
"흠, 나도 자주 오기 싫은데... DNA법이라고 이번에 새로 생겼는데 자네 사동에도 대상자가 있어서 채취 좀 해야겠어"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요?"
"공문 봐봐"
성균이 서류철을 건네며 말했다.
"최태식과 곽태성이 해당되네요?"
"그러게 그놈들 면상 보기 싫은데 또 봐야겠군. 짜증 나는구먼"
"최태식과 사이도 좋지 않은데 다른 직원을 보내지 그러셨어요."
"최태식 같은 문제수는 나만 보기 싫겠어 다른 직원도 마찬가지겠지."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최태식과 언성을 높이고 실랑이를 해 후배를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건 자신이 지는 것 같았고,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을 건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이 부장. 최태식과 곽태성 담당실로 나오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담당실로 그들이 왔다. 성균은 DNA법 조항과 검찰청에서 온 공문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여기 조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번에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재정이 됐습니다. 검찰청에서 보낸 공문에 명단이 있어 DNA를 채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뭔 소립니까?"
최태식이 성균의 설명을 듣고 인상을 썼다.
"쉽게 설명하자면 최태식 씨가 이 법에 해당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DNA를 채취해서 검찰청 데이터 베이스에 보관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합니까?"
"거기 조문에 적혀 있잖아요. 범죄 혐의가 있을 때도 하지만 재범방지 차원에서도 한다고. 아~ 됐고. 나는 법과 규정에 따라서 하는 겁니다. 저는 분명히 고지했습니다. 입 벌리세요. 빨리 합시다."
자꾸 물어보는 최태식에 성균이 짜증 나는 듯 대답했다.
"성질머리 하고는. 내가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본인이 거부한다면 검찰청에서 법원에 강제집행 영장을 청구해 판사의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할 수 있습니다."
"영장이요?"
"그래요."
최태식이 영장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최태식 씨 여기에 해당된 범죄를 저지른 건 사실이잖아요. 웬만하면 하세요. 나중에 영장 받아 강제로 하게 되면 좋을 게 더 없지 않겠어요? 어차피 해야 할거 지금 해버리세요."
담당실 의자에 앉아 듣고 있던 주형이 설명해 줬다.
"흠... 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하겠습니다."
주형의 말에 최태식이 고분고분 해졌다. 최태식은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았지만 주형의 지시에는 잘 따랐다. 자해로 몸이 불편한 자신을 의료과 보내주는 등 이것저것 잘 챙겨주자 주형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으악~~ 악~"
갑자기 최태식이 배를 움켜잡으며 쓰러졌다.
"이봐 1004번 최태식 왜 이래?"
성균이 당황한 듯 최태식을 불렀다. 최태식은 바닥에 엎드려 배의 통증을 호소했다.
'이거~, 하기 싫어서 쨉 쓰는 거야 뭐야!'
성균이 어이없다는 듯 혼잣말했다.
"요즘 종종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다음 주 외부병원 위내시경 검사 일정도 잡혀 있습니다. 일부러 그러진 않을 거예요."
주형이 성균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며 최태식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최태식 씨 많이 힘들어요? 의료과 가볼래요?"
"참을만합니다. 오전에 처방받은 약이 있으니 일단 먹고 버텨 보겠습니다."
"많이 안 좋으면 DNA채취는 다음에 해도 되니까 방으로 들어갑시다."
"아닙니다. 그냥 빨리 끝내고 쉬겠습니다."
최태식이 배를 움켜 잡은 상태에서 입을 벌리고 DNA를 채취했다.
"다 됐으니 최태식 씨는 방으로 들어가세요"
"알겠습니다."
최태식이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끊긴 후유증 때문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최태식의 DNA채취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주형의 설득 덕분에 빨리 끝내자 성균은 한숨 놓았다. 이제 곽태성만 남았다.
"곽태성 방금 말한 거 들었지?"
"네."
"너도 해당되니까 DNA채취하자"
"저... 하기 싫습니다."
"뭐?"
"안 하고 싶습니다."
곽태성이 DNA채취를 거부했다. 성균은 성폭력등 강력범죄자인 최태식이 아니라 특수절도 잡범인 곽태성이 거부하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뭔 소리야? 여기 법 조문과 공문 있잖아. 다시 한번 읽어줘? 너한테 피해 가는 거 없어. 그리고 너만 특별하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해당된 사람은 다 하는 거야."
