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기대하고 실망도 한다
요즘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많아졌다. 이래저래 회사에 실망하고 불만도 생기던 찰나, 친한 동료 직원의 말이 뼈를 때리는 말로 들렸기 때문.
회사를 사랑해서 그래요
그녀의 말인즉슨, 회사를 사랑해서 기대도 하고 실망도 하는 거라고. 열정이 없으면 애정도 없어서 기대 자체를 안 하게 된다고. 그래서 실망이나 미움도 없다고.
결국 애증의 애와 증은 깊이가 같은 거라고.
너무 와닿는 말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거지?
기대와 실망의 크기는 비례하는 거니까 기대를 하지 말자, 아예 정을 주지 말자 생각하며 아무도 볼 수 없게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꽁꽁 숨겨두었던 “사랑”의 감정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실체도 없는 무엇인가를 나 혼자 아끼다가 상처만 받을까 봐 걱정했던 내면의 두려움 역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라도 회사를 맘껏 사랑하자! 열받을 땐 욕하고 싫어하기도 하자! 굳이 소중한 사람들에게까지 회사를 향한 애증의 감정을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순간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하기 싫은 맘으로 기대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던 순간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혹은 누구를 위한답시고 “애”의 감정을 내면에 꽁꽁 숨겨뒀던 걸까? 왜 사랑의 마음을 ”증”으로만 표출하려고 했을까?
어제는 화이트데이.
남편이 퇴근길에 아무것도 안 사 오면 실망했다고 잘 얘기해야지. 결국 사랑과 기대, 실망의 감정 역시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현아, 오늘은 화이트데이야“
“그게 뭔데?”
“남자가 여자한테 초콜릿 주는 날. 근데 아빠가 아무것도 안 사 오면 어떡하지?”
“음... 아빠 쫓아낼까?” (내가 가끔씩 하는 말. 뜨끔...)
“ㅋㅋㅋㅋㅋ 그럼 아빠 어디서 자지?“
“어... 그럼 아빠 잠 못 자게 계속 괴롭힐까?”
“ㅋㅋㅋㅋㅋㅋㅋㅋ” (기발한데?)
결국 남편은 아이의 초콜릿과 내 초콜릿을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나 섭섭해, 혹은 실망했어, 대신에 “고마워”라는 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현이가 아빠가 아무 것도 안 사오면 쫒아내자고 했어 ㅋㅋ”
“현이 진짜 그랬어? 아빠 쫓아낼라고 했어?”
“아니야. 엄마가 그랬어”
“엄마가 언제! 너가 그랬잖아!!!” ㅋㅋㅋㅋㅋ
“화이트데이니까 치킨이라도 먹을까?” (나)
“오늘은 치킨 안땡기는데....” (남편)
금욜이고 화이트데이니까 아이가 잠들면 남편이랑 같이 맥주라도 한 잔 할까 했지만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재우다 9시쯤 내가 먼저 잠들어버렸다.
내가 다니는 회사, 가족, 나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좋은 사람들 모두를 귀하게 여기며 애증의 감정도 잘 표현하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