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아이
학교생활은 그런대로 이어나갔다.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잘 섞였다. 많은 아이들이 나를 이끌었다. 여기서 놀았다, 저기서 놀았다 만남의 약속이라는 것도 처음 해 보고 해서 아이들과 어울렸다. 그러나 어린 나는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좀 외로웠다.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왜 외로웠는지 이 때 난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나를 알고 싶어 하는 친구가 없었다. 그냥 내 겉을 좋아해서 모여 놀아서 말수가 적고 약간은 사람을 경계 하는 걸 몰랐다. 외향적이고 밝은 아이로 알았을 거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은 편치 않았다.
‘왜 어울리는 게 불편할까.’
이 점이 의구심이 들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자고 나를 포함해서 4명이서 팀을 나눠 했다. 나는 이 시기에 운동신경이 최고였다. 구기운동이나 그냥 놀이도 다 잘했다. 그래서 서로 나를 또 자신의 팀에 같이 하길 바랐다. 질 때도 있는 데 내랑 함께 면 좋다고 말이다. 이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 와 함께 시기 질투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시기 질투하는 아이들을 신경 쓰다 보니 내가 나를 괴롭혀서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특별히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다. 그냥 놀았다. 학교에서만 공부하고. 남들은 1학년,2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라는 걸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난 선행학습을 한 덕인지 학교수업이 쉬웠다. 단지 구구단을 외울 때 조금 어렵긴했다. 이 때 알았다. 내가 숫자와 멀다는 거. 사실 다 잘했다. 하지만 그나마 공부답게 한 게 산수였다. 그래도 산수도 쉽다 느꼈다. 척척.
학교 입학하기 전에 주산학원에서 주산을 배워서다. 맨처음 주산학원에서 숫자를 처음 접하고 연산 (덧셈, 뺄셈)으로 주판으로 착착하며 배울 때 버벅대고 어려워했다. 어느정도 익숙해 졌다 싶었을 때 암산을 시켰다. 주판을 쓰지 않고 머리 속에서 주판을 데구르르 굴려서 해 보라는 거였다. 이도 잘 못했다. 그러나 난 좀 머리 좀 쉬게 해서 시간이 지나야 잘하나보다. 학교 입학하고 난 후 덧셈/뺄셈을 손가락으로 쓰지 않고도 술술이였다. 곱셈/나눗셈이 덧셈/뺄셈보다 어려웠다.
이렇게 학교 수업은 너무 잘 따라갔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뭐가 부족해서 허전한 걸까?
그래서 어린 나이에 나는 내 자신을 탐구해 보았다. 왜.... 아이들 속에 있고 어른들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특별하게 대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모범생이였지만 난 이 걸 신경쓰지 않기로 했으니 무덤덤했다.
그랬더니 나를 제대로 알려 하는 이는 없다는 걸 알았다. 내 예쁜 겉모습과 내 처세에 다들 좋아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뭐, 초등학교 1-2학년 때 처세술을 몰랐지만 내가 사람 대함이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 줘서다. 배려심 있고 예의 바르고 해서 어른도 날 좋아했다. 가정교육이 잘 되어 부모님 칭찬도 곧잘 들었다. 그게 또 아이들의 시기 질투가 생기게 했지만 난 이랬다. 어찌 보면 예쁨 받을 준비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 칭찬에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다.
그 허전함을 달랜건 만화책이였다. 그러나 80-90년대 만화책은 사회악이라고 집에서 공부에 방해 된다고 사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난 동화책에서 자연스럽게 만화책으로 옮겨가서 만화책을 어떻게서든 구해서 보았다. 보물섬이라는 만화잡지가 피아노 학원에 있어서 그 책을 탐독하고 아이들이 갖고 온 만화책들을 빌려보기도 하면서 허전한 마음을 해소 시켰다. 정말 재미가 있었다. 만화책만 봤다. 그 속에서 대화형 말풍선에서 말하기를 배웠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리고 나는 이 걸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실 난 6살 때 <아톰>,<철인28호>등등을 보며 애니메이터의 꿈을 키웠다. 그럴려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생각이 들었지만 애니메이션처럼 이야기를 지어내느냐고 상상속에서 살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나서 엔딩장면 이후의 주인공의 삶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그덕에 아이들이 불러주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니, 또 내가 부르면 거절을 잘 당해서이기도 했다. 왜? 내가 부르면 아이들이 나오지 않지? 언제나 난 끌려다녀야 하는 건가?
불만이 쌓였지만 도 닦듯이 삭혔다.
그저 나만의 상상의 세계에 빠져서 이야기를 지으며 놀았다. 어린 아이였던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들과 잘 어울렸지만 외로웠던 저학년 학교생활을 계속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