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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옥

최고의 힐링 장소

by 프로성장러 김양


아빠의 병환은 날로 깊어져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 슬프다. 주말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러 가서 괜찮은지 말을 건네고, 책을 읽어드려야지, 그렇게라도 아빠한테 위로가 되어 드려야지, 생각하지만 아빠의 지금 모습이 너무 낯설게 다가온다.


회사에서는 가끔씩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업무가 예고 없이 들이닥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있고, 돌봐야 하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적어도 내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생사에 기로에 서있는 아빠의 모습이 가물가물 해지기도 하니까.


나는 요즘 거의 매일같이 길을 잃고 갈팡질팡 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거대한 일을 쳐낸 뒤 번아웃이 온 것 같기도 하고, 아픈 아빠를 마주하는 것이 가슴 찢어지게 아픈데 그 슬픔을 발산할 방법을 찾지 못해 힘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남편이 내게 준 자유시간을 줘서 1도 고민하지 않고 나만의 힐링 장소를 찾았다.


누구에게나 힐링 장소가 하나쯤은 있겠지? 내게도 그렇듯이. 나의 영순위 힐링 장소는 조용한 우리 집이고, 두 번째 힐링 장소는 "책가옥"이다. 우연히 알게 된 책가옥은 웹에 소개된 것처럼 깊은 커피 풍미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곳이다. 커피 향은 단연 일품이고, 높은 천장과 나무 탁자들이 내부 인테리어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마음의 쉼을 보장해 준다. 한때 가수였던 사장님께서 직접 선곡한 조용한 음악이 전체적으로 은은한 조명과 어우러져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있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oo 씨, 반가워요. 또 오셨네요"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지만 특이하게도 손님을 최대한 많이 받지 않는 곳이라 사장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신다.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여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정말 그렇다. 내게 자유시간이 생길 때마다 제일 먼저 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고 예약하는 곳이다. 요즘처럼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졌을 때에는 더더욱 간절하게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이고 고마워요. 편한 곳에 앉으세요. 저기 넓은 테이블에 앉으셔도 되고요"


오늘은 약간 어두운 곳에 앉아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스탠드를 가져다 내 노트 앞에 놓아주시는 사장님의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커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책가옥에 올 때마다 사장님께서 내려주시는 커피가 다 마음에 든다. 향도 좋지만 정성과 진심이 담긴 느낌이라 더 좋다. 이곳을 떠날 때마다 커피콩도 꼭 하나씩 사가는데 집에서 내려 마실 때에도 사장님의 정성과 진심이 그대로 전해진다.




브런치에 올릴 글을 열심히 써내려 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아빠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어서?

아빠의 지금 모습이 더 이상은 내 아빠 같지 않아서?

아빠와 살갑게 지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아쉬워서?

아빠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나는 내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어서?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한데 섞여 커다란 눈뭉치처럼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놓아 버림>에서는 어떤 감정도 판단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나 역시 갑자기 들이닥쳐 눈물이 되어 나오려는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본다.


괜찮아, 울어도 돼.

우는 건 창피한 게 아니야.

슬픔이 겹겹이 쌓여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지 않도록 슬플 땐 울고, 기쁠 땐 웃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또 그렇게 잘 살아내 보자!


나에게 이렇게 힐링이 되어주는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하루.



내가 자리에 앉아 너무 흐느껴 울었나? 사장님께서 디카페인이라며 커피를 한 잔 더 가져다주신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장소를 만들어 주셔서. 따뜻한 커피로 조용한 위로까지 건네주셔서:)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타인에게 위로가 되는 장소를 만들어 보고 싶다. 이런 곳에서 독서 모임도 해보고 싶고, <파리의 심리학 카페>를 모토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보고 싶기도 하고.


“별일 없죠? 별일 없을 거예요!”


내가 자리에 앉아 너무 대차게 울었는지 커피콩을 사서 나가려는 내게 사장님이 건네주신 따뜻한 말 한마디. 갑자기 또 울컷해서 눈물이 찔끔. 역시 사람, 장소, 커피,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책가옥이다. 다음에 또 와야지. 힘들 때도 오고 기쁠 때도 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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