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 남편 덕분
설 연휴 마지막 날,
이제 아빠랑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는 아이를 두고 친구를 만나고 왔다. 전시 기획자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내 친구는 원래 직장 동료로 처음 만났지만 이제 더없이 소중한 친구이자 ‘나만의 그림 소개자’가 되었다. 혼자서는 절대 찾아다니지 않을 전시나 갤러리도 이 친구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다닐 정도.
내가 수집한 네 점의 작품도 모두 이 친구가 기획한 전시에서 구매한 것들이다. 우리 집 곳곳에 잘 스며들어 볼 때마다 내게 큰 기쁨을 주고 있는 그림들. 오늘은 도심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평창동에 위치한 가나아트센터에 다녀왔다. 이희조 작가님과 전광영 작가님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곳.
이희조 작가님의 작품은 2022년 친구가 기획한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물을 아기자기하게 표현해 내는 방식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자신만의 직선과 곡선을 이용해 과하지 않은 색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도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에 고민 없이 아래 작품을 세트로 데려왔다.
이번 전시는 아기자기함에서 벗어난 작가님의 색다른 면을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무표정의 사람과 동물이 등장하는 방식도 특색 있게 다가왔다. 어떤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드냐는 친구의 물음에 빨간 벽에 걸린 작품들을 골랐더니 친구가 예쁜 사진도 한 장 남겨줬다.
전시장에서는 분명 위의 세 점이 인상 깊다 생각했는데 내가 찍어온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다른 감정이 올라오기도 한다.
여전히 정물에 더 끌리기는 것 같기도 하고, 성별이나 나이대를 가늠하기 어려우면서도 귀여운 손 그림에 갑자기 감동이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다른 전시를 보러 가는 친구를 압구정에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니 6시.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춰 잘 돌아왔다. 아이에게 오뎅탕을 끓여주고, 우리는 마라탕을 먹으며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
“클수록 말을 안 듣는 것은?”
남편이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런 문제를 냈더니 아이가 “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한동안 내게만 붙어있고 싶어 하는 아이와 밤낮을 함께하면서 180도로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는 게 힘든 적도 많았는데, “나는 엄마 자격이 있는 걸까” 싶어 자책하게 되는 날도 있었는데, 이제 내가 없어도 행복하고 즐겁게 잘 노는 아이를 보며 지난날의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일하는 엄마의 휴일 외출 죄책감까지도 모두 내려놓는다.
어제는 아이랑 같이 저녁 9시 반쯤 잠들었는데 일어나니 12시 반이다. 더 자고 싶었지만 다시 쉬이 잠들 수 없는 새벽. 이 새벽에 온전한 정신으로 깰 수 있을 만큼 심신이 충전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망설임 없이 일어났다.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새벽 시간이 더없이 평온하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준 내 친구, 아이와 잘 있어준 남편 덕분에 감사했던 하루. 내 남편, 199만 원짜리 패딩도 사준다 그러고 이제 육아도 잘하고, 100점 짜리 남편이자 아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