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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라빠 Jul 14. 2023

범인 3.

따뜻한 살인 30. (효라빠 장편 소설)

주형은 손을 뻗어 가방을 잡았다.

지퍼를 열고 안에 든 것을 빼내려는 순간 담당실 문이 열렸다.

"최태식이 서예도구와 칼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거야?"

성균이 노크도 없이 들어오며 소리 질렀다.

"어~ 면담 중이었네. 곽태성하고..."  

할 말 많을 거 같던 성균이 주형과 곽태성 둘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흐렸다. 성균의 등장에 놀란 주형이 가방을 내려놨다. 얼굴은 해 질 녘 사라져 가는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반면 곽태성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담당실의 세 사람은 굳은 석고상이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 없었다. 

"이건 담당 부장님이 허락한 거라니까요!"

절뚝거리며 뒤따라오던 최태식의 목소리가 침묵을 깨트렸다.

"이 부장. 1004번 최태식 수용자가 서예공부를 하기 위해 도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사실이야?"

성균의 손에는 교도소에서 보기 힘든 묵과 벼루등 서예용품이 들려 있었다. 순찰 돌면서 최태식이 방 안에서 보관 중인걸 압수한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로 최태식과 언쟁이 되었고 다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최태식은 자신의 말이 맞다며 성균을 뒤따르며 구시렁대고 있었다.

"사회복귀과에서 교정교화 차원에서 지급했습니다. 사무용 칼은 담당인 제가 보관하면서 근무자 앞에서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징역 참 좋다 좋아~"

사실을 확인한 성균은 어이없다는 듯 들고 있는 서예 도구를 최태식에게 건넸다.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관에서 지급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알았으니까 가지고 들어 가세요. 본인에게만 허락된 물품이니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 됩니다. 잘 관리하세요."

"네."

"방으로 들어가세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서인지 최태식이 더 이상의 행동은 취하지 않고 물품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목소리는 예전의 날카로움이 많이 사그라들었고 복통으로 고생해서 인지 얼굴이 헬슥해져 져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와는 다르게 눈빛은 더 매서워 보였다. 

"이 부장 면담하고 있는데 불편하게 한건 아닌지 모르겠네. 조용히 순찰만 돌고 가려했는데 최태식이 자꾸 태클 걸잖아. 그만 철수할 테니 면담 마무리해."

"아닙니다. 다 끝났습니다. 제가 할 말이 있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할 말? 알았어"

주형이 굳어진 표정으로 성균을 바라봤다.

"곽태성 일단 알았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러시죠."

"앞으로 너는 영상녹화기기가 설치된 독거실에 수용될 거야. 13 방으로 짐 옮겨"

"제가 왜 독방으로 가야 합니까? 그것도 cctv가 설치된 곳으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말했잖아. 너는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당연히 특별관리 해야 되지 않겠어?"

"제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곽태성은 여전히 자신은 모르는 일인 것처럼 말했다.

"곽태성! 징역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나중에 수사해 보면 알겠지만 혐의가 있는 건 사실이잖아. 잔말 말고 부장님이 시키는 데로 방 옮겨"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성균이 어이없다는 듯 외쳤다.

"알... 겠... 습니다"

화가 난듯한 성균의 목소리에 곽태성이 떱떠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하며 일어섰다.

짐을 챙긴 곽태성은 독거실로 들어갔다. 팔을 뻗으면 완전히 펼쳐지지 않을 만큼 좁은 방이었다. 위에는 동그란 cctv카메라가 달려있어 24시간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것까지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씨발 좆같아서... 조용히 끝날 줄 알았는데... 그때 술에 취해 뒤처리를 제대로 못한 게 이제야 터질 줄이야. 일부러 징역까지 들어왔는데. 젠장, 재수 없으면 이 좆같은 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다니. 씨발. 끝까지 오리발이다.'

담당실에서 주형과 면담할 때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순진해 보였던 얼굴이 양의 탈을 벗자 미친 늑대가 나타났다. 쳐져 있던 눈꼬리가 올라가고 앙당문 턱선이 차갑게 보였다. 숨겨져 있던 감정도 서서히 드러나자 목소리도 그전의 곽태성이 아니었다. 비굴하게 혼잣말하는 소리가 옆방까지 퍼졌다.

조용히 서예 붓을 잡고 있던 최태식이 벽에 붙어 곽태성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개새끼... 킥킥킥. 이 새끼는 나보다 더 한 새끼네. 나는 죄짓고 사실은 인정했는데 이 놈은 인정하지 않고만... 하긴 너나 나나 인간이었으면 여기 독방에 들어와 있겠냐.' 최태식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가 재밌는지 비아냥 거리는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 썅~ 또 시작이네. 부... 부장님... 의료과 좀 보내주세요. 배가 아픕니다.]

곽태성의 말을 들으며 실실 웃고 있던 최태식이 갑자기 배를 움켜 잡으며 인터폰으로 호출했다.

성균이 최태식의 목소리를 먼저 들었다.

"최태식 아냐?"

"맞습니다."

"배 아프다고 하는 거 같은데?"

"요즘 부쩍 복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의료과에 수시로 다닙니다."

