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ㄱㅅㄱ Oct 02. 2024

에스프레소 (기억 그리고 존재 2)

#2 [몽탁 마음 공작소] 효라빠 장편소설.

수경이 사진에 대해 만나서 얘기 하자며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았다. 미아는 신경 쓰여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밑에 다크서클이 검은 꽃을 피우고 다리는 무거운 족쇄가 채워진 듯 천근만근이었다. 심란한 마음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행히 종일과 여자 아르바이트생 소란이 열심히 해줘 버텼다. 카페에 들른다는 수경은 마감 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몇 번이고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손님들 상대하느라 걸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차라리 바쁜 게 낫네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종일은 집에 일이 있어 한 시간 일찍 퇴근하고 소란과 미아만 카페 정리를 했다. 소란은 직장 생활하다 사람에 치여 마음의 상처를 입고 커피하우스 '몽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 첫 직장이었지만 사회생활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퇴사 후 미아에게 커피와 커피숍 영업 노하우를 배워 자신도 아담한 카페 차리는 걸 희망하고 있었다. 이름에 걸맞게 조금 소란스럽긴 했지만 성격도 밝고 착한 아이였다. 소란이 왜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뒀는지 미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소란이 안타까워 미아는 친동생처럼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수경이 카페에 들르지 않자 풍경소리만 들려도 고개를 돌려 현관문을 쳐다본 걸 생각하니 미아는 마음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그때 등뒤에서 소란이 미아를 불렀다.

"사장 언니!"

"왜?"

미아는 테이블 정리하며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소란은 미아를 사장님이라 부르지 않고 사장 언니라고 불렀다. 그것 하나 만으로 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사장언니, 언니의 언니가 왔어요~"

소란이 웃으며 장난기 있게 말했다. 수경이 문을 열고 몽탁 안으로 들어왔다. 언니라는 말에 바로 미아가 돌아봤다. 어두운 표정의 수경이 문 앞에서 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리 늦었어? 빨리 오면 어디가 덧나? 어제 말해 달라는 것도 안 해주더니 진짜 짜증 나게 한다!"

미아가 수경을 보자마자 잔소리하듯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미안해, 애들 챙기느라 시간이 이렇게 돼버렸네."

"낮에도 시간 있었을 거면서... 진짜... 됐고. 여기 앉아. 소란아 언니 차 한잔만 가져다 줄래?"

"네. 수경 언니,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마시죠?"

소란이 수경에게도 살갑게 대하며 커피 내리러 갔다.

미아와 수경은 마주 보고 앉았다. 둘 다 피곤한 기색이 얼굴에 역 역했다. 미아가 다이어리에 있던 사진을 탁자에 올려놓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제 카톡으로 봤지? 이게 그 사진이야. 여기 아이와 남자는 누구야?"

미아가 답답했는지 소란이 커피를 가져다주기도 전에 물었다.

"정말 누군지 모르겠어? 기억 안 나?"

수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미아를 쳐다봤다.

"모르겠으니까 물어보지. 그냥 말하면 될 텐데 머가 그렇게 복잡해?"

수경의 표정에 미아도 긴장되는지 사진을 처음 볼 때 불길한 기운이 다시 덮쳐 오는 듯했다. 꺼버린 컴퓨터 때문에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몽탁은 암흑 속으로 빠져 드는 것 같았다. 커피를 들고 오는 소란도 그들의 심란한 분위기에 평상시처럼 장난칠 수 없었다. 아메리카노의 진한 향마저 퍼지지 못하고 커피잔 주위에서 맴돌다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 아이와 남자는... 흑흑흑"

수경이 말하려다 말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테이블에 머리를 숙이고 흐느끼자 몸부림치는 듯한 작은 어깨가 애절해 보였다. 가방을 챙기며 퇴근 준비하던 소란도 울음소리에 놀라 수경에게 뛰어왔다. 미아는 당황스러워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옆에 서있는 소란의 얼굴만 쳐다봤다.

"언니, 진정해.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미아가 들썩이는 수경의 어깨를 잡으며 일으켜 세웠다. 수경이 고개를 들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고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미아가 울고 있는 언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미아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머릿속에서 복잡한 회로가 미친 듯 돌아가나 싶더니 미아의 진한 갈색 눈동자가 수경의 눈 속으로 빠져 들었다. 미아의 눈동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깊고 짙었다. 보고 있으면 송두리째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드라마 영상이 돌아가듯 수경을 통해 미아의 동공에 비친 모습들이 그녀의 뇌 속에 저장되었다. 미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작은 주먹을 힘껏 움켜쥐어 손톱의 네일 아트가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아! 아! 안돼!!! 안돼!!! 엉엉엉'

이번엔 미아가 비명을 지르고 울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옆에 서있던 소란이 놀라 미아를 끌어안았다. 그럼에도 한동안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손님이 없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들이 보면 큰일 난 것으로 오해하고도 남을 모습이었다. 어쩌면 오해가 아닐지도 몰랐다. 조금씩 정신을 차려가던 미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 알겠어... 사진 속 아이와 남자가 누구인 줄 알겠어... 엉 엉 엉'

