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랬어
“고생만 하다 떠난 아빠가 불쌍해.....”
“맞아..... 근데 아빠가 나 직장에서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하는데 니가 뭐가 힘드냐고 했을 땐 정말 미웠어”
“나도 그랬는데 우린 그냥 살아온 시대가 달랐던 거야. 아빤 가족에게 공감받은 적이 없어서 공감할 줄도 몰랐던 거고“
“맞아.....“
“이제 와서 미워하고 원망하면 뭐 해. 이렇게 가버렸는데....“
“짜증나”
“이게 다 애도의 과정이겠지.... 웃고 울다, 짜증도 냈다, 괜찮았다 하는거.....“
“그래.......”
“엄마한테 더 잘해야겠단 생각도 들고, 아빠가 살아 돌아와도 잘해드릴 거 아니면서 이러는 것도 짜증 나고. 그냥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생각해 보니 아빠가 의미 있는 삶의 교훈을 주고 가셨어“
“진짜 그러네.....”
아빠를 떠올리면 지금 나와 가장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언니가 곁에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의 애도 과정을 통해 아빠에게 느꼈던 원망이나 미움의 감정을 서서히 내려놓는다. 안타까움, 슬픔, 아련함 같은 감정은 꽤 오래가겠지만 미웠던 마음은 제일 먼저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이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온전하게 “사랑”의 감정만 남는 날도 오겠지.
“나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가족들끼리 가는 여행도 대부분 거절하고, 여행 가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던 아빠 모습이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이 나의 ‘아빠상’이 되기도 했지만. 아빠의 투병 기간 중에 가족끼리 어울리는걸 왜 그렇게 거부했는지 물었더니 아빠가 그랬다. ‘그러게, 나는 뭘 위해 그렇게 살았을까’라고.... 아빠의 눈에 후회와 설움이 가득한 게 느껴져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는데..... 그 모습도 자꾸 아련하게 떠오른다.
아빠와 함께한 40년 넘는 세월이 마치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80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우리 아빠 역시 비슷한 감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90세가 되어도, 100세가 넘어도 죽기 전에는 삶이 정말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니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소중한 가족을 가장 잘 챙겨야 할 것 같다. 나는 뭘 위해 그렇게 살았을까? 가 아니라 그래도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사랑 베풀며 잘 살다가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