"......"
곽태성이 성균이 내미는 서류철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 읽었지? 여기 동의서에 사인하고, 입 벌려봐 빨리 끝내자."
"진짜 하기 싫은데요."
곽태성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왜? 하기 싫은 이유라도 있어? "
"그냥 하기 싫은데요"
"그냥이 어딨어 인마. 이게 애들 장난이야. 지금은 임의로 하는 거지만 네가 부동의 하면 검찰청에서 법원 영장발부받아 강제로 할 수 있다니까?"
"......"
곽태성이 침묵을 지켰다.
"왜 그래 태성아~ 너 지금까지 수용 생활 잘했잖아. 그리고 부장님이 너 얼마나 챙겨주냐. 그런데 네가 안 하면 되겠어? 네가 정말 하기 싫다면 안 해도 되지만 잘 생각해 봐."
성균이 담당인 이 부장까지 내세우며 말을 꺼냈다.
"웬만하면 해버려. 문서 보니까 해도 특별하게 피해 가는 것도 없던데. 태성아 빨리 하고 마무리하자"
"......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주형의 설득에 곽태성이 동의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거센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처럼 보였다.
"그래. 아주 보기 좋다~ 역시 이 부장이 근무를 참 잘해."
곽태성이 동의하자 일이 빨리 끝날듯해 성균이 웃음을 보였다.
"곽태성이 너 다른 범죄 있는 거 아냐? 또 절도했지? 하하하"
성균이 입을 벌리고 있는 곽태성을 향해 농담을 건넸다.
"컥컥 아뇨. 아뇨."
다른 범죄라는 말에 갑자기 곽태성이 놀랬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눈빛이 흔들렸다.
"뭘 이런 거로 땀까지 흘리고 그래. 조금만 참아 금방 끝나."
곽태성의 DNA채취도 주형 덕분에 무난하게 마무리 됐다. 곽태성이 방으로 들어가고 담당실에는 주형과 성균 그리고 막내 팀원만 남았다.
"곽태성 저놈 저렇게 예민하게 굴 이유가 있나? 내가 한 농담에 식은땀까지 흘리던데. 저 새끼 진짜 추가 범죄 있는 거 아냐?"
성균이 수상하다는 듯 막내 직원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최태식 보다 더 튀는데요"
"그렇지? 네가 봐도 이상하지?"
"네."
"확실해 저놈 또 어디서 절도한 게 있어. 그게 걸릴까 봐 저 지랄을 하는 거야. 하여튼 도둑놈 새끼들은 믿을 수가 없어."
성균이 DNA채취 키트와 서류를 챙기며 혼잣말했다.
"꼭 그게 아닐지도 모르죠. 자기 DNA채취한다면 저 같아도 거부감 들 거 같은데요"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주형이 곽태서 편을 들었다.
"역시 이 부장은 보살이야. 하하. 이렇게 수용자들 입장도 잘 이해해 주고. 그런 덕분에 애들이 이 부장 말은 잘 들어서 수월하게 끝내긴 했네. 고마워 하하. 우리 철수할게 고생해"
"고생하셨습니다. 새로운 일거리 생겨 더 바쁘겠네요."
"할 수 없지 어떡하겠어. 그래도 이게 나중에 한몫 단단히 할거 같단 예감이 들어. 징역 안에 나쁜 놈들 가득 찼잖아. 내가 힘들어도 그런 놈들 하나라도 더 잡아내면 좋은 거지"
성균이 신이 난 듯 외치며 나갔다.
썰물이 빠져나가버리듯 순식간에 사람들이 사라지자 담당실은 고요해졌다. 주형은 또다시 멍하니 의자에 몸을 묻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곽태성은 DNA채취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철문이 꽝 닫히는 소리에 동료 수용자들이 그를 쳐다봤다.
"뭘 봐~ 시발 짜증 나게"
"어이~ 태성이 왜 그런가"
평상시 조용히 지내던 곽태성의 행동에 동료 수용자가 어이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퍽!'
곽태성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옆에 가지런히 놓아둔 모포를 발로 찼다.
"신경 쓰지 말고 당신들 일이나 하라고 열받으니까!"
"야~ 인마, 뭐라는 거야? 누가 널 건들었다고 지랄이야"
그 방의 가장 연장자로 봉사원(반장)을 맡고 있는 수용자가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열받아서 그러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이 새끼가 미쳤나!"
