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입장
"아빠! 나 신부 입장은 혼자 할게. 딸 가진 아빠가 남편에게 딸을 넘겨준다는 의미는 너무 구시대적이지 않아?”
결혼식을 앞두고 아빠한테 혼자서 신부 입장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왜 신부만 아빠랑 입장해? 그럼 신랑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입장하고, 나도 엄마, 아빠랑 같이 입장할래!”
이게 좀 더 합리적 대안 같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혼자 입장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신랑처럼 당당하게 나도 나의 새로운 인생을 직접, 혼자서, 주체적으로 오로지 신랑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전통이 중요한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구린 답습이라 해도 건너뛰는 것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나는 결국 관례를 따르고자 하는 아빠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피 터지게 내 주장을 펼치고 서로 큰소리를 내다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단계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포기가 됐다. 다른 것도 신경 쓸게 많았으니까 이런 건 그냥 넘어가자는 귀찮은 심리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결혼식을 앞두고 아빠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내 생각을 접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를 추억할 수 있는 예쁜 사진 한 장이 남았으니까.
그런데 아빠는 왜 안 웃었을까?
아빠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무표정. 아빠의 무표정은 삶의 고난이었을 수도 있고, 그저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 대한 감사였을 수도 있다. 이제 평생 그 답을 듣지 못하겠구나. 우리는 왜 이런 사소한 대화도 자주 나누지 못했을까?
“아빠가 웃으면 나의 온 세계가 행복해져”
아빠의 웃음은 희소했고 그래서 가치가 있었다. 내가 제일 오래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정 사진은 아빠의 활짝 웃는 모습을 선택했다. 너무 웃는 모습이라 더 슬퍼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 이후의 삶은 잘 모르지만 천국이 있다면 아빠가 그곳에서 부디 매일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다. 어떤 걱정이나 후회, 원망도 없이. 한 세상 잘 살다 왔구나 하는 이야기도 하면서, 자식들도 잘 크고, 손자, 손녀까지 보고, 라고 기쁜 것들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