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라고 생각한 동기들이 있었다. 동아리에 함께 입회한 여학생들이였다. 전에 발힌 래연이도 있고 지내다가 OT 때도 만났던 보라도 있었다. 보라는 동창들과도 잘 어울려 무리를 이끌고 다 입회 시켰다. 그래서 난 이 5명이랑 어울렸다. 사실 나만 동떨어지게 놀고 5명은 똘똘 뭉쳤다. 래연은 보라네에 억지로 껴서 어울리고 싶어했다. 래연은 한 번 잡은 물고기 놓치 않는 집착이 있었다. 나도 그 중에 한 명이였다. 나야…. 누구랑 먼저 친하게 지내자 다가가는 것보다 상대방이 다가와서 친해지는 경향이 강했다. 내가 다가가면 거절을 쉽게 당하는 편이라 남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사람 사귀는 법을 모른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시간은 흘러서 2학기가 무르익은 9월 마지막주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방학동안에 잘 지냈어? 이야….. 개강한 지 꽤 되었는 데 이제야 만나냐.”
“학생회관에서 우연하게 마주쳤네. 나야 잘 지냈지. 래연은 방학동안에 뭘 했길래 피부가 탔니?”
“응,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어. 어렵더라.”
“아르바이트 어렵지.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다. 나 곧 수업있거든.”
래연과 헤어지며 난 인문대학을 향해서 갔다. 가면서 한 달짜리 아르바이트가 있긴 하나 하고 갸우뚱 했다. 한달도 안되는 대학방학에 아르바이트라니…..
“뭐, 그런 게 있겠지. 비치에서 알바 한 건가?”
혼잣말을 하며 강의실을 찾아 들어갔다.
오랜만에 나는 강의동 지하의 동아리 방에 있었다. 남자 몇이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조이스틱을 연신 누르며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RPG게임을 하고 있었다.
“야야, 좀 작작해. 모니터에 머리 박겠다.”
내가 말했다. 이에 자칭 녹색 외계인이라고 한 남학생이 대꾸했다.
“어, 심했네. 괴물 좀 죽이고….(나를 쳐다보며) 오랜만이다? 동아리 방에 자주 오더니 요즘 뜸하다?”
“그래도 총회에는 잘 참석하잖아. 올 때마다 보면 게임하고 있더라.”
“재미 있잖아. 나의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야. 그렇다고 중독은 아니다?”
이렇게 오손도손 녹색외계인과 이야기 하다가 다른 남학생도 들어왔다. 자신이 빌려온 만화책을 보여 주며 봐 보란다. 재미가 있다고. 책의 이름은 ‘에반겔리온’이였다. 그래서 그 책을 받아서 나는 읽기 시작했다. 일본 만화 책의 특징은 페이지 넘기는 시작이 왼쪽에서 오른쪽이라는 거다. 한국 만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간다.
잠시 후 여학생들도 짝을 이뤄 들어온다. 직사각형의 동아리방이 금방 북적였다. 5명이 남녀 섞여서 동아리 방에 들어왔다. 이들은 얼굴이 상기 되어서 왔다.
“너네 그거 아냐? 아직 안 온 애들도 있지만 우리끼리 게임을 했거든. 여자애덜이 캐주얼 게임인 카트라이더를 잘 하더라?”
“뭐? 게임 대회?”
나와 먼저 모여 있던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곧 나머지 사람들도 들어왔다. 거기에 97학번 남학생도 있었다. 이 선배(라고 해야 하나? 학과는 다른데.) 나와 친해지고 싶은 눈치였지만 대세를 따르고 있었다. 겉모습은 우람하고 날카롭게 생긴 눈매를 가졌지만 감각이 둔감했다. 옷은 그런대로 대학생 신분에 맞게 입고 다녔다.
“응, 내가 제안했는 데 져버렸어. 내가 속한 팀이 져서 닭갈비집에 가서 점저(점심+저녁)를 먹고 오는 중이야. 다음에 너희도 같이 끼자. 판이 커질수록 좋잖아.”
귀가 종긋 세워졌지만 일시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무심하게 쳐다보다가 내가 보던 만화책 보다가 점심시간임을 알리는 몸 시계에 따라 동아리 방을 나섰다.
학생회관에 가니 먼저 도착한 은지가 있었다. 은지는 OT가지 않아서 동기들과 어울릴 것을 걱정해했는 데 곧잘 잘 어울렸다. 은지는 키는 나도 작은 키지만 더 작았다. 언제나 멋을 알아서 머리 스타일을 바꿔서 와서 뭇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머리 묶는 기술이 이리도 다양한지 은지를 보고 알았다. 그 땐 나는 머리 손질을 할 줄 몰라서 그저 묶는 법도 몰라 묶지 않고 풀고 다녔다. 달리 표현하면 산발이 된 채? 후훗. 20대 초는 공부만 해서 정말 세상물정 하나 모르는 숙맥인 여학생이였다. 어디를 돌아다니지 않아서 고향도 어디에 뭐가 붙어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였으니까. 먼저 스스럼 없이 다가온 은지와 금방 친해 질 수 있었다. 나는 오는 이 막지 않고 가는 이 막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다.
수업을 들어가며 안면을 트면서 나와 몇 명의 동기들이 생겼다. 나중에 다 헤어지고 은지도 대학졸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결혼을 했다. 이 때 난 은지와 사이가 틀어져서 헤어졌다. 우연히 풍문으로 졸업은 못 한 거로 알 고 있다. 나와 어울렸던 동기 중에 제때 졸업한 사람은 나뿐이였다. 다 여자 동기들도 휴학을 했다.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와야 한 국가에 대한 의무가 있어서 그렇다 친다만.
“일찍 왔네. 뭐 했어?”
“응, 방금 수업 듣고 왔어. 수업이 10분 일찍 끝나서 말이야.”
“학생 식당 좀 물리지 않아?” 내가 말했다.
“어? 난 그다지 물리지 않는데. 자주 먹지 않아서 인가봐.”
“난 자주 먹거든. 요리를 못해서 매 끼니를 사 먹으니 물리네.”
“그럼 밖에 나가서 먹자.”
나와 은지는 밖으로 나와 대학 주변 상가를 가 둘러보고 롯데리아에서 김치밥햄버거라는 특이한 버거를 발견해서 신기 해 하며 먹었다.
“어떻게 밥을 뭉쳐서 햄버거 만들 생각을 했을까? 심빡하다.”
“그러게.”
오물 오물 먹으며 고안자의 아이디어에 탐복했다.
먹고 나와서 주변 상가를 더 돌아보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나의 1학년 2학기가 순탄하게 시간이 흘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