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남학생들과 공부를 더 하고 나는 어둑어둑 해진 7시에 교양과목책이 든 가방을 멘 채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숙사로 향했다.
“공부를 한 건지…. 눈에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네.”
기숙사 문 방을 열어 보니 재학생 3학년 언니 자리는 창 가에 위치하고 나와 같이 방을 쓰는 여학생과는 양 옆에 책상을 붙였다. -방구조가 좀 이상했다.- 난 이게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독립된 공간이 있어야 하는 데.
지친 몸으로 다시 1층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웠다 잠시 멍 때렸다.
‘이대로 내가 대학에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나 지치니…… 체력 없긴 하지만.’
잠시 눈을 감고 쉰 후, 책상에 아무렇지 않게 던져 올려 놓은 책가방과 옷을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 대학생활 둘째날, 집 아닌 곳에서 자는 건 또 처음이다. 간밤에 잠깐 설쳤지만 잠은 잘 잤다. 이제 여기서 앞으로 4개월은 살아야 하니 잘 적응 하길…….
공동 욕실에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와서 옷을 편한 걸로 갈아입고 수업이 몇 시부터 시작 되는 지 확인을 했다.
‘3월 4일 화요일….. 첫 수업이 11시에 시작하네. 아침 8시니까 많이 여유롭다. 그 동안 뭐 할까? 주변 탐방이라도 걷고 올까? 먼저 아침을 먹어야지!’
나는 갓 20살부터 대학 졸업까지 요리를 전~혀 몰랐다. 기숙사에 당연히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아니 조리실은 있었다. 거기에 전자레인지나 전기주전자만 있었다. 뭔가 해 먹으려면 전자레인지에 조리를 해야 했다. 나는 그것도 몰랐다는 거. 그래서 다 학생식당에서 사먹었다. 그 만큼 용돈에서 식(食)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둘째 날이라 대학강의를 시작한 과목이 있고 처음 입실해서 소개만하고 끝나는 수업도 있었다. 아~ 이게 대학생활이구나. 수강신청이라는 제도에 따라 시간표를 내 맘대로 수업을 정할 수 있다는 거. 고교때부터 꿈꿔왔던 순간이였다. 그래서 난 좋았다.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경쟁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눈치싸움과 몸싸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학교에서 정해 준대로 하는 게 더 낫다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게으른 발상이다. 대학생이라면 모름지기 스스로 찾아서 할 줄 알아야 하는 거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어두웠던 고교생활은 청산하고 대학생으로 제대로 공부라는 걸 하자!! 수학/물리/화학이 없잖아. 이것만으로도 행복해~횽횽횽..’
나홀로 생각하고 즐거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음 수업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번째 수업이 연달아 있어서 다 듣고 동기 중에 둘을 알게 되었다. 한 명은 은지, 한 명은 연정과 OT때 알게 된 보라였다. 수업이 겹치는 게 있어서 얼굴을 자주 부딪히니까 친해지기 시작했다.
“너네 그거 알아? 동아리에서 신입생 모집한데~ 플랫카드나 현수막 올리고 홍보해.”
“그래? 점심 먹기 전에 한 번 둘러보자.”
그렇게 해서 넷이서 동아리를 홍보하는 장소로 옮겼다. 넷은 4교시는 비어서 같이 동아리들이 모여서 홍보하는 장소로 옮겼다. 장소는 학생회관 앞 마당에서 동아리들이 프리마켓처럼 천막을 치고 현수막도 걸어서 동아리의 특색을 보이는 물건들을 올려 놓고 홍보를 했다. 다 흥미를 끄는 동아리들이 있었다.
“얘들아, 이리 와봐.”
한 동아리 천막에서 나와 동기들을 부르는 소리에 한 동아리 천막으로 향했다.
“네?”
“너희 타로카드에 관심있니? 내가 타로로 점 쳐줄게. 재미있어.”
그러나 난 다른 셋과 달리 점괘를 싫어했다. 그 점괘에 따라 내 인생을 정해서 쫓아 가는 거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나머지 셋은 달랐다.
“그래요? 점 봐볼게요. 다들 볼 거지?”
은지가 나를 포함해서 셋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나만 빠지고 셋은 점을 보기 위해 천막안 깊숙이 들어갔다.
‘쩝…. 여기서부터 혼자서 투어를 해야겠네.’
