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 오늘 강의들 끝!”
3월 3일 월요일의 대학생활 시작 첫날 강의는 4과목의 수업을 다 들었다. 제대로 된 수업은 다음 강의부터 하자고 수업소개와 교수님 소개로 모두 원래 수업시간보다 1시간 일찍 끝내줘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아, 학교가 워낙 다른 학교에 비해 작아서 한 번 만난 동기나 선배를 하루에 5번이나 마주칠 수 있었다. 이 날도 학생식당에 가서 새로 알게 된 동기와 함께 첫 학생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갔다. 식권을 사고 차례를 기다리다 남자동기도 만났다.
“식사하러 왔냐?”
“엉… 너두?”
“난 이미 먹었다. 음식 맛이 괜찮아. 주메뉴가 돈가스던데 좋았어. 맛있게 먹고 가라.”
쿨하게 말하고 가는 남자 동기. 같이 있는 여자 동기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나와 말만하고 간다. 좀 여자 동기는 남자와 말하는 게 어색하다고 한다.
“어쩜…. 넌 남자가 무섭지도 않아? 되게 어색하지 않게 대화 잘하네.”
“엉? 뭐가 무서워??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지. 무서울 게 뭐 있어? 여기 학교고, 지도 대학생인데 대학생으로서의 품위유지라는 게 있지 않을까?”
막연히 남자를 무서워하는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한 여자 동기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 피식 웃는다.
“니가 남자를 잘 모르는 구나.”
“뭐가?”
내가 남자를….. 모르지. 음…. 남자라곤 초등학교때 만난 게 단 데. 여중여고를 나와서 남학생을 보는 건 대학이 처음이였다.
“어. 나 여중여고를 나와서 남학생과 이렇게 부딪히는 건 초등학교 이후 오랜만이야.”
“그렇구나. 난 남녀공학을 나왔어.”
줄이 서서히 줄어들어 식판을 들고 차례대로 음식을 받았다.
“오늘 수업들 어땠어? 나 벌써 수업이 다 끝났어.”
“난 다음 1시간짜리가 남았는데 말이야. 자기 소개하고 끝나겠지?”
식당안은 점점 학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식당은 10개의 식탁과 의자로 구성이 되었다. 한 쪽에서는 조리하고 음식을 배분해 주는 곳이였고 한 쪽엔 여전히 길게 줄이 줄지 않은 채 더 길어졌다. 한 마디로 그냥 급식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점점 식사 줄이 길어지네.”
“그러네. 돈가스가 맛있긴 하다. 그치?”
“응…. 마저 먹자.”
얌냠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둘이서 자판기 커피를 내려 마시며 학생회관을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생회관은 둥근 지붕에 붉은 색 벽돌로 세워졌다. 문은 2개다. 안으로 들어가면 문 입구에는 우리은행이 입점해 있었고, 맞은 편에는 문구겸 서점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식당입구가 11시방향으로 있었다. 둘이서 탐방을 하고 나와 보니 우중충하게 옷을 입고 지나가는 재학생들이 보였다. 그 둘은 속닥이는 말이 들렸다.
“이래 보니 한 껏 이런 추위에 멋 부리는 건 신입생들 뿐이네.”
“맞아. 나도 저땐 저랬어. 꽃샘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멋 부렸는데 다 사치야. 추위를 버티느니 멋을 버리고 이렇게 패딩을 입는 게 나아.”
“쟤네들도 이제 곧 2학년쯤 되면 우리처럼 될 거야. 후후후후.”
그랬다. 나도 2학년이 되고 보니 멋은 어디가고 3월의 꽃샘 추위에 두손 두발 다 든격이라 참 멋보다는 기능성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나도 패딩을 입고 활보를 하며 이 두 선배같은 재학생들처럼 중얼 거렸다. 멋부리는 건 1학년때 뿐이라고.
나와 함께 있던 여동기는 수업을 들으러 다시 언덕을 걸어 학교로 가고 나는 내리막길의 후문을 향해서 내려갔다. 의대가 있어서 한 쪽엔 병원이 있는 자리에 샛길이였다.
후문을 나와 보니 오락실이 3군데나 있었다. 오~ 오락실~~~ 옛추억이 샘솟는 데?
