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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Jun 15. 2023

건강이 최고야?

CRPS 환자의 투병 에세이 22

사람들은 말한다.
“건강이 최고야.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나는 이미 건강을 잃어버렸다. 되찾을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

이런 표현을 들을 때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지극히 평범한 대화 속에서 상처받는 내 모습 또한 싫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되, 특수한 상황에 맞추어 생각을 바꾸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건강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건강을 잃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들어도 자격지심에 발끈하지 않고 태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태도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현재 상황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어야 했다. 

'건강'의 사전적 정의부터 찾아봤다. 건강이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를 말한다.


두 가지 측면으로 접근했다.

첫째, 몸의 건강은 잃었지만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힘썼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두운 면을 보기보다 감사한 점을 찾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고백했다.

투병기간이 길어지자 마음까지 점차 위축되고 지쳐만 갔다. 통증 악화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이미 잃어버린 몸의 건강 대신 마음의 건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스스로 힘내야 한다고 몰아세우기보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다독여주었다.


둘째, CRPS가 내 삶을 집어삼킨 것이 아니라 그저 건강에 흠집이 나 있는 정도라 생각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 단 한 군데도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희귀 난치병에 걸렸다해서 나 자신을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릴 필요는 없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조금 거슬릴 수는 있지만, 오히려 꾸준한 관리를 통해 더욱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살리기 위한 일종의 정신 승리였지만, 다짐은 점차 현실로 반영되었다.


투병 기간 중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표현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이 말과 함께 내가 겪는 통증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겉으로 웃으며 수긍했지만, 속으로는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과연 CRPS 통증을 하루라도 경험해 보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CRPS 통증에는 차마 ‘적응’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었다. 그런데 투병기간이 길어지자 통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의 뜻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적응’이라는 단어 대신 ‘더불어 사는 것’이었다. 절대 이 어마어마한 통증에 사람이 적응할 수는 없었다. 대신 CRPS라는 질병을 받아들이고 CRPS 통증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깨우쳐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갔다.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는 마음을 다스리며, 매일 변화하는 통증에 순응하며 행동하는 것이 그토록 듣기 싫던 통증과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지만 목표를 잡고 발버둥치다 보니 조금씩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의지가 강해서 또는 특별한 사람이라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시점에도 반복해서 터널에 갇힌 절망감에 휩싸이고 넘어진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강력한 소망이 있다. 이를 이루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투병 기간 중 종종 사람들로부터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생 내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당황스러웠다.

통증에 몇 년째 시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위험한 생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은 필요하지만, 나 자신에게 강한 연민을 갖는 순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다 보면 일상 속의 평범한 대화에서도 상처받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나로 인해 눈치 보며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은 아프지만 건강한 사고와 마음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나 자신을 대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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