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기빙에도 과제
3학기 때는 공공정책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연구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주택정책이 공공정책과 맞물려있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첫 발표를 잘 마치고, 발표 내용을 글로 잘 정리했다고 생각한 페이퍼를 제출했는데
교수님의 잔인한 피드백이 돌아왔어요.
"너의 글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라이팅 센터의 도움을 받아 다시 제출하는 게 어때? 발표 내용을 잘 들었는데 그 내용이 페이퍼에는 제대로 담기지 않은 것 같은데?"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보낸 시간도 1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페이퍼를 작성하며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기에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만족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나 수치스러운 피드백을 받다니!
이 날은 인생 최악의 날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발을 디딘 이후로 끔찍한 날을 수없이 반복해 겪었지만 이렇게까지 수치스러웠던 적은 없었어요. 마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는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처럼 나 자신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거든요.
교수님의 의도가 어떠했든, 100% 좋은 의도였다는 것을 확신하더라도, 그저 제게는 예상치 못했던 평가였을 뿐이었죠.
그 교수님은 제 발표에 굉장히 후한 점수를 주셨고, 주제에도 큰 관심을 보이셨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이런 피드백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이곳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였음을 깨닫게 되는 자괴감,
내가 여태까지 쌓아온 지식마저도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감,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저 자신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어요.
얼마큼 더 견뎌야 하는지,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알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고,
어쩌면 평생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 끝을 보고 나면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게 더욱 분명해질 것만 같아서요.
"이 정도 왔으면 많이 온 거야, 나 잘하고 있어!"
생각하고 뒤돌아보면 왜 늘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 있는 기분이 드는 걸까?
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나는 어디까지 어떻게 가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결국 한순간에 멘붕이 찾아왔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학교에 가고,
또 과제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야 하는 삶을 이어갔습니다.
라이팅 센터의 도움을 받아도 내 글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교수님은 결국 본인의 RA를 저의 전담 에디터로 소개해 주셨어요.
"학생 한 명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준다고?"
그즈음 저를 염려하고 배려해 주는 교수님의 진심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과 컴퓨터실에 쳐 박혀 교정받은 페이퍼를 읽고, 쓰고, 고치고, 다시 읽고를 반복했어요. 글씨가 머릿속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 GIS 과제로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수십 번 반복했죠.
무수한 날들을 떠오르는 해와 함께 마감했습니다.
이 위기도 잘 극복하고 멘탈도 회복하고 싶었거든요.
땡스기빙 연휴 내내 종요해서 적막하기까지한 컴퓨터실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친구들의 따뜻한 초대도 모두 거절했어요.
어느 순간 라이팅으로 끝을 본 기분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이제 어떤 비난과 질책을 받아도 어쩔 수 없을 거라는 느낌.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가봤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쾌감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제 집에 가서 자자”
그 시기부터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졸음이 밀려왔어요.
하루 온종일 잠만 잘 수 있을 것 같았죠.
충분히 휴식하고 잠도 잘 잤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간신히 수업을 듣고 집에 오면 또 잠이 오고, 자고 일어나서 몇 시간만 집중해도 또 잠이 오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기피하고 싶은 신체화 현상의 일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종 페이퍼를 제출하고 며칠 뒤 교수님이 자신의 오피스로 찾아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가능한 시간에 미팅을 하자고요.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을 잡고 교수님 오피스로 향했습니다.
땡스기빙도 반납하고, 휴일이고 뭐고 다 반납하고 라이팅에만 집중한 한 결과는?
한 학기 내내 라이팅으로 저를 울게 만들었던 교수님께 폭풍 칭찬을 받았어요.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방심했더니 지옥이 찾아왔고, 또다시 천국에 가까워진 3학기가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