반장이 곽태성의 멱살을 잡았다.
"그래 미쳤다!"
곽태성도 그의 멱살을 움켜쥐며 소리 질렀다.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였다.
주변 수용자들이 둘을 뜯어말렸다. 반장은 싸우면 징벌받을 걸 알기에 못 이긴 척 멱살을 놓았다. 주먹은 올라가지 않았지만 둘은 욕을 주고받으며 언성만 높였다.
소란이 커지자 옆의 수용자가 비상벨을 눌렀고 주형이 달려왔다.
"무슨 일 있어요?"
비상벨 소리에 놀라 다급하게 뛰어온 주형이 방 사람들에게 물었다.
"부장님 별일 아닙니다. 저와 곽태성이 대화하면서 목소리가 조금 커졌습니다."
반장이 연장자답게 분위기를 수습하듯 주형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진짜 별일 아닌 거예요?"
주형이 다시 한번 물었다.
"네, 얘기 끝났으니 조용히 있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다른 수용자들도 일을 크게 만들기 싫은 눈치인지 아무 말없이 분위기만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곽태성은 혼자 씩씩 거리고 있었다.
"곽태성 너는 왜 그렇게 흥분해 있어?"
"악~~"
주형의 말에 곽태성이 소리 질렀다.
"야! 너 왜 그래?"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곽태성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아니라고 말하면서 계속 흥분해 있잖아. 이게 뭐가 아니야?"
"그냥 신경끄십쑈"
곽태성이 등을 돌리며 말을 잘랐다. 주형과 다른 수용자들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쳐다봤다. 평상시 곽태성의 행동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곽태성은 주형의 말이라면 무조건 '네~네~'로 끝낼 정도로 잘 따랐다. 방의 다른 수용자들과도 무난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 곽태성이 DNA채취를 끝내고 정반대의 행동을 하자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일단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있어."
반장과 곽태성의 말다툼이 수 그러 들자 주형이 마무리했다. 주형이 담당실로 돌아가자 방안의 수용자들도 자기 하던 일을 계속했다.
구석에 앉은 곽태성은 자신의 짐꾸러미에서 수첩을 꺼냈다. 거기에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듯한 그림과 메모들이 적혀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동그라미에 빨간색 엑스 표시가 두 개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곽태성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수첩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이 떨려왔다.
목안경찰서 강력팀 사무실은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DNA법이 시행되면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용자들의 DNA가 확인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경찰서에서는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한 곳도 있었다. 대부분의 전과자나 범죄자 들은 하나의 범죄만 저지르지 않았다. 검거되지 않는다면 비슷한 내용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에 잡히더라도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굳이 여타 범죄행위를 말하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징역형을 더 받고 싶은 사람은 없으므로 범죄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그런 범죄는 암수범죄가 되어 사라질 가능성이 많았다.
간혹 살인이나 성폭행등 중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고의로 교도소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주변인이나 지인들 위주로 탐문 수사하기 때문에 교도소까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용의자가 특정된 후에 소재 파악이 되지 않으면 교정기관에 수사협조 공문을 보내기도 하지만 특정되지 않으면 교도소에 확인한다는 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그게 교도소를 은신처로 활용하는 이유였다. 절도나 경미한 범죄를 일부로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온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 잠잠해지면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통용되는 것이다. 살인자나 성폭행범들이 자기 발로 교도소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팀장님! 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김종일 경장이 프린터에서 출력한 공문을 들고 팀장에게 외쳤다.
"뭔데 그렇게 난리야?"
"저... 저... 여기 공문 있습니다."
종일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문서의 한 부분을 지목했다.
"참나 시끄럽기는, 뭐가 있다는 거야?"
문서에는 DNA 확인자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자신들이 범죄현장에서 발견했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문서였다.
"그러니까 목안교도소에서 동일한 DNA가 확인 됐다는 말이잖아?"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드디어 범인을 잡았네."
"이제 고생 끝났습니다."
이환 경감과 김종일 경장은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서로 얼싸안았다.
"이 새끼. 이래서 우리가 못 잡고 있었구먼. 이놈 죄명은 뭐야?"
"특수절도랍니다."
"뭐? 특수 절도?"
"강간살인을 한 놈이 특수절도라..."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이 사건 발생하기 전에도 서울에서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현장에서도 동일한 DNA가 사체에서 나왔습니다."