그래서 3군데 중 한 군데에 들어 갔다. 오락기기들이 많았다. 스트리트파이트, 버블버블, 슈팅게임, 총쏘기등등 있었다. 더 나아 그 당시 크게 유행했던 펌프 머신기가 4대나 있었다. 그래서 한 번 올라갔는 데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우둑커니 서 있었을 때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오락실 주인처럼 보였다.
“여기 이렇게 더블로 발로 눌러서 2배속으로 하고, 화살표에 맞춰 발로 이 버튼들을 눌러 주면 되요. 춤추는 거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재미있게 즐기세요.”
“아항…. 네 고맙습니다.”
나는 알려준대로 하며 펌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펌프와 봉의산에 자리잡은 학교 덕에 4개월만에 다이어트가 되었다. 당연히 식사량이 부모님과 같이 살 때만 못해서 빠진 것도 있다. 살에 파 묻혔던 얼굴이 되살아났다. 초딩때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 데 이 미모가 나타난 거다. 몸매도 늘씬해 졌고. 그래서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놀라워했다. 바로 다이어트 성형이 되었다. 지금 40대에도 20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정말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다. 열심히 운동을 하며 관리를 하는 거니까.
그러다 오락실도 학생들로 북적였다.
‘장사가 잘되네. 나와 같은 학생들이 많구나.’
이렇게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와서 기숙사로 향했다.
‘난 단체생활도 초등학교 이후로 오랜만인데 내가 잘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신입생 2명과 3학년 재학생 1명, 3명이서 방을 사용을 했다. 근데 평생 혼자 독방을 쓰던 내가 남과 방을 같이 쓰는 게 처음이라 어색했다. 점점 적응을 못했다. 그래서 기숙사를 2개월만에 나와서 자취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공부도 옆에 사람이 있으니 신경 쓰이고 잠도 2층침대라 위에서 삐그덕 대는 소리에도 못 잤다. 그래서 1학년 성적이 썩 좋지만은 않다. 2학기때 나와서 첫 자취라는 걸 했는 데 자취생활 적응하느냐고 신경도 못 쓰고 도서관 가서 같이 공부하자는 남학생들이 끌고 다녀서 더욱 신경을 못 썼다. 밤샘 공부를 도서관에서 했는데 밤 새면 안되고 도서관도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같이 공부한 남학생들은 점수를 잘 받고 난 낙제점을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같이 공부하자는 남학생들이 많아서 뿌리치느냐 고생 좀 했다. 내가 이렇게 인기가 쬐금은 있었다.
어찌 되었던 간에 기숙사로 가서 벌러덩 침대에 누워서 새로 산 휴대폰을 보았다. 그 때 울린 문자를 보기 위해서다.
[수현아, 오늘 뭐해? 같이 도서관 가서 공부하자.]
‘뭐지? 누가 보낸 거야?’
[김태영]
‘태영~.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는 데 뭔 …… ‘
[5시가 다 되어 가는 데 수업 없어? 몇 시에 모일 건데? 누가 또 와?]
문자를 보냈다. 바로 답문자가 왔다.
[그냥 학생회관으로 나와. 그러면 모여 있을 거야.]
나는 문자를 보고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의자에 걸쳐 놓은 외투를 입고 다시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내가 입은 건 주황 후드에 갈색 점퍼, 청바지를 걸치고 검정 나이키운동화를 신었다. 그렇게 입고 학생회관으로 향했다.
‘이러다 살이 쭉쭉 빠지겠는걸? 기숙사 가는 길이 이렇게 오르막 길이라니….. 벌써부터 숨차.’
10분을 걸어서 오르막길을 올라 거의 정상?에 학생회관이 있었다. 거기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무리가 보였다. 남녀 신입학생들이 뭉텅이로 한 쪽에 길을 터주며 모여 있었다.
‘저 무리들인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여~ 수현아!! 여기야. 애들 꽤 있지? 한 5명은 같이 공부하기로 했어. 껴라.”
태영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몇은 눈에 익지 않은 채 둘이 팔짱을 꼭 끼고 있었다.
“넌 혼자야? 여자들은 둘이서 다니는 데…..”
약간 민망해졌다.
