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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Jul 10. 2024

선하신 하나님?

여기, 저 살아있어요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었던 두 가지의 말이 있다.

“우리 엄마 학교 선생님이야.”, “나 교회 다녀.”

이 말을 듣는 사람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며 꼭 되물었다. 너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며 웃었고, 나도 그 말에 수긍하며 함께 깔깔거렸다. ‘교사의 자녀’, ‘교회 다니는 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차분하고 얌전한 이미지는 나에게 없었다. 언제나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친구들과 뭉쳐 다니곤 했다.     


우리 집은 3대째 이어지는 기독교 집안이다. 그런 집안에서 모태신앙인으로 자라난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항상 모든 일이 잘되고,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이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그 이상으로 클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이 세상을 마음껏 누리며 매 순간 행복하게 살길 바라실 거라고 믿었다.     

청소년기까지는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된 직후부터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굴었다. 농담 삼아 ‘주일예배는 격주제’라고 떠들고 다니던 내게 신앙이라곤 없어 보였는지, 전도하려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나님께 뻔뻔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지금은 하나님을 잠깐 떠나 있지만 하나님은 제 새끼손가락이라도 붙잡고 있어 주세요. 그러면 언젠가 다시 돌아갈게요.”

하나님을 떠나 살아도 내 삶은 예상외로 탄탄대로였다. 인생은 내가 세운 계획대로 착착 흘러가고 있었고, 세상은 즐거운 것들로 가득 찼으며,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나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점차 신앙생활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교회에서 만나는 친구들보다 세상의 친구들이 나를 더 이해하고, 포용해 주는 것 같았다. 가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흘러가는 삶을 보며 ‘아, 역시 선하신 하나님은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이 순간에도 나를 예뻐하시는구나.’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그렇게 20대 초반의 몇 년을 보낸 후 이 정도면 충분히 자유를 만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외할머니와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내 새끼손가락뿐 아니라 내 몸 전체를 꽉 붙들고 계셨던 하나님 앞으로, 이제 내가 돌아갈 차례였다.     

그런데 웬걸……. 다시 신앙생활의 불씨를 살려 내고 있던 나에게 CRPS라는 질병이 찾아왔다. 나는 고난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배웠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고, 더 깊은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CRPS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 고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믿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 고난을 잘 극복하여 더 단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투병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그 확신은 산산조각났다. CRPS는 하나님께 영광은커녕 나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무너지게 만들었다.


‘주님 내게 선하신 분 내 과거를 던지시고 내 죄 세지 않으시네’. 유명한 한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은 내 잘못을 따져 물으시고 그 크기대로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던 것들을 되짚어 나가며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20대 초반에 너무 방탕하게 살아서일까?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내 생각과 계획을 따라 살아서일까? 차라리 내가 지은 죄가 너무 커서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더 이상 ‘선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면, 그분이 나의 아버지라면 하나님의 자녀인 나에게 CRPS 환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프기 전, 성경에서 가장 읽기 싫었던 부분은 ‘욥기’였다. 그런데 투병 중 읽었던 욥기에는 ‘내가 글을 잘 썼다면 이렇게 썼을 거야.’라고 생각할 만큼 내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자신이 살아갈 날들에 절망하며 고통에 신음하는 욥의 말들이 모두 나의 마음과 같았다. 차라리 천국으로 데려가 주시지, 왜 이 땅에서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형벌을 당하게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던 욥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와닿았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았던 욥처럼 나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려 애썼다.     


어느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욥은 큰 그림을 본 적이 없다. 본 것이라곤 오직 하나님뿐이다.’     

나는 나에게 닥친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지금도 모른다. 나의 길고 고통스러운 투병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나의 삶의 마지막이 어떠할지도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항상 기뻐하라”. 내가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무언가를 주셔서가 아니다. 죄인이었던 나를, 아무런 공로도 없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 그 진리 하나만으로도 나는 기뻐할 수 있다.


모든 삶이 평온하고 아무런 염려가 없었을 때도, 모든 삶이 망가지고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선하신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이끌어 가고 계심을 믿는다.     

내 기쁨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임을 고백한다.



글의 전문은 '여기, 저 살아있어요'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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