"정말 죽일 놈이군. 그러니까 젊은 여성을 두 명이나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거네?"
"맞습니다. 잘못됐으면 연쇄살인이 발생할 뻔했습니다."
"꼬리가 길어 잡힐 것 같으니 절도로 징역 살고 있었구먼."
"정말 흉악한 놈입니다."
"목안교도소에 빨리 공문 보내고, 조사 일정 잡아"
"알겠습니다."
교도소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 수용자 아침 작업장 출역이 끝나고 기동순찰팀 팀원들은 사무실에 모였다. 팀장은 경찰에서 온 수사협조 공문을 팀원들에게 보여줬다.
"얼마 전 '그것도 알고 싶다'라는 TV프로에 우리 지역에 발생한 살인 사건 방송을 여러분들도 봤을 겁니다.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켜 한동안 시끌시끌했죠. 그 사건 용의자 DNA가 얼마 전 우리가 채취한 DNA와 동일하다고 판명 났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 수사협조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그 용의자는 현재 미지정 사동에 수용 중인 1800번 곽태성입니다. 본인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곽태성은 엄중관리대상으로 지정해 특별관리에 들어갈 겁니다."
"팀장님! 곽태성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씀이신가요?"
성균이 곽태성이라는 말에 놀라 팀장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피해자의 시신에서 나온 정액과 곽태성의 DNA가 같으니 확실하지 않겠어?"
"DNA가 동일하다면 맞겠죠. 그놈 평상시엔 조용하고 수용생활도 잘했는데, 정말 사람 모르겠네요."
성균이 어이없어했다.
"소문으로는 서울에서 비슷한 사건이 또 있다는 말이 있어. 그때도 증거는 있는데 범인을 못 잡았거든.
"그렇다면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범죄로 봐야겠네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그 수용자가 전에 자네 도와줬다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조폭이 저를 보복하려고 했던걸 이주형 부장에게 알려 제가 큰 위기를 넘겼죠. 그것도 그거지만 주형이 생각하니 큰일인데요"
성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뭐가 큰일이야. 자기 사동에서 평상시와 같이 관리하면 되는 거지"
"그게..."
성균이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게 답답했는지 팀장이 다그쳤다.
"왜 말을 하다 말아. 무슨 일 있어?"
"이걸 말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 답답하게 왜 그래. 빨리 말해봐"
팀장이 짜증을 내자 성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여고생인 건 알고 계시죠? 그 여고생이 이주형 부장의 조카입니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니라 얼마 전 그 충격으로 이 부장 형이 자살했습니다."
"뭐라고? 진짜?"
팀장이 놀라며 재차 물었다.
"이 부장이 병가 내고 출근 안 했던 것도 형이 그렇게 떠나 버리자 버거워서 그랬을 겁니다. 조카 사건도 있고 형까지 그렇게 되니 지금 제정신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자신이 관리하는 사동에 가해자가 있다니 그걸 알면 심정이 말이 아닐 겁니다."
"그래? 정말 이 사실을 알면 충격이 크겠는데, 무슨 조치를 취하긴 해야겠군. 수용자를 다른 사동으로 옮기던지 아니면 이 부장 배치를 바꾸던지 말이야"
"그래야겠죠"
"이 부장은 아직 모르겠지?"
"그렇겠죠. 저도 팀장님을 통해 방금 들었으니까요"
성균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고 사무실은 한숨 소리만큼이나 깊은 정막에 빠져 들었다.
적지 않은 시간 교도소에 일하면서 성균이 항상 걱정했던 일이 주형에게 일어나 버렸다. 자신이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 피해자가 되어 그 가해자를 교도소에서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고민했었다. 주형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이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질 거라는 것은 확실했다. 한 명의 사악한 범죄자 때문에 주형은 조카와 형을 잃었다. 더군다나 그 범죄자는 주형 자신이 애틋한 마음을 가지며 관심을 갖고 보살펴 주었던 수용자였기에 정신적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이 비참한 사실을 알게 될걸 생각하니 자신의 일처럼 가슴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성균은 만약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이라고 결론을 지어 놓고 있었다. 그건 비참하게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법에 따라 형벌을 집행하는 집행자이지만 그 상황에서는 법률이 아니라 자신의 형벌을 집행할 거라고 말이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해 처참하게 집행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주형은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넘어야 할 큰 산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