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배정도 끝나고 새 학기, 2학년 1학기가 시작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들 휴학을 한다는 거다. 남학생들은 국가의 부름으로 군복무를 하기 위해, 원하는 학과로 배정이 되지 않아서 등 다양한 이유로 2학년이 시작되자 마자 휴학을 했다. 그리고 여학생들도 배정 받은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재수생 신분으로, 돈 번다고 직장인으로 휴학을 했다. 다들 다시 되돌아 올 것을 기약했다. 정말 심하게 열풍이 불었다.
이에, 나도 여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려 한 학과는 ‘중국어학과’. 그러나 배정 받은 학과는 ‘러시아학과’.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러시아를 알아가야 하다니..... 망연자실했다. 학교에 가니 너도나도 휴학을 한다고 수능을 다시 본다고 동기들이 하나 둘씩 떠나 갔다.
‘나도 수능을 다시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중국학과 보고 온 건데, 이거 난감할세.’
이 때의 나는 수동적인 아이였다. 그래서 함부로 자퇴서를 냈다 부모님이 알면 큰 일날 거 같아서 먼저 부모님의 의사를 물었다.
“안 된다! 우리 집에 학사학위 가진 이가 나왔음하고 휴학은 안된다.”
딱 부러지게 아버지가 단정 지으셨다. 그래서 내가 조금은 아버지를 무서워 하긴 했나보다. 휴학생각을 금방 접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학점을 만들어 나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공필수, 즉, 졸업하기 위해 꼭 수업을 들어야 하는 과목이 2학년 때까지는 없어서 ( 전공필수라는 제도 자체가 이 때까지 없었다.) 원어민 회화를 피하기로 했다. 내가 가장 못해서다. 또한 3학년 때 러시아 유학을 보내 준다고 하지만 가서 잘 해 낼 자신이 없었다. 유학 다녀와서 뭐해? 이게 추억만 남지 나에게 뭘 해 줄 수 있나 싶었다. 그래서 회화를 피하고 수강표를 짰기에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 생각은 빗나갔다. 나름의 힘든 일을 겪어서 수업을 제대로 못 듣게 되었다. 아니 출석은 했으나 시험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내가 울면 수돗꼭지라 한 번 울게 되면 2-3시간은 족히 울어서 수업시간에 눈물을 참느냐고 힘들었다. 그래서 F학점까지 받게 되는 불상사!! 그러나 3학년 때 다 만회를 했다능. F학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졸업증명서와 학사학위가 나오지 않는다. 이 점을 모르고 놔뒀다 ‘졸업’이 아닌 ‘수료’만 하는 경우도 보았다. ‘수료’는 사회에서 인정해 주지 않아서 헛 돈 쓴거다. 오로지 ‘졸업’만 인정해 준다는 걸 사회에 나가 몸소 느꼈다.
그러곤 첫 시간. 러시아학 문법 시간에 몇 번의 질문으로 교수님의 심기를 건드려서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뛰쳐나가는 파행이 있었다.러시아학과 교수진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한다. 즉, 중국학과와 일본학과에서 낙오한 학생들이 러시아학과로 와서다. 일부 몇 명은 소신껏 러시아학과를 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낙오였다. 나도 그 대열의 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대다수 학생들은 휴학해서 다음 수업에 00학번 학생들이 1/3밖에 없었고 그 자리를 복학생들이 채웠다. 복학생들도 남녀학생 골고루 였다. 나는 여전히 고교에 이어 아웃사이더로 지냈다. 굳이 친하게 지낼 생각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정보를 얻기 위해 알음알음 알고는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뇌에 새길 정도는 아니였고, 중국학과로 배정 받은 1학년 때 친하게 지낸 친구들과 더 어울렸다. 결국엔 친하게 지낸 중국학과 친구들도 졸업을 못했다. 졸업을 했어도 휴학을 몇 번씩 해서 졸업 연도가 늦었다. 어찌 보면 나만 딱 4년 다니고 졸업한 거다. 정말 그 많던 00년도 신입생들이 다 어디가고 졸업앨범에 다 복학생들만 있고 아무도 없는지! 졸업앨범에 실린 얼굴들도 다 정작 졸업장을 못 받은 사람도 태반이였다. 대학졸업앨범....그다지 졸업생들을 증명해 주지 못한다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자존심 상한 교수님들에 의해 첫 수업은 자체 휴강이였다. 그러나 학기는 시작되었기에 수업은 해야 했기에 구겨진 얼굴을 하고 교수님들은 수업을 이어나갔다. 나는 러시아어 문법만 아니면 괜찮았다. 러시아 역사/문화/사회를 들으니 살맛이 났다. 러시아어 문법이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고 교재도 보기가 어려웠다. 교재 글이 까막 눈인 것처럼 잘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고 생소한, 처음 보는 러시아어 알파벳이 나에겐 외계어라서 정말 힘들었다.
‘러시아 문법만 보면 되니까.....’
이런 생각에 이 때도 성적이 좋게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러시아 문법시간만 아니면 수업은 대체적으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둘 곳은 없어서 도서관에 자주 찾아가고 열람실과 정보실도 자주 찾아갔다. 그와 더불어 동아리방도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근데 이 동아리는 여학생보다 남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동아리 방이 강의동 지하라 공대생이 차지했다.
러시아학과 배정 받은 후, 전공이 러시아학으로 되어버린 그 때 스스로 4-5년 후에 러시아와 교류를 많아질 거고 그에 상응해 취업이 잘 될 거라 자기 합리화 시키며 적응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