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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보물

일기장

by 프로성장러 김양

“돌아가시기 두 달 전부터 우리 엄마가 더는 우리 엄마가 아니었어”


얼마 전 친한 언니의 모친상으로 장례식장에 갔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나 역시 이 말의 참뜻을 실감하고 있다. 병상에 누워계신 아빠는 정말이지 내가 알던 아빠의 모습이 아니다.


100세 시대니까, 우리 아빠는 건강 관리도 잘하셨으니까, 당연히 앞으로 20년, 아무리 짧아도 10년은 더 건강하게 사실 거라 믿었는데. 인생사는 정말 어찌 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텅 빈 부모님 댁에 들어오는 것이 낯설고 가슴이 먹먹하다. 아빠가 여전히 탁자에 앉아 돋보기안경을 쓰고 일기를 쓰고 계실 것만 같다. 대체 그놈의 일기가 뭐라고. 내가 와도, 손녀가 와도, 인사도 제대로 안 해주고 붙들고 있었던 건지.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았는데 이젠 그 모습까지도 그리운 한 장면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은 마주할 수 없는 모습이니까.


토욜에는 아빠에게 잔잔한 책을 읽어드렸는데 일욜엔 아빠의 일기장을 가져와 읽어드렸다.


“아빠 내 얘기 듣고 있어요? 이건 아빠 일기장이야”


아빠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빠 울지 마..... 아니, 울어도 돼.... 울고 싶으면 맘껏 울어요. 나도 그러는데 뭐.....“


아빠의 눈꺼풀이 다시 무겁게 감긴다. 이제 아빠는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든 것 같다. 토요일에는 내가 병원을 나오면서 눈물을 쏟아냈는데 일욜에는 엄마가 눈물을 닦아내며 힘들어하신다. 이제 우리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목이 멘다. 힘겨워하는 아빠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머나먼 곳으로 달아났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아이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에너지가 남아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잠들기 전 내 옆에 누워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모든 슬픔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매일 저녁 10시쯤 잠들고 새벽녘에 눈이 떠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오늘은 아빠가 내게 써줬던 편지와 아빠의 병환이 깊어지기 전에 같이 썼던 교환일기를 읽으며 우리가 글로 함께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려본다.


“이제 아빠 생각나면 울다 웃다 하겠지. 아직은 실감이 안 나는 것 같아“


얼마 전 갑자기 부친상을 당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여전히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 흘리는 날이 더 많은데,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웃는 날이 조금씩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건강했던 모습, 아픈 와중에도 힘겹게 눈을 뜨고 내 이름을 불러주던 모습,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던 편지 속 글씨까지. 하나하나 떠올리다 보면 분명 웃음 지을 날도 오겠지.


“엄마, 나 휴직할 수 있는지 한 번 알아볼까?“

“왜? 아빠 때문이면 그러지 마. 네가 휴직한다고 아빠를 돌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가? 차라리 정신없이 바쁜 게 나은 걸까? “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일일까, 휴식일까, 시간일까? 일도 좋지만 엄마와 함께 매일 아빠를 보러 가고 싶기도 하다. 힘들고 지쳐가는 마음도 어떻게든 달래고 싶다.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휴직이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고.


아빠가 2013년 내 생일에 써줬던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남녀 구분 없이 자기의 능력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는 세상에서 마음껏 기개를 펼치기 바란다”


아빠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주길 바라겠지만 내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다. 그래도 아빠가 어디서든 지켜보고 있다고 믿으며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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