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처음은 첫 입학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동기들과 중국학과 선배들과 어울렸다. 떼거지로 몰려 다니며 위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10여명이 꼭 어딜 가면 붙어다녔다. 남녀 합쳐서. 모여서 학교 공원에서 게임을 하며 놀기도 했다. 10여명이 다니니 못 할 게 없었다. 학교 공원에서 술판도 벌이고. 이건 곧잘 모여서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음료라고 술과 주스, 콜라와 안주겸 간식거리를 사서 모여서 같이 부어라, 먹어라 하며 즐겼다.
남들은 ‘무슨 조폭이냐 떼거지로 다니게?’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못 들은 척했다.
이 열 댓명이 모이면 식대도 많이 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나에게 도서관 가자고 할 땐 가는 거 같이 공부하는 거 다 좋은 데 나에게 맞지 않은 공부법이라 성적이 바닥쳤다. 그래서 빠지려고 했는 데, 2학년 1학기까지 놓아주지 않아서 버럭 화를 내었다. 그러나 남자대학생들은 거의 1학년 2학기나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라는 사회적 의무를 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
동아리는 좀 순탄치 않았다. 남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많고, 여학생은 달랑 10명이였다. 전부 합쳐서. 여학생의 학과는 일본학과다. 난 나중에 1학년 성적이 좋지 않아, 성적순으로 학과를 나누는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결국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 러시아학과에 배정받아버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고 내가 1학년 전략을 완전 잘못 짰다는 생각을 뒤늦게 들었다. 원래 1학년은 교양수업만 듣는 거래. 흑. 내가 바보지. 훗날 4학년때 교양수업을 좀 더 다른 학우들보다 들어야 해서 편해진 게 있긴 하지만.
그래서 동아리 여학생은 10명 중, 8명은 일본학과, 나 러시아학과, 여후배 생명과학부 이렇게 해서 10명이였다. 나중에 홀로 였던 나와 생명과학부의 여자후배가 빠졌다.
나는 또 착하고 규칙을 좀 잘 지키는 사람이라 동아리 활동도 나름대로 열심히 였다. 총회는 꼬박꼬박 참석을 했고 무더기로 있는 남학생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 속에서 별 다른 일은 없었다. 누구와 눈 맞아서 꽃피는 러브? 자연스럽게 이뤄진 건 없고 억지로 나와 붙인 건 있다. 일본학과 여학생들에게 한 남학생이 넘어가서다. 내 모습에 일본학과 여자들이 만든 이미지를 덧 씌워서 얽혔는 데 그 일본학과 여자들과 어울리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와 사귄다고? 어처구니 없다. 이 남학생이 별볼일 없어서 관심이 전혀 없었는 데 쫓아 다녀서 그냥 옆에 두었다 내가 자존심 긁힌 일을 생기게 되었다. 내 첫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게 했다. 아마도 한 달 아니, 2달 족히 매일 울었나보다. 그러면서 학교를 다니는 데, 수업을 듣는 데 지장이 있긴 했다.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울음을 참지만 눈물이 주루륵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추스렸다. 다행이 나와 별 상관이 없던 이 남학생은 학교를 아예 나오지 않아서 부딪힐 일이 없었다.
내가 정신없이 휘둘린 남자선배도 있다. 키는 나보다 작은 키인데 쫓아다녔다. (뭔 쫓아다닌 남자들이 이리도 있는지?) 지나는 길목을 알아서 지나가면 짠하고 나타나서 조잘 되었다. 수업을 뭘 들어야 하며, 어떤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은 역사를 잘 한다고 자부했다. 나도 역사하면 빠지지 않았지만 혼자 떠드는 거 토 달지 않고 잠자코 들었다. 그게 좋았던 걸까. 더 치근덕 거렸다. 나중에 소재가 떨어졌는지 말 수가 적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선배가 매일 나타난 곳에서 사라져서 의아했다.
‘왜 없지?’
알고 봤더니 자퇴를 했단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어찌 귀찮게 하는지. 재미 있던 1학년 초기, 열댓명이 모여서 다녔던 시기가 제일 재미가 있던 거 같다. 갈등도 그다지 없고, 뭔 할 말이 많았는지 까르르 웃기도 하면서 서로 친근하게 지냈다. 그 속에서도 사랑은 싹 트는지 나랑 친하게 지낸 남학생과 또 그 여친하고 얽혀서 고생도 했다. 아니 얘가 지 여친하고 나를 붙이려 드는 거야. 양다리인거지~ 난 그 때 몰랐잖아. 부르니까 나왔더니 짠하고 지 여친이 있는 거야. 지도 나와서 같이 어울리자고 하잖아. 그래서 그 다음부터 연락을 받지 않고 수신차단을 했다.
이렇게 대인관계가 힘겹다. 공부는 좀 뒷전이 된 건 맞다. 내가 대학가면 1학년은 놀거라고 고교시절에 결심해서 실천 중이였다. 그 덕에 생활의 유용한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요리를 배워야 했는 데 결국엔 못 배웠다. 요리책을 볼 줄 모르니까. 월 100만원의 용돈 중 80만원이 식대였다. 다 2끼를 사 먹었다. 그 덕에 다이어트도 되고. 외식에 질릴 만도 하지. 부모님은 어련히 요리 못하는 거 알고 부족하지 않게 넉넉하게 주셨다. 자취가 이렇게도 힘든지. 그 덕에 음식물 찌꺼기는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썩히기 일쑤여서 냄새가 좀 났다. 빨래도 해 보지 않았지만 무턱대고 해 봤다.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가면서 했던 거 같다. 손빨래와 탈수기로 옷 빨았다. 그러나 다리미질을 못해서 꾸깃한 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게 또 불만이였지만 어쩌겠어, 가사일을 가르치지 않은 부모나, 배울 생각도 없었던 나나 이런 고생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시외버스와 기차, 지하철를 타는 법을 동기들에게 배워 서울을 뻔지르르 드나들었다.
나를 귀찮게 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였다. 이만 하면 참 1학년때 힘들었겠구나 싶지 않은가. 남들도 이정도의 어려움은 있나? 그래도 재미가 있긴 했다. 성적은 잘 나오지 않았지만 좋은 추억과 좋지 않은 추억이 섞였다.
이게 밑바탕이 되어 나중에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