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휴가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5일의 경조사 휴가를 준다. 이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데 직접 겪고 나니 이 휴가 기간이 어이없을 정도로 짧게 느껴진다. 장례를 치른 뒤 마음을 정리하고, 각종 행정 업무까지 처리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실려가던 날에도, 사경을 헤매면서 죽음의 문턱의 서 계신 와중에도 나는 마음을 졸여가며 보고서를 끝내고자 했다.
아빠를 더 자주 보러 갔어야 했는데....
힘든 엄마 옆에 좀 더 오래 있어드려야 했는데....
지난 두 달은 보고서나 회사 일보다 가족을 더 많이 챙겼어야 했는데....
갑자기 짜증이 나고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형을 잃고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숨어 버린 남자, 패트릭 브링리 작가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책 내용 일부가 떠오른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지금의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구절. 나 역시 지금 당장은 아무렇지 않게 회사로 돌아가 내가 일하던 그 책상에 앉아 예전처럼 업무에 집중할 자신이 없다. 아직까진 내 마음이 그렇다. 그래서 부모상 휴가 이후 무작정 연차를 냈다. 내 마음이 다시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연차나 병가를 내서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력의 빨간 날짜를 보고 있으니 경조사 휴가, 연차와 공휴일까지 더하면 보름 가까이 쉴 수 있는 연휴가 이어졌다. 이 연휴는 아빠가 주고 떠난 선물일까?
“아빠, 나.....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는 계속 쉬고 싶어요“
“쉬면 뭐 하게? 그냥 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빠는 아프거나 힘들면 그걸 잊으려고 더 열심히 일했는데 요즘 애들은 복에 겨워서 참......“
아빠의 잔소리가 귀에 맴도는 것 같다.
현실로 돌아오니 조카들과 내 딸이 직접 골라 포장한 요아정 아이스크림 통과 봉지를 하나씩 들고 언니와 나를 앞서 걸어간다.
“아빠가 저 모습을 봤으면 쓰레기 많이 나온다고 싫어했을텐데.....“
“그랬겠네.....“
언니와 나는 그렇게 듣기 싫어하던 아빠의 잔소리까지도 그리워하며 아빠를 추억한다. 이 시간들이 무사히 잘 지나가면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빠, 이 휴가가 얼마나 길어질까요? 나는 언제쯤 아빠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