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을 짠대로 원어민수업은 피해서, 2학년 1학기때 학점을 제대로 못 받은 과목과 들어야 하는 과목까지 합해서 21학졈(7과목)을 신청해서 학기를 시작했다.
다 학과를 배정을 받은 이후에 잘 모이지 않게 되었다. 같이 놀자판으로 지낸 남학생들은 군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다. 여학생들도 자신이 배정된 학과가 맘에 들지 않아서 자퇴신청을 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어울리지 않은 동기들과 있게 되어 외톨이가 되었다. 동기들도 다 나가고 달랑 나를 포함해 4명이 남고 나머지는 복학생이였다. 또다시 러시아학과 교수님들이 아연실색했다. 이 때 러시아와 우리나라 사이가 지금처럼 썩 좋지 않았다. 20여년 전에 미래에 러시아와 교역이 터서 활발히 일자리가 생길거야 생각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지금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은 가까워지다가도 멀어지기도 했는데, 러시아는 그저 멀기만 했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멀다.
이렇게 자위적(自慰的:자기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것.)으로 나를 위로하고 전공과 교양과목을 골고루 섞은 7과목의 수업들이 시작 되었다.
친구들은 인문대학 중국학과로 배정이 되었다. 교양과목을 열심히 들었다고 한다. 난.... 중국학과 전공과목을 들었는데 이게 러시아학과로 배정이 되면서 타과전공을 들은 게 되었다. 근데 이게 도서관에서 밤새서 D학점을 맞아서 재수강을 했다. 러시아학은 어학을 빼고 역사/문화/경제학의 수업을 신청해서 열심히 들으니 재미가 있었다.
‘언어만 아니면 어찌저찌 4년평점을 A평점이라도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3학년 복수전공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드디어 4년 평점을 A평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원어민수업 모두가 전공필수가 되었다. 전공필수를 수강을 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한다! 그리고 F학점 떠도 졸업이 아닌 수료가 된다! 돈이나 날리게 되는 거다. 큰 일이였지만 원어민 교수님이 졸업이나 시키자는 자포자기한 생각으로 F학점 대신 D학점을 줘서 다행이였다. 이 수업 때문에 졸업 못하면 억울하잖아. 그래서 결국 목표한 A평점이 아닌 평점으로 졸업을 했다. 고생했다 생각한다.
2학년 2학기부터 같이 놀러 다니는 동기들을 만나지 않았다. 동아리도 발을 끊었다. 철저히 혼자로 만들었다. 복수전공을 해야 하는 절박함이 외로움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았다. 복수전공 아니면 난 학사학위는 없는 거고, 좋지 않은 고교성적으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겠냐고. 이래서 이를 꽉 악물었다.
괜히 1학년때 전략을 잘못 짰다 생각하겠지만 그건 그랬다. 내가 좀 잘난체 하는 게 있다. 1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고생 좀 하고 4년째에 쉽게 듣자는 전략이라서 고생을 사서 했는 데 이게 잘못 된 거지. 다들 나와 다른 전략이였다. 1학년 때 놀고, 3-4학년 때 고생하자는 거다. 근데 이 전략들을 제대로 쓰는 학생들은 없었다. 휴학 아니면 자퇴를 했다. 다들 뭔가 대책이 있으니까 자퇴를 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고교 다닐 때 비평준이였다. 고입고사를 치른 세대다. 그래서 상위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대로 성적은 평생 받아 본 적이 없는 꼴찌가 되었고 아연실색했다. 그 때가 97년도 IMF가 터진 해였다. 그래서 부모님은 가정경제가 약간 기울여서 외벌이에서 맞벌이로 전환했고 내 성적이 썩 좋지 않아서 걱정을 하셨지만 나에게 맡겨라, 대학 간다.고 확실하고 자신있게 말해서 믿고 걱정이 되었겠으나 표르 내지 않으셨다. 만년 3년 꼴찌를 했고 난 수능에 내 인생이 걸렸다 생각했다. 만년 3년 꼴찌였으나 수능은 잘 보았다. 다들 또 놀라게 했고 대학을 갔고 대학에 가서 내 성적을 바꿔야 한다 생각해서 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난 결심한 건 무서울 정도로 지킨다.
“대학 졸업 때 최소 4년 총평점B로 만든다!”
고 난 중얼거렸고, 결국 난 졸업논문과 졸업시험을 다 합격해서 만 22세에 당당히 목표한 평점을 받고 학사학위를 받았다. 목표한 일을 달성했다. 이 때 느낀 건 성차별이 있음을 많이 느꼈다. 남학생은 쉽게 A학점을 주면 여학생은 아무리 잘해도 B+학점이였다. 내가 그랬다. 어처구니 없어서 정말 교수님들에게 실망도 많았다. 참나.
어쨌든 쉬는 공강시간이나 심심할 때마다 도서관을 찾았다. 그래서 책을 자주 빌리고-희한하게 도서관에 앉아 읽히지 않았다.- 이 시기에 책 대여점이 성행해서 책 대여점에서는 만화책을 한 무더기로 빌려 집에서 책들을 신나게 읽으며 보냈다. 완벽 집순이모드였다. 공부도 곁들이며 내 여유를 만끽했다.
조별과제. 사실 난 이거 싫어한다. 내가 대인관계가 2학년 1학기 때 쪼개져서 사람의 신뢰를 잃어버린 덕에 타인과 있는 걸 불편해했다. 의견도 제대로 반영이 안되고. 내가 적응을 날 못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조별과제가 없고 개인플레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복수전공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