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자종니와 해자적니

하이킥의 시절

by 소유

혹시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에세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던 무지한 나를 패주고 싶네요.

그 전에 더 쥐어패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일단 저부터 겁나 세게 때리겠습니다.

에세이는 아무거였어요.



진짜로. 진심으로. 다 걸고. 참여하고 있던 나를위함 글쓰기 모임 '씀에세이'는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끝내려고 했습니다. 실낱처럼 붙잡고 싶었던 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의 분류표에서 저는 이방인 같았거든요. 솔직하고 싶으면서도 진짜 나를 다 드러내지 못했어요.

담백하고자 하면서도 흐름에 안 맞는 있어 보이는 단어들을 갖다 붙여서 얼기설기 누더기 같은 글을 짜내기 바빴죠. 그러다 더 이상 나를 짜내지 못했을 때는 어떤 작품이든 끌어와 나를 대변하려 했어요. 심지어 그 와중에 세상 근심없이 허울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는 진짜 본심도 조금 수치스러워요.



쓰다 보니 알게 되었어요. 내가 왜 그렇게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과의 모임이 빠그러지는 게 마음 아픈지, 그냥 한 번 경험 삼아 도전해 본 사업의 손실이 자명해도 적당한 시기에 끝내는 게 왜 힘든지, 나는 왜 매수만 하고 매도를 잘 못하는지, 말 없는 손절에 직접 따져 묻지도 못했으면서 뒤에서 글까지 쓰면서 몇 달을 왜 집착했는지. 온갖 이유와 진심과 인과관계를요.



물론 한 번의 유레카로 탁 깨우치지는 못했네요. 연속성 없이 주어지는 글감의 주제와 주제 사이 그다음 주제쯤의 사이에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뿐이에요.

인생에서 한 번도 제대로 헤어져 본 적이 없는 저에게 헤어짐은 모두 뜻밖의 점주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의 처음만 생생하고 마무리는 너무 큰 에피소드로 마감하다 보니 감정은 대부분 흐릿하게 된다는 점.

이것 역시 사주와 만세력 핑계를 댈 수밖에 없는 건, 유독 비슷한 끝이 기본값이라서겠죠? 그럼 이런 시작과 끝은 다 제가 겸허히 감수해야 할 출생 시간의 분과 초에 끼인 살과 운의 탓인 걸까요.



특히 작년의 그 점쟁이는 분명히 올해쯤부터 성격이 바뀔 거라고 했어요. 당시엔 코웃음을 쳤지만 저주인지 덕담인지 모를 그 말처럼 정말 제 성격의 축이 바뀌고 있어요. 세상 모든 게 바뀌어도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짙은 소유욕도 내려놓고 있을 정도니까요.

가지지 못한 것들, 가지지 못할 것들을 이제는 놓아주고 헤어지는 연습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는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왜 만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냐고 엥? 싫은데? 하지 않을게요. 오래전 부처님도 말씀하신 그 회자정리를 거스르려고 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살게요.

어떤 만남에도 항상 끝은 나기 마련인데 저의 끝은 유독 끝인사가 없었지요. 그건 차마 운이 없었다는 말로만 설명하지 못할 상황과 관계의 덫 때문인 것도 인정하겠습니다.



모두가 같은 일로 행복하고 모두가 비슷하게 힘들 수는 없듯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들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 날 찌그러져 있더라도 네 잎인 크로버를 발견하기를 바랄게요. 혜자종니인지 해자적니인지 헷갈릴만큼 비틀려있더라도 우선은 가져가 곱게 펴서 간직할게요. 어느날 갑자기 아름다운 끝을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까지는 좀 찌그러진 회자정리를 하면서 가끔은 남몰래 거자필반도 기원해보겠습니다.





26.3.20 글쓰기 모임 주제
[ 시간은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무엇이 달라졌는지. ]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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