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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Jul 06. 2023

병(病)력 단절

CRPS 환자의 투병 에세이 20

질병에 맞서 싸워 건강을 회복하면 사람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는 지난 몇 년간 투병에만 전념하다 보니 어느새 사회와 단절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직업 경력은 물론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필요한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사회인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20대 후반에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으로 모든 것이 멈추었다. 주위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데, 나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했다.

사람마다 인생을 살아내는 속도가 다르기에 '나는 나의 속도대로 살면 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예상치 못한 폭풍우인 CRPS를 만났지만 내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현실은 냉혹했다. 지옥 같은 통증을 버티고 이겨내어 조금씩 사회로 들어가려 하자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했다.

환자인 나는 CRPS를 지병 정도로 받아들이기 위해 목숨 다해 치료받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나 정작 사회에서 나는 중증 희귀 난치질환자일 뿐이었다.


투병 기간 동안 사람들은 '건강만 회복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막상 건강을 회복하자, 배려라는 이름 아래에 CRPS 환자인 나는 선입견을 갖고 대해졌다.

마치 환자가 사는 세계와 몸이 건강한 자들이 사는 세계가 나누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세계에 발 디디는 나를 향해 응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걱정을 빙자한 우려의 목소리가 항상 따라왔다. 건강이 호전되어 함께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증명해내야 하는 순간들도 펼쳐졌다.


열심히 공부하면 사회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누구보다 시간을 아껴가며 멋진 미래를 위해 노력했다. 공부뿐 아니라 사람들도 좋아했기에 관계 맺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CRPS라는 질병은 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아프기 직전 중고등 임용 공부를 시작해 감사하게도 그 해 1차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악화되는 몸으로 더는 남은 절차에 임할 수 없었다.

앉아있지도 서 있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교사는커녕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버렸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 앞에 놓이자, 치료 외에 중요한 일은 없어졌다.


대학생 때부터 끊임없이 수학 과외 문의가 들어왔다. 학생들의 수학 성적 향상을 보장할 수 있었기에 기쁨으로 가르쳤다.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물을 보고 나에게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투병 중일 때도 입원과 치료 일정을 모두 기다려가며 수업받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이용하고 싶어 어떻게든 이어가려 했지만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 동안 통증을 참아낼 수 없어 이 또한 멈추어야 했다.


인생에서 잠시 쉬어가는 기간이라 생각했지만 CRPS의 치료는 ‘잠시’가 아니라 장기간 투병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나의 사회적 경력은 단절 상태가 되었다.

누군가는 너무 아깝다고 말하지만, 그 당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아쉽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삶의 단계마다 우선순위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 치료에 전념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사회에서 일해야 하는 나이에 일하지 못하게 되면 본인만의 경력단절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환자가 가장일 경우, 집안의 수입이 끊어져 가족 전체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통증을 참아가며 일하지만 반복적인 병원 진료 등 현실적인 이유로 퇴사하는 상황을 보기도 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갔다.

사회가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 해서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통증을 버티며 아프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막연히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통증으로 인해 앉아 있는 자세는 물론, 대화의 태도 등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기에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연습해 나갔다.

똑바로 등을 피고 앉는 자세, 눈을 보고 소통하는 것, 명확한 발음으로 대화하기 등 사람들과 원활한 관계를 맺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교정해 나갔다. 병원과 집만 오고 가며 멈추어있던 삶에서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시작의 발걸음이었다.


통증으로 인해 지난 몇 년간 하루에 채 30분도 앉아있을 수 없었다. 앉아있더라도 힘이 없어 항상 어딘가에 기대어 있었다. 목을 가누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어가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절대 한순간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다. 장기간에 걸쳐 몸을 서서히 적응시켜 나갔다. 통증이 좋지 않은 날에는 과감히 쉬고, 가능한 날에는 시간과 횟수를 차츰차츰 늘려 나갔다. 이 또한 재활치료의 일부라 생각했다.


외출 준비 과정마저 몸이 적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필요한 물품을 챙기는 등의 행위는 통증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도 아주 사소한 행동이겠지만, 일상생활 영위마저 못하던 나에게 이는 도전이었다.

특히 샤워하며 물이 닿을 때마다 악화되는 통증에 적응하고 이겨내야 했다. 샤워를 마친 후면 기진맥진되어 침대에 누워 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프기 이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반복 또 반복했다.


아픈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 또한 중요했다. 사람의 내면이 중요하다지만 첫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 내려지기 때문이다.

걸음걸이, 앉아있는 자세, 자연스러운 표정 연습,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는 태도 등과 함께 환자처럼 보이지 않도록 깔끔하게 하고 다니려 했다. 수면 밑 백조의 발처럼 아프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이면에서 수없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간혹 장기간 통증에 시달린 환자들이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무언가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쉽지만 냉정하게 현 상태를 판단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일상생활도 못할 만큼 통증에 시달려온 사람이 ‘일을 하겠다, 또는 공부를 하겠다’는 다짐 하나로 행동에 변화를 주면 오히려 몸에 무리를 줄 뿐이다. 다짐한 대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환자 본인에게도 절망감이 따라온다. 아주 사소한 변화부터 시작하되, 꾸준히 해야 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투병하다 보면 이 시간들이 쌓여 나에게 새로운 미래를 향한 목표와 꿈이 되어줄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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