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학년이 되어 나의 복수전공을 시작할 수 있었다. 복수 전공을 하면 전공과목을 반반씩 듣고 졸업기준 학점들을 채워야한다. 또한 졸업시험을 치르고 졸업논문을 내야 했다.
“좋아. 수학 같은 과목이 없으니 열심히 하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겠어. 숨통이 트였네.”
러시아학만 하면 정말 졸업은 못할 판이였기 때문이다. 사회복지학도 만만치 않은 전공이지만 그래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내 목표 졸업평점 B학점 이상을 맞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당연히 과제와 시험을 잘 치른다면 말이다.
사회복지학 첫 수업의 과제는 ‘소논문 쓰기’였다. 소논문을 몰랐던 나는 첫 수업부터 소논문을 쓰라고 해서 당황했다. 그래서 어떻게 소논문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내가 즐겨 가는 –머물지 않고 대여만 하는-도서관에 가서 ‘논문작성법’이라는 책들을 빌려왔다. 2권 빌려서 찬찬 읽으니 책에 나온 대로 하면 되겠다. 그러면 그 내용은 어떻게 채우느냐다.
“다 창작을 해야 하는 건가. 이거 베끼기 하면 도용이고 표절인 건데, 어쩌지?”
나는 이 때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공용컴퓨터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 때 논문을 쓰는 여학생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옆에서 힐긋 논문 쓰는 걸 봤더니 문서 참고해서 쓰더라. 그래서 머리 속에 스치는 게 있어서 본 대로 나도 책을 참고해서 소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여차저차 자료들을 참고하고 해서 글을 뚝딱 썼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제출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해서 눈 딱 감고 교수님에게 제출을 했다. 내 손에 떠나간 소논문이 교수님의 시선을 끌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건 운명에 맡겨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대로 소논문 형식에 맞춰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작성하라거나 거부 의사가 전혀 없어서 잘 쓴 거라 자부했다.
수업은 대 강당에서 교수님이 마이크를 들고 수업을 했고, 화이트보드는 잘 보이지 않아 청력을 활용해서 교수님의 말씀 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중요한 곳 줄치고 적고하며 학기 공부가 시작되었다.
이 때의 내 몰골은 그저그랬다. 그냥 아무런 치장 없이 다녔기 때문이다. 머리 묶을 줄 몰라서 긴 머리 풀었고 옷은 티에 청바지 차림이 일상이였다. 이런 간단한 복장에 주변 여학생들에게 바보가 된 기분이였지만 콧대를 높여서 생각했다.
‘실컷 비웃어라. 너넨 아무리 잘 받아도 C평점을 가져 갈 테니.’
나는 생각했다. 이때 나는 자존감이 높았다.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의기소침해 지고 좋지 않은 생각을 훗날 하기 시작해서 자존감이 떨어졌다. 20대의 콧대 높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웠던 내가 어디로 사라졌는 지! 그러나 지금 우울증이 나아서 옛 내 모습으로 돌아가 너무 좋긴하다.
러시아학과와 다르게 사회복지학과는 조별과제가 제법 있었다. 그리고 타과 전공도 들어야 했는 데 경영학과 마케팅원론을 듣기도 했다. 다 조별과제가 있었다.
근데 거기선 주도적으로 하는 부류가 그냥 따라가는 부류가 있었다. 나는 또 그저그런 부류에 속해 있었고 의견을 내기 보다는 따라가려했다. 한 마디로 튀지 않으려했다. 주도적으로 하는 부류들은 열정적이였다. 이 때 파워포인트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사용해 보았다. 애니메이션도 넣어보고 제법 잘 만들었다 생각했는 데 퇴짜를 놓기도 했다. 근데 재미있는 건 내가 교수님의 의도를 내가 잘 파악해서 따로 조별과제에서 공통이 아니라 개별과제에서 난 점수를 잘 받았다는 거다. 다 같이 C학점일 때 나만 B학점을 받은 거다. 이 상황이 두 세 번 있었다. 그래서 경영학과에서는 남자 군제대 복학생들이 교수님까지 찾아가서 따졌으나 내 보고서를 보고 승복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여학생이라 A학점을 안 준거야? 이 때 학교의 성차별을 느꼈다. 여교수들도 같은 여자면서 남학생들에게 후했다.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노력해도 A학점을 받기 힘들다는 소리다. 내 전공과목은 A학점보다 B학점이 수두룩하다. 정말 노력했는 데 타과생이라고, 여학생이라고 A학점 정말 주지 않더라. 계급 사상도 있던 걸까. 나와 같은 수업을 듣고 나의 도움을 많이 받던 남자재수생은 A학점 받고, 난 밀려서 B+학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정말 억울했다. 나이가 어려서, 여학생이라고 밀렸다.
어쨌든 이래저래 조별과제는 잘 해내였다. 발표는 사회복지학과만의 양식이 있어서 나와는 맞지 않았다. 발표도 하고 프리젠테이션도 만들어보고 다 해 보았다. 초등학교시절 난 발표를 잘 하는 아이로 손 꼽혔는 데 반전이였다. 발표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다니.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원래 난 임기응변이 좋다 생각하지만 사회복지학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좀 사람과 잘 어울렸지만 불편해 했던 나는 조별과제, 잘 모르는 사람끼리 얼굴을 트기도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 뿐이였다. 그래도 점수는 잘 받았으니.
나에게 교양과목은 쉬어가는 타임이고, 전공과목은 열심히 해야 내 체력안배가 되었다. 내가 워낙 체력이 약하기 잔병이 많았는 데 내가 잔병 때문에 고생을 했다. 골골 거릴 때마다 교양은 제끼고 사우나에 가서 땀을 빼거나 집에서 약먹고 누워 쉬었다. 그덕에 전공수업은 쌩쌩한 모습으로 제대로 들었다. 그래서 전공수업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건강하기만 한 줄 안다.
조별과제는 별 특별한 거 없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나름대로 나홀로 재미있게 공부하면서 사회복지학에서 사회복지기관이나 시설에 실습을 나가야 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신청을 남아 있는 기관에 신청서를 내어 서류 합격통보를 받고 언제 나오라는 말도 들었다.
하.....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받기가 정말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