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틀 간은 캠핑장으로 아동/청소년 다 같이 놀러 갔다. 일종의 단합과 함께 사회적응 훈련을 위한 거 같았다.
아동들이 나와 남자에게 장난을 많이 쳤다. 이걸 받아주는 데 좀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했던 거다. 그리고 저녁/밤 시간에는 극기 훈련이 있어 나는 문과 머리인데 숫자놀이, 암산력 테스트를 하는 것을 맡으라했다. 왜 내가 맡냐했더니 똑똑해 보여서라는 말을 들었다. 아, 내가 그리 똑똑해 보이진 않을 텐데. 그래서 나는 어두운 밤, 정해진 자리에서 한번 암산력 테스트에 사용되는 문제를 한 번 풀어보며 아이들이 오길 기다렸다.
첫 무리들이 도착을 했다. 다들 암산에 자신이 없다며 뒤로 빼다 한 남학생이 나서서 풀었다. 시간을 재서 마음이 급하게 했지만 곧잘 풀었다. 검산. 나도 암산. 정답!
이 후 4팀의 학생 무리들이 왔고 나도 2문제씩 내서 검산을 한 후 점수를 매겨줘서 보냈다. 그런 후 나도 하산을 했다. 와.... 무서웠다!! 나홀로 산속 혼자서 지키는 게 나도 극기 훈련이였다.
여학생들은 꼭 둘이 붙어다니고 업무 배정도 같이 했다. 궁합이 잘 맞는지 그 둘은 크게 불만이 없었다. 나는 남자와 붙였지만 성향이 맞지 않고 너무 대학원생이라고 잘난체를 해서 싫었다. 그리고 점점 그 남자는 업무에서 배제가 되는지 나 혼자와 사회복지사인 직원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음날, 짝 축구를 했다. 근데 남녀 섞여서 했는데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나만... 너무 열심히 나와 짝이 된 남자애를 끌고 다니며-내가 어찌 나보다 큰 청소년인 남자애를 잘 끌었을까.-뛰었다. 더불어 용기를, 활력을 북돋기 위해 나름대로 설득을 시켰다. 그 모습에 남학생들이 뿅 반했는지, 내가 열심히 나와 짝 이룬 키 큰 남학생을 끌고 다니면서 휘저었다. 남은 학생들도 움직이기 시작하여 활기를 띄었다. 사실 정말 힘들었다. 어찌 다들 의기소침하고 자신감 하나 없을까. 나는 여기서 사회복지의 실망감이 왔다. 아이들에게 희망보다는 안주를 가르치는 게 아닌가하는. 그리고 거의 지쳐 허덕일 때 내 주위를 남학생들이 호위무사처럼 빙 둘러 같이 갔다. 아, 남학생에게 호감을 주고, 여학생들에겐 질투를 주었나보다.
월드비전에 내가 얼굴 아는 심리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해서 졸업한 언니가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월드비전에서 일하며 겪은 일을 들려주었다. 오.박봉에 너무 심하게 일을 시킨다했다. 수퍼바이저는 그녀가 참 열심히 일하고 운전면허2종이 없어서 좀 그랬는데 바로 따서 티코(현재 모닝보다 작은 차. 현재 단종)를 몰기 시작했단다. 그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다고. 근데 언니는 불만 투성이였다. 그래서 경력으로 인정하는 2년 딱 일하고 대학원진학을 할거라고. 심리학대학원가서 심리상담사가 될 생각이랬다. 여기서 두 번째 실망감을 얻었다. 박봉에 보람이 그다지 없다능. 언니를 따라다니며 반찬나눔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다. 아, 어르신들이 말동무가 필요한데 반찬을 나눠 줘야 할 곳은 많아서 좀 매몰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어르신 상처 받지 않도록 말을 끊는 스킬을 보여주는 언니였다. 정말 바쁘구나.
현재 사회복지사의 처우가 2000년대보다 좋아졌는지 알 수는 없다. 결국..... 난 사회복지업계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첫 사회복지사1급 시험에도 응시하지 않았다. 뒤늦게 30대 넘어서 사회복지사1급이 욕심이 났다. 사회복지사2급이 있고 대학4년제도 졸업했고 해서 단순 욕심이였다. 결국 주변의 만류로 따지는 않았다. 사회복지사1급 따면 거기에 맞는 일을 해야 하는 데 난 지금 와병으로 요양 아닌 요양을 하는 중이라 걱정을 하셨다. 그냥 자격증이 탐난 거라면 하지 말라고. 그건 맞아서..... 현재 사회복지사2급이 있다.
(내 수중에는 총 8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이렇게 사회복지사 실습이 끝나고 소감을 일지로 적어서 내고 실습을 끝마쳤다.
나의 실습성적은 두구두구두구.....A인줄 알았는 데-캠핑장에서의 활약이 있어서- B+을 주었다. 남자였다면 A를 주지 않았을까. 다른 여학생들도 B+를 받고 정작 대학원생 남자는 C+를 주었단다. 대학원생이 의욕만 앞섰지 어떻게 클라이언트를 상대할지 모르더라.
난 실습을 하면서 사회복지사로 가기 않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아니, 내가 생각하기에 난 장애가 있는 남동생 때문에 케어하라고 사회복지사를 하라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을 했다. 그리고 물었더니 맞다고 해서 좀 충격 받았다. 난 언제나 남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전유물 같은 건가? 그게 참 나를 옥죄었다.
실습은 이렇게 좋은 성적과 함께 무사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