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난 많은 꿈에 대해
나는 그리 많은 꿈을 꾸지는 않았다. 그냥 자면서 꾸는 꿈이 아니다. 앞으로의 인생경로의 내가 되고 싶은 직업에 대한 꿈이다.
어릴 때부터 직업 탐구가 부족해서 어떤 직업이 있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자랐다. 그나마 하고 싶은 그 꿈은 부모님이 꺾어버렸다. 뭐든지 반대다. 지원해 줄 수 없다 이 소리만 돌아왔다. 어릴 때 난 가정경제가 참 가난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어릴 때 첫 번째 꿈은 만화가였다.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 생각을 해서 참 열심히 그렸다. 6살 때 만화영화를 보면서 꿈을 키웠으나 중학교를 입학한 후에 주변의 만류와 기를 꺾어서 중2때 포기했다. 절붓했다. 그 후, 만화책을 보기는 했으나 그리지는 않았다. 정말 상처가 컸다. 어떻게 어린 아이에게 꿈을 응원하지 못할 망정 짓밟는지! 어른들의 비정함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달면 먹고 쓰면 뱉는 걸 알았다. 잠깐 초교5학년 때 그림을 그린다, 스케치가 정교하다는 말을 들으며 90년대에 방과 후가 없을 땐 나머지 남는 시간에 미술대회 준비도 했지만 이 때 미술학습이 혼자 하는 거라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데나 스케치해 오라고만 했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구도를, 채도를, 명암 넣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그냥 몇 달을 허송세월 보냈다. 여자담임선생님이 였는데 왜 그랬는지 오리무중이다. 내가 저절로 그림을 그린 건 줄 아나. 아님 미술학원을 다닌 줄 아는 건가. 난 미술학원이나 미대를 근처에 가 본 적이 없다. 혼자서 발악하다 절붓 후, 20년 넘게 쳐다보지 않다 취미생활로 다시 부활시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날로그로 그리다 디지털을 만져보니 이게 좋아서 이걸로 그리지만 프로그램 다루는 게 익숙치 않아 어설프다. 시작이니 그럴 수 있겠지.(그림2점 보이자.)
두번째 꿈은 협상가였다. 이건 외교관이나 변호사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거였다. 내가 영악하다고 한다. 손해 보는 일은 되도록 피하려한다. 이도 부모님이 거부 하셨다. 내가 곧잘 공부도 했는데 또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셨다. 남들은 빚을 내서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참……. 무정했다. 언어도 재능이 있는지 A,B,C 알파벳을 중1 때 처음 배우고 나서 일취월장이 되었다. 그래도 내 능력을 부모님은 많이 의심을 했다. 중학교 성적도 옛말로 ALL 수였다. 이정도면 외고도 갈 텐데 외국어 경진대회를 나가지 않아서 외고에 갈 수 없다고 또 교사가 퇴짜를 놨다. 난 잘해도 과소평가가 되어서 어른들이 꿈을 한 껏 꺾어버렸다. 난 그래서 어른들을 싫어하는 데 어떤 어른은 말을 예쁘게도 공경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며 좋아했다. 그러면 뭐하나….. 어린 아이의 꿈을 짓밟는데.
세번째부터는 얼렁뚱땅한 꿈이다. 미래에 가상세계가 나설 것을 과학잡지들에 봐서 프로그래머가 되어야 직업을 삼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근데…… 내가 고교땐 수학이 정말 꽈당했다. 중학수학까지는 했는데 고교에서 그냥 넘어져버리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죽어야 할까 싶었다. 세상이 무너졌다. 망연사실을 넘어 세상 인간쓰레기로 느껴졌다. 내가 17살 평생 받아 본 적이 없는 ‘30점’ 점수를 받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생각을 고쳐 버텨보기로 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도 학교는 그 지역의 명문고를 졸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사회나와 보니 옛 내 생각이 맞아서 고교 3년을 버틴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대학가서도 프로그래머의 꿈은 여전했지만 과는 문과적인 학과였다. 능력은 수학이 안되는데 꿈만 프로그래머니 얼마나 동떨어졌는가! 그래도 프로그램 언어를 알아야 어떻게 될지 누가 아냐며 C언어를 독학했다. 정말 교사,강사들을 싫어해서 혼자서 또 발악한 거다. 공부하면서 노트에 프로그램언어를 적으면서 뭘 더 알아야 하는가 보니 대수학이라는 걸 알아야 하겠더라. 내 스스로 포기.
그래서 이냥저냥 꿈없이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열심히 살았다. 생각치 못한 은행에 일하게 되면서 능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가 은행에 소질이 있는지 이 때 알았다. 은행의 바닥계급에서 하나씩 계급을 오르면 되었고 기대도 한 껏 받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탈이 났다. 병이 난거다. 그래서 10년 넘게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병으로 인해 3년은 투병만 했다. 나머지 기간은 투병과 함께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을 아무데서나 일을 했다. 분류는 사무직으로 해서 여기저기 떠돌았는데 정작 사무직일보다 영업 비슷한 일이 계속 주어졌다. 아마도 내가 첫 직장이 은행서비스직이라서 영향을 받은 듯했다. 중간은 없어서 열심히 일하다 보니 번아웃증후군도 오고…. 2년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직업군도 알게 되었다. 직장생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재택근무를 하는 프리랜서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련 일도 해 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아 이제 이 쪽으로 발을 들여놓을까 한다.
지금 하는 이 글쓰기도 그 일환이지만 잘 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읽어주는 이가 많지 않다.
어떻게 프리랜서로 살아갈까 고민도 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병도 많이 나아져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져서 관리를 잘 해 주면 된다.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 현재 내가 어떻게 준비하고 행동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더 나은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