곽태성과의 면담으로 흥분해 있는 주형이지만 자신은 일을 해야 하는 교도관이었다. 종이 울리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수용자가 누르는 인터폰이 울리면 긴장이 되며 심장이 뛰었다. 확인 후 아무것도 아닐 때가 많았지만 인터폰 벨 소리 몇 초의 순간은 담당 근무자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회색의 벽과 쇠창살로 꽉 막힌 사동의 근무자들은 감방이라는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최태식 씨 또 배 아파요?]

[네... 부... 부장님... 의료과에서 진통제 좀 먹어야겠습니다.]

[의료과에 전화해서 전처방으로 약 달아 달라고 할 테니 일단 참고 있어요. 외부 진료도 신청해 놀게요]

[감사합니다. 부장님...]

최태식의 목소리는 언제 앙칼졌냐는 듯 인터폰에서 힘없이 사라졌다. 

주형의 마음을 알고 있는 성균은 사각으로 둘러싸인 작은 성냥갑 같은 곳에서 마지못해 일하고 있는 그가 한없이 불쌍해 보이고, 일반 사람도 아닌 인간쓰레기 같은 최태식의 약 심부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슴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씨발새끼 근무자 피곤하게 하네. 저 새끼는 왜 아프다고 지랄인 거야?"

성균이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아프다는데 어떡하겠습니까. 해주는 수밖에요"

주형이 힘없이 답했다.

"가방은 뭐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주형의 무릎 위에 올려진 가방을 보며 성균이 물었다. 얼핏 보니 칼손잡이가 보였다. 당황한 주형의 모습에 의문이 갔다.

"곽태성 면담했나 봐?"

"......"

말없는 주형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사동 순찰이 남아서 철수할게 고생해."

"형님. 잠깐만요..."

물어봤자 답이 없을 것 같아 자리를 뜨려고 하자 주형이 성균을 불렀다.

"할 말이라도 있어?"

"곽태성이를 죽여 버릴 것 같아요"

갑자기 말을 꺼내는 주형의 목소리가 떨렸다.  

"휴~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일단 참자, 감정적으로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하잖아. 보안과장님께 말해서 곽태성이는 다른 방으로 전방 조치 해달라고 할게"

며칠 전 식당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형님이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형님 같으면 죽여버린다고. 저한테는 왜 그러지 못하게 하세요?"

"인마, 말로는 무슨 말을 못 하겠냐. 현실을 생각해야지. 너는 복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엄연한 살인이야. 살인이라고! 곽태성이 불쌍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네가 불쌍해서 그러는 거라고 이 멍청한 놈아. 순간적인 감정 조절 못해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많이 보잖아. 살인을 했더라도 사건 개요를 보면 가끔은 이해가 되는 사람도 있잖아. 그래도 똑같은 살인자고 죄갑을 받아. 네가 그렇게 될 수 있어. 냉정하게 생각하자. 너는 너 혼자만의 몸이 아니잖아. 만약 처자식이 없는 혼자 몸이라고 해도 그건 안 되는 거야"

성균이 책상 위에 올려진 주형의 가방을 낚아챘다. 안에서 칼을 꺼냈다.

"알았으니까. 주세요"

"됐어. 이건 내가 가지고 갈 테니 다시 생각해 봐. 우리가 직장 생활하면서 수많은 범죄자들을 보며 눈이 뒤집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잖아. 자기 부모를 살해하고, 어린애를 강간해서 살해하고, 심지어는 임산부를 강간하는 쓰레기들 까지 많이 보잖아. 하지만 그놈들을 백 퍼센트 감정적으로 대하지 못해, 아무 일 없다는 듯 면담해 주고, 웃으면서 인사하면 받아줘야 하고. 그러다가도 뉴스에서 잔혹한 범죄자들 나오면 저런 새끼들은 죽여야 한다고 흥분하면서 또 사동 들어와서는 얼굴 보며 대해야 하잖아. 그게 교도관의 숙명이야. 어쩔 수 없는 거야. 내가 네 심정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야. 내가 더 죽여버리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 우리는 교도관이라는 죄로 그 모든 걸 삭히고 가슴속에 담고 갈 수밖에 없는 거야"

"형님 말처럼 저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근무해 왔고 생활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주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성균은 더 작아진 주형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자신의 가슴도 터질 듯했지만 참아야 했다.

     

10번 방으로 짐을 옮긴 곽태성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작은 독방에서 서성거렸다. 긴장해서 물어뜯는 손톱에는 빨간 피가 흘렀다. 주형 앞에선 범인이 아닌 척 행동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고 좁은 감방 안에서 평생을 지낼 생각을 하니 머리가 백지상태가 된듯했다. 

'몰라... 나는 절대 그 사건을 모르는 거야. 성관계는 사귀었다고 둘러 대야지. 그것 말고 다른 증거가 나온 게 없으니까. 시발 좆같네. 죽이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사람 죽인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자신이 시멘트 벽으로 된 답답한 좁은 방 안에서 평생을 살 것에 대한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

방안에서의 초조함이 문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옆으로 지나가던 최태식이 곽태성을 쳐다봤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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