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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행복 일기 121일째

by 프로성장러 김양

2024년 12월 27일에 시작한 "365일 행복 키워드" 브런치 연재북,


태국 카오락에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 푹 빠져 지내며 행복한 마음으로 연재북을 열었다. 매일 일기를 쓰듯, 감사하고 행복한 일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기 때문. 처음에는 내게 들어오는 부정적 감정을 무조건 밀어내려 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행복을 가로막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불행했던 시간들을 죄다 모르는 척하고 감사했던 부분만 선택적으로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놓아 버림>에서 이야기하는 억압된 감정의 폭발 시기가 온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서 어떤 감정을 느껴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내게 들어오는 모든 감정을 판단하거나 어떻게 하려는 바람 없이 감정 스스로 제 갈 길을 가도록 놓아두라는 <놓아 버림>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매일 인지하고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가 죽음의 문턱에 서서 사경을 헤매시는 가운데 시도 때도 없이 슬픈 감정이 문을 두드렸다.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고 나오면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눈물이 흘렀다. 착하고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 우리 아빠인데, 왜 이렇게 나쁜 병이 찾아와서 아빠의 마지막이 이토록 고생스러우신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동안 내 인생에 함께 해 준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슬픔과 고통, 감사가 동시에 손을 잡고 왔다가 서로에게 짜증을 내며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4월 20일에는 남편, 아이와 함께 아빠를 보러 갔다. 눈도 잘 뜨지 못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내 아이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엄마의 말이 슬프면서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걸까? 언니가 25일에 오기로 했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버거우셨는지, 아빠는 23일 아침,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누군가 그랬다. 부모도 자기가 좋아하는 자식에게는 임종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한다고. 그래서 나도, 언니도 아빠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걸까? 그저 편하게 가셨다는, 평온한 얼굴로 숨을 쉬지 않았다는 엄마의 말만 전해 들었다. 이 모든 것을 혼자 이겨냈을 엄마 곁에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사실도 미안하고, 우리 아빠도 너무 불쌍하고. 그동안에도 많이 울었지만 아빠의 임종 소식을 전해 듣고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충격과 슬픔과 미안함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해 버렸다.


"엄마, 같이 못 있어줘서 미안해. 내가 지금 병원으로 갈게"

"아니야, 장례식장으로 가 있어. 거기서 만나자. 아빠랑 그리로 갈게.........."


엄마가 아빠랑 같이 아빠의 장례식장으로 온다니. 준비가 되어있다 생각했는데 이런 일에 준비나 대비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태풍이나 폭풍우 같은 거구나. 알고 있었다고 해도 괜찮을 수 없는. 온다는 걸 알아도 막을 수조차 없는.




장례 기간 내내 매일 저녁 잠들기 전 아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브런치에 글을 썼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고, 아빠를 잘 보내드리고 싶기도 했다. 아버지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던 날, "365일 행복 키워드 4"의 연재도 끝이 났다. 이 상황에 행복 일기를 계속 이어가는 게 맞는 걸까? 싶으면서도 처음에 계획했던 365일은 이어가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늘 행복할 순 없어도, 문득문득 불행이나 슬픔이 찾아와도 그 감정이나 시간들 역시 내가 인지하고 알아차려야 하는 부분이니까.


그래도 우리 아빠 오래 아프지 않고 가서 다행이야.

마지막에 병원에서 힘들었던 기간도 두 달뿐이잖아.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아직까지는 아빠를 떠올리면 눈물 나는 날이 더 많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좋았던 것만 추억하며 웃는 날도 올 거라 믿는다.



아빠, 안녕, 잘 가. 아빠가 나 브런치 작가 됐다고 엄청 좋아했는데... 아빠 생각하며 계속해서 열심히 글을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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