천막에서 나온 나는 어디를 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후문쪽으로 향했다. 후문은 의과대학이 있어서 대학병원이 옆에 난 오솔길이였다.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니 또다른 동기가 나를 알아보고 불렀다.
“야아~ 수현아, 어디가?”
“어, 정처없이 떠돌고 있어. 저기 후문쪽 나가서 오른쪽에 상점들이 제법 있던데 뭐가 있나 보려고. 넌?”
나를 부른 건 남자동기 영석이다. OT때 얼굴을 좀 트고 학교에서도 몇 번이고 마주쳤다.
“아, 나도. 같이 가자.”
그래서 영석과 함께 후문이 있는 오솔길을 지나 대학병원에서 오른쪽으로 향했다. 정문보다는 적지만 후문에도 제법 많은 상점들이 있었다. 오락실, 식당, 노래방이 대표적이였다.
“에이…. 생각보다 종류는 다양하지 않네.”
영석이 말했다.
“그래도 놀만한 곳이 있네. 오락실이 난 좋은 거 같은 데 게임 하고 갈래?”
내가 제안했다. 오락실에서 난 펌프에 푹 빠져 있었다. 그 덕에 다이어트가 잘 되어 다이어트 성형미인이 되었다는 후문…..
“어. 나 게임 잘 못하는 데…. 뭐 하게?”
“응. 펌프. 나 펌프에 푹 빠져서 생각이 자주 날 지경이야. 할래?”
“음….. 아니, 그러면 여기서 헤어지자. 게임 잘 하고 가.”
“어. 그러자.”
오락실 앞에서 영석과 헤어져 나는 오락실로 들어섰다.
‘아, 어찌 된게 끝까지 같이 가는 사람이 없네. 오락실 재미있는 걸 모르네…남자애가.’
혼자 중얼대며 나는 500원 동전으로 지폐를 바꾼 후 펌프 게임기에 올라가 열심히 뛰었다.
오후 5시가 되어 나는 수업이 다 끝났다. 저녁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뭘 먹을까. 학생식당에 가 봐야겠지?’
강의실에서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일어서 나왔다.
“수현아~ 어디 가냐?”
오늘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많은 듯 하다.
“응? 학생식당에 가. 왜?? 너희 내가 잘 모르는 얼굴인데?”
“잉? 우릴 모른다니!! 교양국어시간에 같은 조야. 얼굴 좀 외워라.”
“아. 그런가. 같이 학생식당 갈래?”
“아~니. 우리 닭갈비 먹고 싶어서 몇 명 더 불러서 갈건데 같이 갈래?”
“어? 닭갈비? 어디서 먹는 데? 이 근처에 파는 상점이라도 있어?”
“여기도 있어. 닭갈비 골목인지 닭갈비 상점이 줄 섰다. 같이 갈 거지?”
“응, 닭갈비라는 것도 먹어주면 좋지.”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둘 중의 한명은 알겠는 데 한 명은 잘 모르겠다. 나랑 주로 떠든 남학생은 태현. 그 옆은 동환이라는 또 다른 동기생이였다. 하긴….. 120명이 학군으로 묶였으니 동기생들이 유달리 많았다. 그러나 훗날 120명이 뿔뿔이 흩어져서 제때 졸업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따라 닭갈비 골목으로 향했다. 이 둘은 나 말고 2명을 더 섭외해 5명이서 닭갈비를 먹게 했다.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야. 더 누구 없을까?”
“음….. 지나가는 동기 아무나 붙잡을까?”
“그러자.”
태현과 동환은 5명이 모자랐는 지 3명을 더 섭외했다. 그래서 총 8명이서 닭갈비를 먹으러 골목으로 향했다. 나는 여기서 아는 사람이 태현 밖에 없었다. 나머지 7명과 얼굴을 트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어찌 된 게 끼리끼리 다니는 데 나만 혼자서 다니는 인상이였다.
닭갈비 골목은 주택가 골목에 형성이 되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닭갈비 상점이 없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많은 닭갈비 상점들이 성업을 하고 있었다.
“이야…. 새로운 세상이네… 눈이 휘둥그레져. 근데 이 많은 식당 중에서 어디서 먹을 거야?”
내가 태현이에게 물었다.
“어. 여기야. 여기 양이 다른 곳보다 많다고 해서. 십시일반이라고 여럿이 함께 먹으면 비용도 적게 나온다 생각해. 어쨌든 들어가자. 자자. 다 같이 들어가자.”
끼익….
8명은 닭갈비 골목의 식당들 중 한 곳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