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핑으로 보낸 일주일, 브리비오의 삶과 나의 변화
피렌체에서 밀라노까지는 기차로 세 시간이 걸렸다.
밀라노에서 다시 작은 전철을 타고 사십 분쯤 가면
브리비오 (Brivio)라는 조용한 소도시가 나온다.
역에 내리자 호스트인 줄리아가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다.
"Ciao, Sofia!" (안녕, 소피아!)
검은색 큰 가방을 들고 인사를 건네니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브리비오에 들어서는 순간
‘이렇게 작은 도시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루자보다도 훨씬 작은 동네였다.
줄리아의 낡고 귀여운 민트색 자동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저녁으로 먹을 피자를 사기로 했다.
나는 감자튀김이 올라간 피자를 골랐다.
줄리아와 호스트들은 비건이라
양파, 참치, 네 가지 치즈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를 따뜻하게 안고 숙소로 가는 길이 묘하게 안심이 됐다.
숙소는 작은 빌라이었고
2층은 게스트룸,
1층에는 줄리아의 부모님이 살고 계셨다.
다비데와 그라치아라는 젊은 커플이 나를 맞았다.
새로운 공간은 늘 낯설지만,
창문을 열자 들어오는 바람이 바로 답을 알려주듯 시원했다.
줄리아는 서랍에서 모기 퇴치제를 꺼내며 말했다.
“La notte lasciala accesa quando dormi.
Qui ci sono tante zanzare."
(밤에는 꼭 켜고 자. 여긴 모기가 많아.)
잠깐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발코니에 상을 차려 첫 저녁을 먹었다.
바람이 선선했고,
나는 긴장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괜찮다며 계속 안심시켜 주었다.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들었다.
말 농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름 캠프.
이탈리아 아이들과 일주일을 지낸다는 사실이
살짝 두렵고, 동시에 설레기도 했다.
그날 밤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잤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조용히 씻었다.
줄리아가 사다 둔 비스킷과 정원에서 딴 열매를 몇 개 먹고
7시쯤 숙소를 나섰다.
말 농장은 도보 3분 거리였다.
줄리아와 줄리아의 어머니가 먼저 나와 있었다.
나는 밝게 “Buongiorno!” 하고 인사했다.
7시 반부터 아이들이 도착했다.
나이는 여섯 살부터 열두 살까지.
처음에는 서로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한 명씩 이름을 묻고,
“나는 소피아야. 한국에서 왔어.”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오전 활동은 매일 비슷했다.
아이들은 각자 이름이 적힌 원판을 돌려
네 가지 역할 중 하나를 맡았다.
주방을 돕는 '점원'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줄리아 어머니와 함께 테이블을 차렸다.
이 역할은 인기였다.
서로 하고 싶어 눈치를 보던 모습이 괜히 흐뭇했다.
다른 아이들은
과일나무 아래에서 열매나 작은 곤충을 채집했다.
자두처럼 생긴 열매들이 많았다.
아이들은 작은 손에 열매를 잔뜩 쥐고 와서
눈을 반짝이며 내게 내밀었다.
나는 잘했다며 살짝 웃어주었다.
플로리스트 역할은
꽃이나 예쁜 나뭇잎을 모아 오는 일이다.
점심 전에는 아이들은 꽃병에 꽂힌 꽃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왜 이 꽃을 가져왔는지”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솔직한 말들이 귀엽게 느껴졌다.
스페셜 리스트라는 역할도 있었다.
그림 주제는 매일 달랐다.
어떤 날은 ‘따뜻한 것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것’이라는 주제로 모두가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들은 줄리아 어머니의 결혼기념일 선물이 되었다.
12시 반쯤 점심을 먹었다.
점원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식사가 준비되면 종을 쳤다.
‘댕, 댕, 댕.’
아이들은 흩어져 있던 곳에서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칠판 옆에 서서
나는 한국어로 ‘잘 먹겠습니다’를 적었다.
줄리아가 부탁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엔 서툴렀지만
며칠 지나자 놀랍게도 자연스럽게 따라 했다.
