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워홀 에세이 2-3

일상과 루틴이 생겨나가는 과정

by 킴소피


아침마다 30분 일찍 일어났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오늘 배울 문법을 훑거나

헷갈리는 단어와 문법 사용법을 다시 외웠다.

그리고 시간 맞춰 학교 앞 바(Bar)에 들러 에스프레소나 카페 마끼아또를 한 잔,

크루아상 피스타키오 (Cornetto con Pistacchio) 맛을 주문했다.

버터 향이 진하게 퍼지는 코르네또를 한 입 베어 물면,

안에 있던 피스타키오 크림이 뿜어져 나왔다.

커피까지 마시면 차가웠던 아침 공기가 수증기 형태로 변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조금씩 따뜻해졌다.


학교 앞 바(Bar)에서 산 코르네또와 에스프레소
이건 코르네또 알라 크레마라고 크로아상 안에 노란색 크림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시내로 나가 점심을 먹었다.

딱히 특별한 날이 아니면

중식이나 일식을 자주 찾았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흘러 있었고,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거나 저녁을 만드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공부를 했다.


학교 근처에 있는 일식집을 자주 갔다.
친구들과 피자 1인 1판


가장 좋았던 점은,

기숙사를 나오고 나서야 '집'이 생겼다는 것이다.

마음껏 요리할 수 있는 공용 주방이 있고, 나만의 방이 있는 곳.

내가 가진 색으로 방을 물들이다 보니 온전히 내 것이 된 기분이었다.


주황색 커튼이 달린 내 방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내 냉장고


학교로 가는 길엔 항상 지나쳐야 하는 꽃집이 있었다.

사장님은 늘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나를 바라봤고,

나는 그 시선이 낯설어 두려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어쩔 수 없이 내 하루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학교 가는 길, 내가 좋아하는 길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들르는 단골 카페도 생겼다.

아침 8시 반쯤, 카페에 들어서면 따뜻한 온기가 돈다.

나는 주로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과 사과파이 그리고 소위 안경 빵이라고

불리는 빵을 포장해 학교를 가곤 했다.

나는 사장님이 커피를 내릴 때가 제일 좋다.

진하고 부드러운 향이 내 하루를 깨웠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요일에 오니

사장님은 나를 기억해 주셨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서로에게 하루를 건넸다.

아침의 커피 향과 작은 대화가, 나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줬다.


오른쪽이 안경 빵이다. 건포도랑 크림과 설탕 시럽이 올라가 달달하다.


일요일이면 집 앞 교회에서 정확히 11시에 종소리가 울렸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같은 시간에.

그 종소리를 들으면 '오늘이 일요일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그건 이곳에서 나만이 가진 달력 같은 소리였다.




첫 수업 이후 한 달 동안은 정말 고통 같았다.

교실 안에서 모두가 웃을 때, 나만 멍하니 앉아 있었던 날들이 많았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저 웃는 척만 했다.

그래도 옆자리 친구와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하던 그 시간들이 지금은 그립다.

서툴고 더딘 말 사이에도 웃음이 있었고,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았기에 괜찮았다.

틀리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웃으며 서로 손짓하며 배우는 게 이 수업의 일상이었다.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금요일 듣기 수업이었다.

젊고 유쾌한 레이첼 선생님이 가끔 음악을 들려주며 수업을 진행했는데

나는 그중 단어 맞추고 읽기에 자신이 있었다.

가끔 선생님은 "Sofia, brava!" (소피아, 잘한다!) 하셨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언어의 리듬.

그 시간만큼은 '이탈리아어가 재미있다.'라고 느꼈다.


헤드폰을 끼고 수업을 듣는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곳이 학교와 집이다 보니

마주치는 얼굴들이 자연스레 내 일상이 되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일본인 룸메이트와는 특히 가까워졌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 이야기를 하며 밥을 같이 먹곤 했다.


일본인 친구와 배구 경기도 보러 가고 한 달에 한 번 피자 외식을 했다.


우리 학교는 한 달에 두 번, 레벨 테스트가 있을 때마다 반이 바뀌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매번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다.

"Ciao, Sofia! Come stai oggi?" (안녕, 소피아! 오늘 어때?) 하고 인사해 주는

친구들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 불러준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스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친구들이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었는데

"한국인은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며 신기해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은 어깨가 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기쁨이었다.



사실, 모든 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느리지만 어딘가 괜찮은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나의 속도를 맞춘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과정도 그랬다.

당연히 실수하고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 세 시간은 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고,

"왜 이렇게 안 되지?"라는 생각에 울컥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마음이 달라졌다.

나를 깎아가며 잘하려 하기보다,

'배우는 중이니까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하고

나를 인정하고 나니 이곳의 속도와 리듬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마음은 통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완벽주의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익히는 게 아니었다.

그 언어가 가진 분위기, 말투, 표정, 웃음을 배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깨달았다.

진심으로 말하면,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을.


공부 흔적


이제는 아침마다 카푸치노 향이 나를 반기고,

친구들의 인사가 낯설지 않다.

완벽하지 않아도, 이탈리아어로 하루를 살아가는 지금이 좋다.

언어가 내 일상에 스며드는 건, 결국 사람과의 온기를 통해서였으니까.




다음 편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내가 가장 충격받았던 그 레벨 테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도 커닝이 존재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