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 나지 않는 첫날
언니가 한국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아빠의 장례 일정을 하루 연기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첫날, 조문객을 맞이하지 않는다면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엄마와 단 둘이 부모님 댁에 머무르며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부고를 전하고, 전화를 받고,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조용하게 위로했다. 홀로 아빠의 임종을 지키신 엄마는 마음이 지쳐있었고, 나 역시 시체가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난 아빠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아빠가 영안실에 안치될 때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에겐 짧더라도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차분하게 앉아서 사람들한테 연락하고, 우리끼리 대화도 나누고, 진정도 좀 하고, 바로 조문객을 맞으면 정신이 없었을 텐데 이런 시간을 가지니까 좋네“
나 역시 엄마와 같은 생각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11시 전에 잠들었고, 5시쯤 일어나 천천히 준비를 마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엄마랑 남편과 함께 9시도 되기 전에 도착한 장례식장. 아침도 잘 챙겨 먹고,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초본도 발급하고, 커피까지 마시며 장례식장이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곧이어 아빠의 영정 사진이 장례식장 화면에 뜨고, 준비된 자리에 액자가 놓였다. 영정 사진을 바라보면서도 아빠의 죽음이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
여기서 도망치고 싶어.
내가 사라지면,
조문객을 받지 않으면,
내가 아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빠가 다시 살아 나서 성큼성큼 내게로 걸어올지도 몰라.
나, 도망갈까??
어떤 사실도 변한 게 없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다시는 살아 숨 쉴 수 없다. 나는 어느새 상복을 입고 아빠의 영정 사진 옆에 서서 조문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친한 사람들이 조문을 오면 한참 동안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1년 반 전부터 흑색종 암으로 힘들어하셨어요.
마지막 두 달 동안 요양병원에 계셨는데 그래도 오랫동안 고생하지 않고 가셔서 다행이에요.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니까요.
100세 시대에 우리 아버진 아직 젊은 나이인데 억울하기도 하네요.
그래도 딸들 잘 컸고, 손자, 손녀도 보셨고,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었겠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의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길 바랬고, 방문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전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무슨 말을 어떻게 떠들어댔는지 조차 모르겠다.
상주와의 맞절은 선택 사항이 되어가고 있다고 해서 무릎을 꿇고 인사하려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다가가 손을 잡고 포옹을 건네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항아리에서 국화를 꺼내 옆에 내려놓는가 하면, 내려진 국화를 항아리에 다시 꽂는 조문객도 있었다. 꽃 대신 향을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아빠에게 이별을 고하는 동안 나도 아빠의 웃음 가득한 영정 사진을 보며 아빠가 편안하게 잠들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엄마, 천국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사후 세상도?“
“아는 사람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는데 죽으면 끝 이래, 그냥 아무것도 없대”
그래,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걸 바라고 싶다. 아빠의 영혼이 남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면 우리 아빠, 지금 우리를 지켜보는 게 속상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 아빠 가족은 그야말로 장수 집안이었다. 할머니가 100세까지 사셨고, 큰 고모도 80대 중반을 넘기셨다. 작은 고모님과 큰아빠 두 분도 아직 살아계신데 막내인 우리 아빠가 세상을 등지고 떠났다니!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우리 아빠는 당연히 90세를 훌쩍 넘겨 100세까지 이 세상에 존재해 주실 거라 찰떡같이 믿고 있었다.
“우리 아빠 착하고 성실하게 산 죄밖에 없는데, 나쁜 인간들은 90세, 100세까지 주구장창 잘만 살던데...... 우리도 착하게 말고 나쁘게 삽시다.....!!!“
오래간만에 만난 사촌언니를 부등켜 안고 괜한 심술을 부려본다.
“우리 아빠가 너무 불쌍해.....”
할머니, 고모, 큰아빠 등쌀과 가스라이팅에 힘겨웠을 아빠의 삶이 억울하고 분하게 느껴진다. 우리 아빠만 화병이 나서 80세도 못 넘기고 시체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와중에 과분한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에게도 너무 고맙고. 부친상 중에도 중간 중간 웃음 모멘트가 있었다는 사실도 감사하고. 그래, 영원한 슬픔은 없다. 하루종일 울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언니와 형부는 형부의 부모님 댁으로 가고, 삼촌들과 엄마는 부모님 댁으로 가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나는 남편과 단둘이 아빠의 장례식장에 남아 맥주를 홀짝 거리며 오늘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아빠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의 첫 날이 저물어간다.
아빠, 벌써부터 보고 싶어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내일은 또 어쩌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