식탁에는
각자의 자수가 들어간 손수건과
자수의 그림이 그려진 작은 컵이 놓여 있었다.
자리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나중에는 나를 좋아하는 아이가
자기 옆에서 앉으라고 손짓해 주었다.
식사 전에는 간단한 기도를 외쳤다.
“Sole, piume, karate, insieme.”
(해, 강, 따뜻한 마음, 모두 다.)
그리고
“Buon appetito.”
대신 내가 적어준 “잘 먹겠습니다.”
짧고 어색한데
왜인지 이곳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의식이었다.
대부분 야외에서 놀았다.
강가에 가서 수영하고
그늘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물을 기억해 찾아오는 게임도 했다.
어떤 날은
모두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흙길을 걸었다.
아이들은 너무 뜨겁다며 번갈아 안아달라고 했다.
자주 안아주면 계속 안기려 한다고 줄리아가 말려서
나는 웃으며 아이들과 발을 재촉했다.
말이 빠르고 억양이 강해서
아이들 말을 전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하루 종일 함께 있다 보니
조심스레 가까워지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모습이 고마웠다.
확실히 피렌체에서만 지낼 때와는 달랐다.
몸을 많이 움직여서
밤에는 깊게 잠들었고
늦게까지 깨어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오후가 되면 마을은 금방 고요해졌다.
6시가 지나면 자유시간이었다.
브리비오 동네를 조금 걸어보고 싶다고 하자
다비데와 그라치아가 자전거를 꺼내왔다.
“우리가 자주 가는 젤라또 집이 있는데, 너도 좋아할 거야.”
저녁을 먹고 자전거에 올랐다.
얼마 만에 타는 건지
조금 무섭고, 조금 신났고,
어색한 감정이 함께 밀려왔다.
자전거 도로가 있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일반 도로였다.
차가 스칠 때마다 달리는 느낌이 더 선명해졌고
적당한 스릴이 오히려 좋았다.
젤라또를 먹으며 강가를 걸었다.
브리비오는 낮과 밤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동네였다.
해가 지면 금세 조용해지고
그 조용함이 오래 남았다.
아이들과 지내며
내 안에 오래 숨겨뒀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을 완벽히 하지 못해도
그림을 도와주고, 물컵을 건네고,
손을 잡아주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생각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마음도 조금 느슨해졌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하루는 무리 없이 흘러갔다.
작은 의견 차이는 금방 지나갔다.
어색했던 식탁도 며칠 지나니 편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이었다.
비건 식단, 늦은 저녁, 강한 햇빛, 흙길.
이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금세 내 리듬으로 스며들었다.
도시에서 잊고 지낸 감각도 돌아왔다.
풀 냄새.
나무 그림자.
땅의 온도.
강바람.
브리비오의 느린 속도가
나에게 딱 맞았다.
브리비오를 떠나는 날,
숨이 조금 더 길어지는 걸 느꼈다.
아이들의 웃음.
발바닥에 닿던 흙길.
강물 소리.
이 모든 것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의 시간은
내 안의 공기를 조용히 바꿔놓았다.
도시에서는
늘 뭔가를 맞추며 살았다.
조금만 늦어도 불안했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내가 잘해도, 못해도
태양이 지고 다시 떠오르는 리듬만 있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놓쳤던 것들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내가 문법을 틀려도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주었다.
호스트들은
내가 어색해하는 걸 바로 알아채고
먼저 웃어주었다.
관계가 생각보다 단순하고
부드럽게 이어진다는 걸 배웠다.
피렌체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나답게 산다’는 게 어떤 모습인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브리비오의 여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을 비워내는 연습이 되었다.
앞으로 복잡해질 때마다
이곳을 떠올릴 것 같다.
해가 천천히 지던 저녁 하늘.
“소피아, 고마워.”
하며 안아주던 작은 팔들.
조용하던 밤공기까지.
그 몇 장면이
내 워홀을 오래 지탱해 주는
작은 중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