수경에게 말을 하면서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남자는 미아의 남편이었고 남자아이는 그들의 아이였다. 미아의 기억에서 왜 사라져 버렸는지 모르지만 수경의 눈동자에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봤다. 자신이 락희를 낳아서 행복해하던 모습과 결혼 생활을 하며 마음 포근하게 생활했던 모습이 모두 보였다. 남편,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지나가자 병원 응급실에서 미친 듯이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도 나왔다. 사고가 나던 날 밤이었다. 집에서 아이가 칭얼대자 혼자 감당이 안돼 몽탁으로 오던 남편은 마주 오던 음주운전 차량에 부딪쳤고 카시트에 앉아있는 아이와 함께 크게 다쳤다. 급하게 병원으로 후송 됐지만 둘은 깨어나지 못했다. 미아는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잃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죽는 것보다 힘들게 사는 미아는 어떻게든 살아 보라는 수경의 설득 때문에 집의 남아있던 남편과 아이의 모든 흔적을 지웠다. 본인의 의지보다는 수경이 모든 걸 정리했다는 게 맞았다. 옷가지부터 사진 한 장까지... 수경은 기억될 만한 몇 가지라도 남겨 놓으려는 미아와 싸우면서 까지 모든 걸 없애 버렸다. 냉정해 보였지만 자포자기로 스스로 생을 마감해 버릴 것 같은 동생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인지 수경이 봤을 때 아무 고통 없이 살아가는 미아가 아픈 기억을 잊고 다시 일어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미아 자신도 모르게 슬픈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머릿속뿐만 아니라 가슴속에서 까지 사라져 있었다.

그 슬픔 기억이 수경의 눈과 미아의 짙고 깊은 갈색 눈동자를 통해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미아는 다시 고통의 중심부에 빠져 들어 버렸다.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온전히 자신의 슬픔이었다면 이제는 언니의 슬픔과 그 슬픔을 통해서였다.

"언니, 많이 힘들었지? 이제 뭔지 알겠어."

간신히 정신을 차린 미아가 수경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입에서 가냘프게 나오는 말이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 느끼게 해 줬다.

"이제 기억나?"

수경이 눈의 초점이 풀린 채 멍하게 허공을 주시하고 있는 미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슬픈 눈으로 말했다.

"언니 눈에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였어."

"기억하지 않아도 될 일을 다시 떠올려 버렸네. 네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어서 불안하면서도 안심이 됐었는데"

"아니야. 나만큼 힘들어하는 언니를 봤어. 이제는 힘들어하지 마. 내가 그 고통 가져갈게"

"무슨 소리야. 네가 무슨 정신으로... 너의 아픔을 안고 가는 것으로도 힘들 텐데.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때의 미아는 사랑하는 그이와 락희와 함께 사라져 버렸어. 존재가 없으면 그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도 존재의 가치가 없나 봐. 마음도 그때 그렇게 됐나 봐. 언니 이제 너무 아파하지 마"

미아와 수경은 울먹이며 서로 끌어안았다. 둘은 한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수경의 검은 눈동자가 미아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번에는 수경의 가슴아린 기억이 백사장 모래성이 하얀 파도에 쓸려가듯 조금씩 사라져 갔다. 미아의 가슴속엔 언니 수경의 아픔이 차곡차곡 샇였다. 정신을 차린 둘은 의자에 앉았다. 수경이 테이블 위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미아야. 여기 사진의 남자와 아이는 누구야? 나도 있는데 언제 찍은 사진이야?"

"뭐? 무슨 말이야? 기억 안 나?"

"전혀 모르겠는데..."

수경은 미아가 보여준 사진을 유심히 들어다 보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로웠다. 왜 울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요즘 얼굴이 푸석 푸석하다는 말을 하며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란은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직접 봤지만 믿기지 않았다. 꿈인가 싶어 뺨을 때리며 미아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 나 지금 꿈꾸는 거죠? 이건 현실이 아니죠?"

"아니... 나도 뭐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꿈은 아닌 것 같아."

힘없는 목소리로 미아가 말했다.

"꿈이냐, 현실이냐. 무슨 말이야? 그런데 아메리카노 맛있다."

수경이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동생을 지켜보며 겪였던 모든 슬픔이 사라져 버렸다.

미아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사진을 조심스럽게 다이어리에 집어넣었다. 사진은 뒤집혀 있었고 '똑딱' 하고 닫히는 다이어리 클립 소리가 미아의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소란아. 수경언니 커피 다 마신 거 같으니 이제 문 닫고 퇴근하자"

"네. 사장언니"

셋은 그렇게 몽탁의 문을 닫고 거리로 나왔다. 수경은 아이들 재워야 한다며 가게 앞에 세워둔 차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소란은 잘 들어가라며 미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둘의 눈은 마주쳤다.

순간 미아에게 소란의 눈동자가 들여다 보였다.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눈동자 속 소란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자신과 같이 미친 듯이 울면서 가슴 아파했다. 더 보려고 했지만 고개를 돌려버린 소란 때문에 흐릿한 영상은 거기서 멈췄다. 미아는 집으로 가는 내내 수경을 통해서 한 이상한 경험과 소란의 눈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