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민 Jun 19. 2024

프롤로그

여기, 저 살아있어요

내가 중증 희귀 난치병 환자라고……?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내가? 왜……? 


생각지도 못한 질병을 맞이한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이 나 역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받아들여야 했지만, 완전히 달라져 버린 현실을 마주할 때면 좌절감이 밀려왔다. 

초기에는 이 질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심해져 가는 통증을 겪으며 앞으로의 날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졌다.

이 책에는 이제 막 꽃을 피우려던 청년의 때에 CRPS라는, 일명 ‘저주받은 병’을 확진받아 치열하게 싸워나간 투병의 기록이 담겨 있다. 이 병과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끝 모를 ‘동굴’이 아닌, 빛으로 가득한 출구가 있는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아프기 이전의 삶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게 된 지금. 내가 걸어온 지난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나의 이 글이 지독할 만큼이나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CRPS 환자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많은 이들이 일상의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투병 중 적어 두었던 통증 일기의 일부로 나머지 프롤로그를 대신한다.     


2019년 5월.

아프기 시작한 초기에는 양말조차 신지 못했는데, 꾸준한 케타민 치료를 통해 운동화까지 신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엘보 클러치 없이는 걷기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보행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발이 신발에 닿는 순간부터 통증이 시작되어 걸을 때의 다리 움직임이 통증을 악화시킨다. 나에게는 아무리 편한 운동화도 신고 있는 것 자체가 고문처럼 느껴진다.

돌발통이 올 때면 통증 부위에 라이터를 켜서 대고 있는 게 더 편할 것 같고, 칼로 몸속 깊숙한 곳을 난도질하고 싶은 충동이 찾아온다. 지금 느끼고 있는 통증보다 차라리 그 통증이 더 편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정도 부상이면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해야 할 것이고, 그 시간만큼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니 오히려 그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 방에서 라이터와 칼을 다 치웠다. 통증이 심하게 오면 이성을 가지고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통증과 나의 통증을 절대적 수치로만 비교할 경우, 못 박힘 정도는 나에게 전혀 심한 통증이 아니다. 차라리 못을 박아주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돌발통이 오거나 통증이 심해질 때면 아이알코돈을 먹고 입에 거즈를 문 채로 버티고 또 버틴다. CRPS 통증으로 호흡곤란이 와서 쇼크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호흡곤란이 심해지기 전에 119 버튼을 눌러 응급실에 가 모르핀을 맞으면 다행이고, 그 순간을 놓치면 방에서 혼자 몸부림치다 어느 순간 쓰러져 있다. 응급실에 가면 슈팅으로 모르핀과 아티반을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잡히지 않는 이 통증이 진짜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다.


난 자살이나 자해가 단 하나도 무섭지 않다. 남은 가족들이 받을 상처 때문에 매시간 매분 매초 이 통증과 싸워내고 있을 뿐…….     


2020년 4월.

전신의 뼈는 으스러지면서 드릴로 뚫리는 것 같고, 피부는 불에 타서 진물이 나고 있는 속살에 알코올을 들이붓는 것 같은 통증이 지속되었다. 아이알코돈 수십 개와 자나팜 몇 개를 집어 먹어도 숨을 쉴 수 없어 아빠에게 급하게 연락했다. 119와의 3자 통화를 이용해 호흡이 끊어지지 않도록 도움을 받은 뒤, 응급실에 도착하여 살려달라고 난리를 쳤다.

모르핀 8mg+아티반 1mg, 케타민 100mg+미다졸람 2mg, 또다시 모르핀 8mg+아티반 1mg을 몸에 때려 붓고서야 겨우 집에 돌아와 잠에 들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약을 써도 내 통증을 컨트롤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가 채 되지 않는다. 늦었지만 조만간 진행될 척수자극기 삽입 수술을 통해 통증이 조절되고, 모르핀과 수많은 마약성 진통제와 향정신성 약들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알코돈과 여러 가지 향정신성 약들을 먹어 가며 마우스피스를 물고 버티는 것.

죽지 못해 사는 매분 매초.



곧 전해드릴 좋은 소식이 있어 정리된 글을 재발행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