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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May 04. 2023

하루가 하루처럼

CRPS 환자의 투병 에세이 21

지난 몇 년간 공감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네"

24시간 내내 통증에 시달리는 나에게 '하루'는 일주일처럼 길게 느껴졌다. 시간이 이렇게 안 갈 수 있나 싶을 만큼 하루라는 시간이 지겹도록 길었다. 시간이 금세 흘러가고 있다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마약성 진통제는 처방 가능한 개수가 정해져 있어, 아무리 아파도 먹을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다.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도 있다.

최대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약을 먹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다음번 약 먹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또 보아도 1분이라는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며 몇 초가 지났는지 반복해서 확인했다.

1, 2, 3.. 9, 10.. 또다시 1, 2, 3.. 10.
1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매 초를 힘겹게 버텨냈다.


이 시간을 조금이나마 짧게 느끼기 위해 예능 등의 재미있는 영상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입에 거즈를 물고 식은땀만 줄줄 흘리며, 통증으로 정신 못 차리는 나에게 다른 것으로 관심 돌리는 일은 어려웠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긴 시간 집중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분명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주어졌을텐데 나의 시간만 몇 배로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통증을 버텨낸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86,400초를 힘겹게 버텨냈다.


CRPS 환자 중에서도 유독 심각했던 나의 상태는 척수 자극기* 수술을 마친 몇 달 후인, 2020년 가을에 처음으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그 어떤 치료를 받아도 통증은 무섭도록 악화만 되었다. 그런데 드디어 투병 이후 처음으로 '호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호전속도는 개미 눈곱만큼 아주 천천히 진행되었다. 통증이 조금 호전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기대하며 좋아하는 나를 비웃듯 순식간에 다시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악화될 때마다 지치고 불안했지만 흐릿한 불빛이 비친 순간을 떠올렸다. 이 불빛을 더욱 밝고 선명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일같이 온 힘을 다해 치료와 재활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끝없이 치료에만 전념하다보니 시간은 더디지만 흐르고 흘러 투병 4년 차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24시간으로 구성된 하루처럼 느껴지는 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루가 일주일처럼 길고 지겨웠는데, 하루가 하루처럼 느껴지다니.. 너무나도 놀랍고 감사했다.


왜 하루를 하루처럼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드디어 4년 만에 밤 시간 동안 ‘잠’이라는 것을 자는 날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투병기간 중 밤은 가장 괴로운 시간대였다. 잠을 자기 위해 수십 개의 약을 먹어도 항상 통증이 잠을 이겼다. 그런데 수면시간이 5분에서 30분으로 늘어나고.. 점차 1시간, 2시간이 넘도록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통증에 시달려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조금씩 식사 시간에 맞춰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먹고 자고를 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목숨 걸고 치료를 받아왔다. 다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차마 하지 못할 만큼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질병에 맞서 싸워내자 희망이 찾아왔다. 나에게 허락된 일상생활이 꿈만 같았다.


호전되어 감사한 날을 보내던 시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편히 숨 쉴 수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식탁에 앉아 식사하고, 비록 약을 먹지만 밤에 잠을 잘 수 있는 생활이 선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겠지만 아프고 나서 당연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단 1시간 만이라도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 먼 길이었기에, 당장 오늘 하루만 버텨낸다는 다짐으로 통증과 싸워나갔다.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있는 막막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치열하게 행하는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간다.


하루가 하루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몸이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다.



*척수자극기: 통증 신호가 뇌까지 전달되지 않도록 척수에 전기 자극을 주는 기계. (이전 글 참조: 30살. 몸속에 기계를 넣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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