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숲 Dec 27. 2020

[노래의말들 대본 33] 긴 밤은 잘 접어 두세요

장범준 '잠이 오질 않네요', 아이유 '밤편지'

 좋은 가사를 소개하는 노래의말들, 아래 링크로 33화 방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Opening_noma_sakura]                                               

지금은 2020년 12월 20일 오후 3시 2분입니다. 


500년 정도 전에 이맘때였습니다.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며 유독 긴 겨울밤을 지샜던 한 여인은 이런 노래를 썼습니다.


동짓날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네 조선 시대 황진이가 쓴 시조 ‘‘동짓날 기나긴 밤’입니다. 그렇습니다. 노랫말만 좋다면 시대를 막론하고 다루는 방송, 고전시가로 오프닝 하는 방송, 은근히 절기 챙기는 방송, 12.21 동짓날을 기념하며 노래의말들,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숲입니다. 황진이 황진이 황진이의 시조로 시작했습니다. 국어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국어 시험은 싫어했지만, 이 시조는 와~ 어떻게 이렇게 쓰지 감탄하면서 봤었죠. 기억이 납니다. 동지가 밤이 가장 긴 날이죠. 그날 밤 허리를 베어서 이불에 그냥 넣는 것도 아니죠. 서리서리 넣었다가. 서리서리가 빙빙 둘러서 감는 거래요. 기니까 감아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오면 굽이굽이 펴는 거죠. 안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 기다리면 그 밤이 얼마나 길겠어요. 동짓날은 더 길게 느껴졌겠죠. 시계도 없는 밤 외롭고 그리운 마음이 잘 느끼지는 좋은 노랫말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절기를 챙기게 됩니다. 낮이 가장 긴 하지 기념 방송이 있었거든요. 노래의말들 8화 오프닝이 하지가 지나면 밤이 손톱만큼 쪼끔쪼끔 쪼끔씩 길어지다가 동지가 된다는 저희 할머니의 말씀이었죠. “동지가 되면 밤에 관련된 노래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했던 게 벌써 반년이 지났네요. 뭔가 약속을 지키는 느낌이랄까요. 뿌듯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밤과 관련된 노랫말을 준비해봤어요. 이분의 목소리는 밤에 참 잘 어울리죠. 가본 적이 없어도 여수에 대한 향수를 전 국민이 갖게 했던 여수밤바다의 장범준 님이 부르신, ‘잠이 오질 않네요’ 읽어드리겠습니다.



[오정석_Stay Here]

장범준 '잠이 오질 않네요'


