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밥이 일상이 되었다. 술을 못 마셔서 술자리도 가지 않았다. 가끔 호구로 취급이 되어서 새벽 4시에 멋 모르고 불려 나갔다 20만원이상 열댓명이 먹고 마신 값을 대신 치를 뻔한 적이 3번있었다. 새벽 4시에 부르면 호구노릇을 하라는 소리라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똑같은 연놈이 하는 게 아니라 매번 달라서 스팸으로 차단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묵음으로 해 놓고 전화를 받지 않은 쪽으로 했다.
공부는 계속 되었고 학사관리도 잘 되어 갔다. 학점도 잘 받았다. 그만큼의 나의 노력이 있었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공부도 게임처럼 나에게 미션을 주어지고 그 미션을 풀어가는 과정이 재미가 있었다. 확실히 고교때보다 공부가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수학/물리/화학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았다.
다시 30여년이 지난 지금 심심풀이 땅콩으로 수학정석을 풀지만 말이다. 요즘에도 고교에서 수학정석을 푸는 지 모르겠지만 명저이긴 하나보다. 아직도 수능을 가기 위한 필수수험서로 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이는 수능을 준비 해 보라고 한다. 이 40대 중반 나이에 뭔 수능이냐. 옛 수능과 또 다를 텐데. 수학을 푸니 수능을 준비하는 줄 아나보다. 최종학력과 내 점수가 바뀌게 되는 데 말이다. 대학원을 가면 모를까. (지금 대학원 갈 이유도 모르겠다. 거기에 등록금이 워낙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공부하고 조별과제도 착착 잘 진행이 되었다. 사실 참 조원들이 불만들이 많았다. 내가 타과생이라서 그런가보다. 그러나 조원들과 다른 높은 점수를 받아 더욱 미움을 사는 일도 종종 있었다. 워낙 외모 치장에 관심이 없었고 치장할 줄도 몰랐다. 미용학원이라도 다녀서 화장법, 머리 관리법 같은 걸 배웠어야 했나 싶다. 근처 대학에 다니는 친한 고교동창은 미용학원을 다니고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인색했다.
전화벨은 왜이리 울리던지! 혼자서 다니는 데도 찾는 사람이 곧잘 있었다. 친하게 지낸 남자동기들은 다 군입대를 했고 여학생들도 휴학을 했다. 덩그라니 복학생들 사이에 남아서 멀쩡히 지내려니 점점 혼자가 되어 갔고 공부하느냐고 고향집에 가는 것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혼자 있으면서 가장 곤욕스러운 건 먹는 거였다. 요리를 전혀 못하고 요리책을 볼 줄 몰라서 요리를 못했다. 시중에 나왔있는 간편식들은 다 먹어본 거 같다.
밖에 나가서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혼자서 먹을 수 있는 백반집이라도 찾아서 먹어야 했다.
그래서 한 백반집 음식이 입맛에 맞아서 자주 가 먹었다. 그래서 나도 다른 남학생들처럼 정기권을 끊으면 안되겠냐했다 문전박대를 받았다. 여자라 안된단다. 여자는 요리는 기본이란다. 요리 못하는 넌 왕바보라는 식으로 몰았다. 다음부터 오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 같은 여잔데 뭔 성차별인지!! 오히려 동성이 성차별이 심하다. 거기에 난...... 어딜가도 무시 당하냐.......
그래서 나홀로 혼밥은 계속 되었다. 집에서는 공수 해줄 음식은 없단다. 달랑 김치 하나.
용돈은 넉넉히 주셨다. 모자르면 군말없이 용돈을 주었다. 식대로 80만원을 쓴다 생각하니 아깝지 않다고.
문전박대 당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었다. 기가 차 하셨다.
"같은 동성인데 성차별을 할 수 있니? 요리 못 할 수 있지. 다 지 같이 요리 해야 하나봐?"
그런가보다. 나는 어머니가 일하는 커리우먼으로 살라고 처음부터 요리를 못하게 하셨다. 본인 다 하고 식사를 무기화 시켜서 말 듣지 않거나 훈육이 필요하면 상을 치웠다. 내가 요리에도 관심이 없던 것도 있고.
내가 대학 다니는 00년대에 정말 성차별을 피부로 느꼈다. 내가 다닌 춘천지역이 같은 동성이나 이성이나 여성을 은연슬쩍 무시한다. 그래서 남자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특히 남성권위가 강한 지방에서 더욱..... 그 틈바구니 안에서 고위간부가 된 여성들은 대단하다 생각이 들 정도다.
'나도 남자가 찍소리도 못하게 나를 단단히 만들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근데 내 평점으론 대기업 문턱에도 못 갈 수준이였다. 안정적인 공기업이 낫겠다 싶지만 지금 공기업이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들의 지원할 수 있는 컷라인은 B평점이지만 그 땐 B+평점이여야 했다. 약간의 좌절이라......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생겼다.
이런저런 고민을 4학년으로 올라가야 할 시점에서 학교라는 울타리 넘어 사회라는 미지의 땅에 어떻게 적응 할지 걱정이 되었다.
점점 내 목표에 다가가면서 또다른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