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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Jun 21. 2024

대상포진이 쏘아 올린 큰 공

여기, 저 살아있어요

2018년 봄,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 그 외의 일들은 모두 정리했다. ‘대충대충’이란 없었던 나는 그해에 꼭 합격하겠다는 의지로 하루에 2~3시간만 자면서 식사 시간까지 줄여 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너무 쉼 없이 달린 까닭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잔병치레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부비동염과 편도선염이었다. 그러나 점차 증상이 악화되더니 급기야 폐렴에 걸렸다. 아픈 와중에도 몇 달간 약을 먹으며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어렵게 폐렴 치료가 끝나고 ‘이제 약을 그만 먹어도 된다.’는 소견을 듣고 병원을 나왔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장염이 찾아왔다. 마치 누군가 내 몸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장염은 쉽게 낫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서는 크론병*이 의심된다며 진료의뢰서를 써 주었다. 검사 결과 다행히 심한 장염이라는 진단이 나왔고, 틈틈이 수액을 맞아가며 계속해서 수험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몇 달간 앓으며 체력이 바닥난 탓이었을까. 결국 2018년 여름, 대상포진에 걸렸다. 발병 부위는 발가락이었다. 초기에 바로 치료를 시작했음에도 포진이 터지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터진 부분이 세균에 감염된 것이었다. 감염된 부위는 심한 염증으로 번졌고, 항생제를 복용하고 주사 치료까지 매일 시행했지만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집 근처 대학병원 감염내과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매일 고농도의 항생제 주사를 맞으며 치료에 전념했다. 입원 기간 중 해당 부위에 통증이 있어 마취통증의학과와의 협진을 통해 신경차단술*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치료를 받자 염증 수치가 떨어져 퇴원할 수 있었다. 포진 부위의 상처가 아물면 당연히 통증도 호전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일상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여름이라 아주 얇은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는데 발가락에 느껴지는 날카로운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깼다. 이불이 발가락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통증이 찾아왔다.

이상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통증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날이 갈수록 계속해서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통증은 가만히 있을 때도 느껴졌고, 아주 작은 자극에도 ‘악’ 소리가 날 만큼 날카로워졌다.


감염내과에서 퇴원할 때,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통증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마취통증의학과 진료를 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통증이 심상치 않아 동일한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에 진료 예약을 했다. 예약 후 첫 진료일까지 3~4주를 기다려야 했는데 이 기간에 느꼈던 통증은 대상포진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빨리 진료를 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직감이 들 만큼 날카롭고 참을 수 없는 통증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마취통증의학과 첫 진료일이 다가왔다. 벌써 6년여 전의 일인데 지금도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환자분, 이 병은 제가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이 아니에요. 담당 교수님이 따로 계시니 그분 앞으로 진료 변경해 드릴게요.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꼭 열심히 치료받으셔야 해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스러웠다. 대상포진에 걸려 통증이 심하게 온 것뿐인데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라니. 첫 진료를 본 의사 선생님이 아프지 않게 시술을 해 주셔서 그분께 계속 진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나를 다른 교수님께 넘기려 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이 ‘복합부위통증증후군’으로 의심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당시에는 ‘……통증증후군’이라는 표현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지인들에게는 내가 무슨 긴 이름의 증후군 환자일 수도 있으니 앞으로 나에게 잘하라는 농담이나 던지며 그 순간을 가벼이 웃어넘겼다. 그렇게 마취통증의학과 첫 진료 날. 나는 다시 한번 신경차단술을 받고, 다양한 종류의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시술을 받고,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여느 질병처럼 호전될 줄 알았던 통증이 정말 하루하루 무서울 만큼 심해져 갔다는 사실이다. 이불이 발가락에 스치기만 해도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샤워기의 물이 발에 닿으면 그 조그만 물방울이 마치 쇠구슬이 되어 발가락을 내려치는 것처럼 아팠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나면 나의 몸은 물이 아닌 식은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     


내 삶에 닥쳐온 극심한 한파의 시작이었다.



* 크론병: 만성 염증성 장 질환

* 신경차단술: 신경에 약물을 주입하여 신경 기능을 차단하는 시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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