“응….아직 팔짱 끼고 다닐 여학생을 찾지 못했네. 첫 날인데 팔짱 낄 정도면 동창이니?”
“응. 우리 같은 학교 나왔어. 같은 학과에도 진학했고. 아, 첫 날 이지.”
“자자 인사를 했으니 이제 도서관을 가볼까?”
나는 두 여학생과 인사를 하고 나머지도 태영을 빼고 OT때 잠깐 스친 듯한 얼굴이라 목례와 통성명 정도만 하고 같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찌 보니 쌍쌍미팅 같은 느낌이다? 여자 학생 셋, 남자 학생 셋.
도서관은 전에 봐 두었던 인문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건물 4층에 위치해서 제법 넓직한 공간에 칸막이 책상들이 옹기종기 있었다. 아직 학기 시작이라서 사용하는 학생들이 적었다.
“자자, 여기서 공부하자. 서로 마주 보지 말고~ 쪼르르 앉지 않으련??”
“그냥 서로 마주보며 앉자. 칸막이가 되었는 데 얼굴 보고 서로 붉힐 일이 있니?”
그래서 서로 한 쪽은 여학생이, 반대편은 남학생이 앉아서 공부라는 걸 시작했다.
나도 갖고 온 교양책을 펼쳐 눈으로 읽으면서 펜으로 줄도 그으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 조용한가 싶었는데 같이 온 남학생들이 속닥대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야, 너 전공이라는 과목을 보네? 태영은 뭐 봐?”
“야, 조용히 해. 명세기 도서관이란 말이야. 쉿쉿.”
이 목소리에 나와 다른 두명의 여학생들도 키득키득 웃었다.
“수현아, 너 뭐 봐? 난 교양의 국어를 보고 있어.”
“응, 난 교양영어를 보고 있어.”
“난 전공과목 보고 있는 데. 전공을 꼭 들어야 졸업장을 딴 데.”
여학생 셋은 간단히 이야기 하며 공부를 계속 이어나갔다. 앞에 앉은 남학생들도 부스럭 대는 소리가 났으나 곧 조용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왜 옆사람과 앞사람이 신경이 많이 쓰이는 지 모르겠다. 괜히 불안했다. 난 아주 조용해야 하는 데 사람의 발소리, 사각사각 쓰는 연필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내가 내는 소리는 괜찮은 데 옆사람이 내는 소리는 신경을 건드려 좀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티 안 내려고 노력도 했다. 점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교양영어책을 눈만 보고 낙서를 살짝 하였다. 다른 두 여학생과 남학생들은 잘만 되는지 사각대는 연필과 팔랑 이는 종이 소리만 열심히 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다가 나는 좀이 쑤셔왔다. 그렇다고 공부 열심히 하는 이들을 방해하면 안될 거 같았다. 원체 소심해서 먼저 나서서 그만하자는 말을 못해서다. 그 때 때마침 같이 온 무리 중 한 남학생이 기지개를 키며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얘들아. 공부 다 했어? 아, 난 공부가 잘 안된다. 우리 음료 마시자.”
듣던 중 반가운 말이였다. 나는 왜 이런 용기가 안 날까?
“그래. 여자들도 지루해 하네. 근데 너네 둘 쪽지 돌리냐? 둘이 사귀어? 뭘 그리 꼭 붙어있어??”
태영이 여학생 둘이서 꼭 붙어 있는 거 보고 눈을 흘겼다.
“그냥 나 둬. 보기 좋잖아. 나가자.”
호기롭게 내가 나서서 태영의 등을 밀었다. 그래서 6명은 다 같이 밖에 나갔다. 더불어 여학생 둘은 짐을 쌌다.
“왜?”
“아니, 공부 잘 되지만 갈 곳도 있고 해서 먼저 갈게.”
“너네 괜히 불렀다. 그래, 잘 가라.”
“어. 얘네 사귀는 거 같애. 가자. 수현아, 붙어.”
그래서 난 여자 둘을 먼저 보내고 남학생 사이에 껴서 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홍일점이 되었다.
‘나도 같이 다닐 여학생이 있어야 하는 건가. 거참 과제가 하나 더 생겼네.’
팔짱 꼭 끼고 어디론가 향하는 여학생을 보며 자판기 커피를 입에 물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