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점관리는 2학년 2학기부터 시작했다. 거의 2학년 1학기까지는 나와의 약속으로 고3년동안 못 논거 노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세상 촌뜨기가 서울을 왔다리 갔다리 하며 새 문물에 눈을 뜨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좀 배신도 당했다. 거기에 거마동에도 다녀왔다. 별의 별 경험을 하면서 내 자신의 다른 면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맨 처음 서울에 사는 동기나 친구들 따라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200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발달이 된 것도 아니고 지하철노선도라는 작은 지도를 봐야 했다. 그걸 보는 법을 배웠다. 서울 살아도 그 동네만 아는지, 좀 유명한 혜화동, 안국역 같은 데 가는 데 이 친구들은 헷갈려 하기도 했다. 서울이 재미있는 곳이라는 걸 알아서 나중에 혼자서, 또는 부모님 모시고 내가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찾아다녔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지하철은 내 손바닥 안이다. 부모님도 어느 순간부터 지하철노선도를 읽을 줄 알게 되셨다. 가끔 나에게 훈수를 두시기도 하신다.
이렇게 2학년 1학기에 친구라 생각한 동기들의 배신을 맛 봐서 충격으로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좀 말도 안되는 걸로 배척 당해서 웃겼다. 그래서 어차피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 혼자 다니기로 결심했다. 제 때 졸업하리라!
2학년 2학기는 전략적으로 수학을 못하고, 원어민수업은 더욱 점수를 깎아 먹으니 피했다. 그랬더니 공부가 좀 수월했다. 그 덕에 높은 점수로 3학년 복수전공이 가능해져서 내가 졸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 기회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느냐에 또 달라진다.
그래서 그동안 선배들에게 의지했지만 잘못된 정보로 엿 먹은 적이 몇 번 있어서 직접 챙기기로 했다. 그래서 행정실과 학생처에 자주 들락거렸고 거기도 자주 내가 들락이며 학사관리를 하니까 신기해했다. 직접 학사관리를 하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하는 눈빛이였던 거 같다.
전공과목, 타전공과목, 복수전공과목,교양과목을 골고루 공부해야했다. 그래서 워낙 체력이 딸려서 교양과목은 빠질 수 있는 대로 다 빠져서 체력을 보호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전공과목과 복수전공과목, 타전공과목은 열심히 했다. 교양과목은 시험을 잘쳤으나 수업을 4번 다 빠져서 C+학점이 최선이였다. 현재 내 성적증명서를 보면 전공, 타전공, 복수전공은 B학점이 최하였다. 점수 깎아 먹은 건 전공필수가 된 내가 피하고 싶었던 원어민수업이 D학점 받은 거 외엔. 러시아 교환학기를 안가니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억지로 다녔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얼마나 열심히 였음 러시아 사전이 다 너덜너덜 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 원어민수업은 대답을 못하니 그저 그랬다. 아, 중급러시아어문학에 대한 것도 열심히 들었지만 왜 러시아어가 머릿 속에 잘 들어오지 않은지! 나에게 매우 어려웠지만 버텼다.
하, 버티기가 고교 이후 대학교에서도 생기다니. 남들은 고교때 러시아어를 배워왔다고 수월하게 하는데, 난 배운 적이 없어서 러시아어가 어려웠다. 거기에 교수님들이 잘 모르는 사람이 나 한 명이라고 내 초보수준이 아닌 중급 수준으로 가르치셔서 따라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였다. 그래도 전공이라고 열심히 했다. 사실, 러시아어보다 영어를 더 잘했다. 원어민수업에 영어로 대답했다 욕을 더 먹었다. ‘영어영문학과를 가지 왜 여기 왔어!’라고 원어민교수님이 영어로 말하셨다. 그래서 또 영어로......하려했다 교수님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내 깡도 참.....
어쨌든 이런저런 우여곡절에 학점관리는 착착 진행되었다. 내 학점관리를 누구에게 알려준 게 있느냐...... 그저 학생처에 자주 들락대라는 정도였다. 자신의 학점은 자신이 관리해야 하지 누가 관리하느냐는 생각에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오면 4당5락이라는 걸 생애 처음으로 했다. 고교때도 다들 한다고 해서 따라했다 넉다운만 되어서 하지 못했다. 이 땐 3학년 때부터 내 목표한 <<좋은 점수로 졸업하기>>를 수행하기 위해 4당5락을 했다. 이미 1-2학년 때 남학생들과 함께 밤샘을 한 적이 있었다. 이 걸 생각해서 집에서 공부를 했다. 도서관은 정말 난 공부가 되지 않는다. 자리도 없고. 자리 쟁탈전이라도 벌여지는 곳이니까.
시험주간에 하루에 3시간만 잤다. 그리고 시험치고 공강시간에 피곤을 풀었다. 부모님에게 한 번 전화하셔서 안부를 물으셨다. 내가 워낙 피곤해 해서 뭔 일이냐는 말에 시험기간이고 4당 5락 한다고 했더니 놀라워 하셨다. 고교때도 하지 않은 걸 하느냐, 그렇게 공부가 힘든 거냐고.
학점 관리가 잘 되고 시험도 잘 치르고, 보고서도 교수님 의도를 잘 파악해서 점수도 좋게 받았다. 단지 사회복지사학과는 복수전공이지만 타과생이라고 점수가 야박했다. 야박했는데도 B+과 B를 주로 받았다.
지금 되돌아 보면 참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절박함이라는 걸까? 대학 4년평점과 졸업을 해야 그다지 좋지 않은 고교점수를 면할 수 있다는, 이러지 않음 내 인생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 모든 걸 다 이뤘으니 나의 숨은 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