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과 미국적인 것의 조화로운 삶
채플힐을 제2의 고향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미국에서의 삶도 하루하루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대부분 한국적인 것에서 위안을 받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위로를 받는 삶이었지만 힘들다고 불평하는 삶이 아닌 좀 더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죠.
이전에는 보이기만 하고 잘 느껴지지 않았던 따스한 날씨와 교정을 거니는 학생들의 생기 있는 모습, 같은 과 친구들과 건물이나 학교 안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나누는 인사와 포옹까지, 모두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면서 제 마음속에도 따뜻한 씨앗이 뿌려져 싹이 트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 마음에 계속 물을 주고 가꾸면 언젠가는 꽃도 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샘솟기 시작했고요.
Student Store에 가면 번역이 낯설긴 했지만 한국적인 모습이 보였습니다. UNC는 학교의 애칭(?)으로 Tar Heels를 사용하거든요. 구내에서 각종 학용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파일 커버에서 눈에 띈 한글이 반가워 사진으로 남겨두었어요.
교내 카페테리아에서 비빔밥을 팔고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으로 다가왔죠. 캠퍼스 건너편에 생긴 한국 식당에서는 다양한 한국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특히 돌솥비빔밥을 먹으면 그렇게 힘이 났어요. 울적하거나 외로운 생각이 밀려와 괴로워질 때면 캠퍼스를 벗어나 한국 식당에 들러 돌솥비빔밥을 먹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지요.
채플힐은 아니었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더램 지역에는 김치찌개를 파는 한국 식당도 있고, 롤리까지 가면 맛있는 짬뽕을 파는 곳도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먹고 싶을 때 당연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들을 저만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놓고, 생각이 날 때마다 찾아가는 소울 푸드가 되었습니다.
일교차가 심한 도시라 매일 아침마다 앱으로 그날의 날씨와 온도를 확인했는데 한국의 날씨와 비슷한 날엔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기분이 들어 위안이 되기도 했어요. 여름은 유난히 뜨겁고, 겨울은 0도 이하로 잘 떨어지지 않는 따뜻한 동네였지만 봄, 가을에는 한국의 날씨와 비슷한 날이 많았거든요.
늘 한국적인 것만 쫓아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옆집에는 제가 유학생이라고 다정하게 챙겨주는 할머니가 살고 계셨는데 틈이 날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챙겨주시고, 특별한 날엔 작은 선물과 편지도 주셨어요. 어느 날엔 돼지 안심 고기를 요리해 주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조리법을 배우고, 한동안 오븐으로 이 요리만 해 먹었답니다. (한 번 마음에 들면 질릴 때까지 먹는 스타일 ㅋ)
1년을 함께 보낸 같은 과 친구들, 새롭게 시작한 종교 활동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도 가깝게 지내며 그동안 몰라서 가보지 못했던 식당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특히 멕시칸 요리가 입에 잘 맞아서 치폴레에 자주 갔고, 쌀국수 가게도 즐겨 찾았습니다. 샌드위치나 버거는 서브웨이나 맥도날드에서 먹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지만 캠퍼스만 벗어나면 다양한 햄버거와 샌드위치 가게가 있어 즐길 수 있는 음식의 폭도 넓어졌어요.
감정적인 결핍이나 외로움을 먹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듯 몸무게도 쭉쭉 늘어만 갔습니다.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 늘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했었는데 말이죠.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것이 건강하지 않은 습관인걸 알면서도 첫 학기 때는 적응이 어려워 몸무게가 5킬로그램 가까이 빠졌는데 그때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실이 말이죠.
그래서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얻은 몸무게라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