당신은 날 설레게 만들어 

조용한 내 마음 자꾸만 춤추게 해

얼마나 얼마나 날 떨리게 하는지

 당신이 이 밤을 항상 잠 못 들게 해

매일 같은 밤 너를 생각하면서 

유치한 노랠 들으며 

심장이 춤을 추면서 

난 너를 기다리면서 

유치한 노랠 부르며 

심장이 춤을 추면서 

나를 떨리게 하나요 그대 

왜 나를 설레게 하나요 자꾸만

오늘도 잠 못 이루는 이 밤 아름다운 그대

나를 아프게 하나요 웃는 그대

 왜 자꾸 설레게 하나요 하염없이

오늘 밤 잠이 오질 않네요 보고 싶은 그대여


당신이 날 힘들게 만들어 

갑자기 내 마음 자꾸만 멍들게 해

얼마나 얼마나 잠 못 들게 하는지 

고요한 내 마음 항상 시끄럽게 해

매일 같은 밤 너를 생각하면서

 유치한 노랠 들으며

심장이 춤을 추면서 

난 너를 기다리면서

유치한 노랠 부르며 

심장이 춤을 추면서

나를 떨리게 하나요 그대 

왜 나를 설레게 하나요 자꾸만

오늘도 잠 못 이루는 이 밤 아름다운 그대

나를 아프게 하나요 웃는 그대 

왜 자꾸 설레게 하나요 하염없이

오늘 밤 잠이 오질 않네요 

보고 싶은 그대여


2020년 10월 24일 나온 장범준 님의 싱글 ‘잠이 오질 않네요’ 듣고 오셨습니다. 히든싱어에 나오셨어요. 장범준 님이. 모창 능력자들과 대결을 하시다가 탈락하셨어요. 그럴 줄 모르셨던 거죠. 탈락하면 가수 은퇴하겠다. 은퇴송을 내겠다. 이런 자신만만한 공약을 하셨거든요? 그렇게 탄생한, 탈락이 고마운 노래입니다. 악상이 떠오르지 않아서 욕실에서 기타를 치면서 족욕을 하면서 만들었다는, 작곡부터 녹음까지 3일이 걸렸다는 노래입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노래방 콘텐츠 하세요. 90년대 노래 많이 부르시는데 어쩜 다 장범준화 해서 부르시는지. 엄지 공주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이거 불러보세요, 저거 불러보세요 하고 싶은 가수십니다. 슈퍼스타 k3 버스커버스커 2011년, 신입생 때였는데, 내년이면 벌써 이제 10년 전이 되네요. 


‘매일 같은 밤 너를 생각하면서 유치한 노랠 들으며’라는 가사를 보면 이 노래가 그 유치한 노래이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유치해, 오그라들어, 낯간지러워 이런 느낌이 그냥 ‘좋은 것’이 되는 마법, 심장이 춤을 추면서 이런 가사가 조금 오그라들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순간을 만나게 해주는 노래, ‘잠이 오질 않네요’였습니다. 


밤에 잠 잘 주무시나요? 어렸을 적엔 밤이 참 무서웠어요. 자기 전에 불 끄는 것도 무섭고 귀신 나올 것 같고 그래서 불 켜고 자고 그랬죠. 언제부턴가 밤이 오히려 평화로운 시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일 마치고 들어가서 나로 있는 시간, 조용하고, 나른해지고, 몽롱해지는 시간. 제가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는데, 서울에 안 살 때 밤이 더 좋았습니다. 서울의 밤은 너무 밝아요. 너무 시끄럽고 너무 차가 많고, 새벽이 돼야 제가 생각하는 밤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서울을 조금 벗어나면 밤이 어둡죠.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으시고요, 길도 조용하고, 그래서 밤 산책을 하기 좋죠. 한적한 길을 걸으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달리기도 하는 밤, 이어폰 끼고 사람 없는 줄 알고 노래 부르다가 근처에 지나가는 사람을 뒤늦게 발견해서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졌던 밤들, 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밤을 보내느냐가 지금 내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밤은 감성적 여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솔직해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낮에 사람들을 만나는 긴장, 가면, 이런 게 밤이 되면 무장해제되잖아요. 특히 잠들기 전에 모습이 그렇습니다.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누웠을 때 참 평안하고요, 걱정이 많으면 눈을 감아도 막 걱정거리들이 둥둥 떠다니죠. 여러분의 요즘 어떤 밤을 보내고 계시나요? 평안한 밤이었으면 좋겠네요. 


이 노래 화자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연락 오진 않을까 휴대폰을 계속 보고, 사랑하는 사람 웃는 얼굴이 떠올라서 같이 웃었다가, 마음이 아팠다가 그렇게 누운 채로 잠을 계속 못 잤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 아무래도 안되겠어, 몸을 일으켜서 책상 앞으로 가죠. 의자를 끌고 앉아, 스탠드를 켭니다, 너무 밝으면 밤이 달아나버리니까요. 적당한 조도로. 불을 조절하고, 그가 서랍에서 꺼낸 건 얼마 전 사뒀던 편지지와 연필입니다. 그리고 나를 잠 못 들 게 했던 그대에게 종이 위로 말을 걸기 시작하죠. 사각사각 깊어가는 밤, 아이유 님의 밤편지 읽어드리겠습니다. 

 


[Jesse Gallagher_Maryandra's Waltz]

아이유 '밤편지'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보낼게요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나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려 

그럼 언제든 눈을 감고

 음 가장 먼 곳으로 가요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늘 그리워 그리워

여기 내 마음속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어떻게 나에게 

그대란 행운이 온 걸까

지금 우리 함께 있다면 

아 얼마나 좋을까요

난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또 그리워 더 그리워

나의 일기장 안에 

모든 말을 다 꺼내어 줄 순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게요

음 좋은 꿈 이길 바라요 


2017년 3월 나온 아이유 님의 ‘밤편지’듣고 오셨습니다. 아이유 님이 작사를 하셨는데, 이 가사를 밤에 쓰진 건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쓰신 건지 궁금해지는 노래였습니다. 가사를 워낙 잘 쓰셔서 아이유 님 어떤 노래를 처음으로 소개하게 될까 좀 아껴두고 있었는데, 밤편지를 처음으로 소개 드렸네요. 아이유 님이 낭독하는 가사도 문득, 들어보고 싶습니다. 


