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는 논문인가요?
드디어 1월, 대망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었어요.
첫 주 내내 어떻게 하면 마지막 학기를 쉽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여러 가지 잡일을 처리하고, 다가오는 논문 1차 발표까지 준비를 마치고 나니 바빠도 마음만은 즐거운 한 주였지요.
마지막 학기에는 뭔가 달라진 제 자신이 보여 흐뭇하기도 했고요.
대부분 첫 수업에서는 자기소개와 상세 전공 분야, 해당 수업을 통해 배우고 싶은 것들을 말하는데 저는 지난 3학기 내내 이 시간이 제일 고통스러웠거든요. 마지막 학기에는 자기소개가 별로 떨리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제겐 정말 큰 변화였지요.
자기소개 외에도 수업 준비를 위한 리딩과 수업 시간에 벌어지는 열띤 토론까지,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어요. 리딩은 예전과 비교해 봤을 때 잘 읽혔지만 수업시간에 원어민 친구들이나 교수님과 활발하게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논문을 잘 마무리하고 마지막 학기 수업도 잘 이수해서 졸업장을 받고 떠나는 것이 마지막 학기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학기에는 운 좋게 도서관에서 한국인 사서로 근무할 기회도 주어졌어요. 학비까지는 아니더라도 생활비는 벌 수 있을 정도였죠. 나름 도서관 내에 개인 오피스도 생기고 도서관의 직원 휴게소도 이용할 수 있어 학교에서의 활동 영역이 더 확대되었어요. 일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할 줄 알았지만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도 있었고요.
마지막 학기에 가장 중요한 일은 논문을 끝내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강도 높은 수업으로 구성된 학과라 논문은 Master’s Project로 명명하고 정형화된 논문의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제게는 큰 부담이었어요. 프로젝트 형식으로 제출할 수 있다 해도 주제를 정하고 50장 이상이 되는 분량의 페이퍼를 제출해야 했으니까요.
대체 Master’s Project가 뭔지에 대해 물어보고 이해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걸요. 지도교수님과 친구들이랑 한참을 이야기한 뒤에야 감이 오기 시작했을 정도로요.
간단하게 논문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내도 되는 것,
정형화된 방법론에 따라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분석해서 이를 증명하는 과정을 밟지 않아도 되는 것 정도였죠.
저는 한국의 전반적인 공공주택 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었지만 박사과정 중에 있던 한국인 언니가 제게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하라고 뼈 때리는 조언을 해주었어요. 이 조언은 정신 차리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너무 큰 주제, 끝내지 못할 것 같은 범위 설정을 할 때마다 그때 들었던 조언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 조언을 바로 받아들였습니다. 방향을 바꿔 제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정보도 얻기 쉬운 주제로 전환했어요. 제 목표는 무엇인지 겨우 감을 잡기 시작한 MP라는 것을 무조건 끝내고 학위를 받는 것이었으니까요.
“Evaluating HOPE VI”
저는 당시 미국의 주택정책 중 하나인 HOPE VI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었고, 정책의 평가방법이나 평가항목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해당 프로그램의 평가 방법을 논문 주제로 정했습니다.
논문을 집중해서 쓰려고 주말이나 수업이 없는 평일에는 30분 가까이 운전해서 학교 근처를 벗어났어요. 더램지역의 한인 식당이 있었는데 정말 심신의 위로가 되는 맛이었거든요. 힘든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한국 음식을 먹으며 위안을 받고 싶었습니다. 한인 식당에서 맛있는 김치찌개나 순두부찌개를 먹고 나면 그날은 충분한 에너지가 생겼어요. 곧바로 식당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면 몇 시간이고 논문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한국에서는 잘 마시지도 않던 커피였는데 미국에 있는 내내 하루에 한 잔 이상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스타벅스에서는 더 편한 마음이 들었어요. 마치 한국에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요. 한국에 널리고 널린 게 스타벅스라 더 그랬나 봐요.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스타벅스는 미국에도 많이 있었는데 학교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좋았습니다. 특히 논문에 집중해야 할 때에는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몇 시간씩 스타벅스에 있다 나오면 커피샤워를 한 것처럼 커피 향이 온몸과 머리에 가득했지만 기진맥진해서 씻지도 못하고 곧바로 쓰러져 잠든 날이 많았어요.
1월에 논문 주제를 겨우 정했는데 3월까지 끝내야 하는 매우 긴박한 상황이었거든요.
결국 어찌어찌해서 프로젝트 논문을 끝내기는 했습니다.
지도 교수님이 제가 쓴 내용을 상세하게 리뷰해 주셨고, 필요할 때마다 적당한 코멘트도 덧붙여 주셨거든요.
"이 논문은 내가 사인하면 영원히 기록으로 남게 될 텐데 원어민 친구에게 한 번 봐달라고 해서 최종 제출을 하는 게 어때?"
마지막에 남겨주신 이 한 마디조차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왜 이런 생각을 진작에 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였죠. 가까이 지내던 미국인 친구에게 제 논문을 한 번만 읽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친구가 수정해 준 파일을 읽고 또 읽으며 영어로 더 말이 되는 표현과 문법에 어긋나지 않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어 고마웠어요.
채플힐을 생각할 때마다 저의 논문이 존재하게 도와준 많은 사람들과 장소가 생각납니다. 특히 제가 주제를 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 박사 과정 중에 있던 한국인 선배 언니, 더램의 스타벅스와 한인 식당의 사장님, 제 논문을 지도해 준 교수님과 기꺼이 수정을 도와준 친구도요.
신기하게도 이 글을 작성하는 와중에 제 논문을 수정해준 친구가 한국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여한다고 한국에 왔어요. 제가 2014년 5월에 채플힐을 떠났으니까 10년만에 다시 만난 건데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이 친구와 10년만에 만난 것 같지 않고 너무 편하고 좋았어요. 친구는 2016년에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님이 되었는데요. 올해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직으로 승진했다고 하니 정말 기뻤습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어요. 제가 미국에서의 기억을 꺼낸 이 시점에 말이죠!
경복궁 앞에서 사진도 한 장 찍었습니다:)
신기하게 미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한국에서 한 번씩은 만났는데 이 친구만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