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를 거점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들
피렌체에 머물던 시절,
나는 평일에도 종종 도시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때의 생활은 여유가 많았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피렌체의 도시 규모가 아담해서인지,
하루의 절반을 비워도 여행이 가능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평일'과 '여행'이라는
두 단어가 서로 다른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생활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여행 준비라고 한다면,
전날 밤, 지도를 열어 소도시 하나를 고르고
그 지역 로컬 식당과 젤라또 가게 리뷰를 읽는 정도였다.
나는 지역 음식을 맛보는 걸 좋아해서
어디를 가든 꼭 한두 곳은 미리 찜해두곤 했다.
토스카나의 소도시들은 휴무일이 제각각이라
월요일이나 수요일엔 문을 닫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식당이 열려있는지 확인하는 게
그날 여행지를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피렌체와 주변 도시를 잇는 시외버스는 자주 다녔다.
집 가까운 정류장에서 탈 수 있었고,
토스카나 지역만 운행하는 버스의 어플을 깔아 두면
티켓 예매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보통 편도 한 시간 반 이내의 도시만 선택해서
이동 피로도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소도시는 막차가 일찍 끊겼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일정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아침 일찍 출발해
도시가 천천히 깨어나는 모습과 함께 움직이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여행을 계획했다기보다,
도시가 나를 불러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 위험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다녔던 곳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관광객이 적은 시간대라 골목과 광장을
조용히, 느긋하게 지낼 수 있었다.
식당에 혼자 왔다고
눈치를 주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어쩌면 한국보다 혼밥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행을 자주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일치기'라는 특성 덕분에 지출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시외버스 왕복은 기본으로 8유로 안팎이었고,
로컬 식당에서 점심과 디저트, 젤라또를 두 스쿱씩 먹어도 30유로 이내로 해결됐다.
도시 곳곳에 와인 시음할 수 있는 가게가 있어
가볍게 맛보고 싶을 때 언제든 들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자주 갔던 곳은
'그레베 인 끼안띠' (Greve in Chianti)였다.
피렌체를 벗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 풍경이 부드러운 포도밭으로 바뀌었고,
도시에 도착하면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피렌체보다 조용하고 한산했으며,
광장도 아담해 마음이 금방 좋아졌다.
점심은 광장 근처에 있는 뜨라또리아에서 먹었다.
이 도시가 '멧돼지 고기'가 유명하다고 들어서
나는 '멧돼지 라구 파스타'를 주문했다.
이 음식과 잘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해 줄 수 있나요?'
하고 묻자 직원이 웃으며
'너 이탈리아어 할 줄 알아? 어떻게 그렇게 잘해~'
라고 말해주며 와인을 더 따라주었다.
그런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마시는 로제 와인은
그레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와인샵에 들렀다.
시음 카드를 기게에 넣으면 원하는 와인을 선택할 수 있고
ml수도 선택이 가능하다.
좋은 점은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그만하고 싶을 때 그만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마시고 싶은 와인 (대부분 끼안띠였다) 리스트를 정리해 직원에게 보여주니
"너 와인에 진심이구나." 하며 함께 찾아주셨다.
직원이 다시 내게 오더니,
"와인만 마시면 속 아파요." 하며 과자를 덧붙여 주던
작은 친절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피에솔레와 아레초도 역시 마음에 남는 도시들이다.
피에솔레는 피렌체 동쪽의 작은 마을로
광장에서 주거지까지 천천히 걸으면
브라운 지붕들이 겹겹이 이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관광지라 식당 가격은 조금 높았지만
골목마다 예쁜 그림이 숨어 있어
걷는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아레초는 ‘인생은 아름다워’ 촬영지로 유명한 도시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지역 축제를 준비 중이라
도시 전체가 들떠 있는 분위기였다.
고전적인 건물 색감이 독특해서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많이 찍게 되는 도시였다.
여행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작은 루틴도 생겼다.
도시에 도착하면 그 지역 음식을 맛보고,
마무리로는 그 도시에서만 먹을 수 있는 젤라또로 채웠다.
작은 로컬 샵을 구경하거나
길을 걷다 귀여운 표지판을 보면 사진을 찍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남겨둔 사진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온도와 공기까지 함께 떠오르게 해 주었다.
피렌체에서 보낸 그 시절,
여행은 단순히 ‘어디를 다녀왔다’는 기록이 아니라
내 하루를 부드럽게 움직이게 해주는 힘 같은 것이었다.
뚜렷한 목적이 없어도
도시가 손 닿는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
다음 편에서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던 날
피렌체에서 보낸 나의 일상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