‘밤 편지의’ 화자도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주 퐁당 빠졌죠. ‘우리의 첫 입맞춤을 떠올려’라는 가사가 있는 걸 보니 짝사랑은 아닌 것 같아요. 연인 사이 지만 너무 좋아하고 하니까 오히려 이 행복이 깨질까 두려운 거예요. 2절 시작을 보면, ‘어떻게 나에게 그대란 행운이 온 걸까’라고 말하잖아요. 행운은 좋죠. 좋은 건데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말 그대로 운인 건데, 그대를 행운으로 표현하고, ‘파도가 머물던 모래 위에 적힌 글씨처럼, 그대가 멀리 사라져 버릴 것 같아’란 가사가 이어집니다. 이것도 행운과 비슷하죠. 파도는 막을 수 없잖아요. 갑자기 어느 날 이 우리의 사랑이 확 식어버리거나, 그대가 모래 위 글씨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엄습할수록 “또 그리워 더 그리워”지는 그대. 밤편지에서 보고 싶다, 그립다 이런 느낌은 그냥 단순히 만나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이 증발해버릴 것 같은 불안을 만나서 지우고 싶은 마음 같아요. 안정감을 느끼고 싶고, 확신을 느끼고 싶고, 내가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죠. 그래서 “음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사랑해’라는 말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거죠. 내가 말하는 사랑해는 그냥 사랑해가 아니라 얼마큼이냐면, 반딧불을 당신의 창가에 보내고 싶은 만큼 사랑해. 그런데 어떤 반딧불이에요? ‘그날의 반딧불’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예전에 같이 봤던 반딧불이죠. 그때 얼마나 놀라고 좋았겠죠. 우와 반딧불이다. 감탄하던 그 순간, 그 행복을 창 가까이 보내고 싶다. 반딧불이 방 안으로 들어가면 안 돼요. ‘창 가까이 띄울게요’잖아요. 조심스러운 마음이죠. ‘내 마음속에 모든 말을 꺼내 줄 순 없지만, 일기장 안에 모든 말을 꺼내줄 순 없지만 그렇게 많은 말로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마지막 가사에서 다시 반딧불의 보냅니다. 수호천사 같죠. ‘음 좋은 꿈이길 바라요’ 정말 잘 잤으면 아무 걱정도 없이 좋은 꿈을 꾸며 그대의 평안한 밤을 빌어주는 사랑, 이 담긴 한 장의 편지 같은 노래입니다. 


‘잠이 오질 않네요’에서 유치한 노래를 부르며 잠을 설쳤던 화자가 늦은 밤, 단어를 고민하며, 추억을 회상하며 편지 끝에 날짜를 적어 넣었을 때요. 그땐 나른한 피로가 눈에 제법 쌓였을 겁니다. 하품도 크게 한번 했을 거고요. 깊은 잠에 들었고 꿈을 꿨겠죠. 어떤 꿈이었을까요? 반딧불을 같이 봤던 순간, 입맞춤을 하며 설레던 순간, 겨울바다에서 모래 위에 서로의 이름을 쓰는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잠든 이의 입술 끝에 살짝 걸린 미소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네요. 좋은 꿈을 꿉시다.


[Closing_김정식_러브 테마]

오늘은 황진이의 ‘동짓날 기나긴 밤’, 장범준 님의 ‘잠이 오질 않네요’, 아이유 님의 ‘밤편지’ 읽어드렸습니다. 클로징을 쓰는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반 정도가 되었어요. 늦은 밤까지 깨어있으면, 아무래도 지금은 자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테니까, 지구를 좀 특별하게 소비하는 느낌이 듭니다. 한정판 시간을 쓰는 느낌이랄까요. 혹시 밤에 이 클립을 들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비밀스러운 즐거움에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좋은 꿈 꾸시고요. 길고 긴 밤을 몇 센티 몰래 챙겨뒀다가, 다음 주에 또 조금 풀어 놓겠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밤, 노래의말들 김숲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애틀행 버스 창에 기대 듣는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