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미웠어

나도 그랬어

by 프로성장러 김양


아빠와 나는 서른 세 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마치 300년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장한 한국의 20년은 극변 하는 시대였다. 수출 부흥 정책으로 GDP가 말도 못 하게 상승했고, 매년 오르는 임금의 상승률과 예금이자 역시 10퍼센트가 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저금만 잘해도 내 집 장만과 자가용을 구매해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는 시기였다. 모두가 “성장 중독“에 빠져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큰 변화에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세상에서는 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지금도 괜찮은데 딱히 변화를 줘야 하나? 지금 일도 괜찮고, 지금 사는 동네도 괜찮은데? 생각하며 사는 게 일상이 된다. 4년제 대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어느 기업이든 들어가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시기였다. 내가 변화하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서 빠르게 변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변화까지 추구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변화까지 촉구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개인의 선택지가 나름 다양해진 시대가 열린 거다.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한국 사회는 농업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인재 우선, 국민 교육”이 정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고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해 설움 받던 부모들 가슴에 불을 지폈다.

“내 자식은 꼭 대학에 보내서 성공시키겠다”는 욕망과 바람이 부모들의 꿈과 목표가 되었다. 그 꿈은 한때 그저 대학이었지만 어느 순간 SKY로 눈이 높아지고, 하버드와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으로까지 관심사가 무수히 확장되었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었다.

좋은 직장을 갖고 있는 부모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내 자식이 나 정도의 삶은 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키고, 여유가 되면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자식의 성적표와 대학 간판이 자연스럽게 부모의 성취와 자랑거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 널 위한 거야”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부모들은 자식을 채찍질하기 위해 이런 말을 주로 사용했지만 사실 그건 부모의 결핍이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자식들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기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의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모두의 인식에 자식은 둘만 낳고, 꼭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렸다.


세상의 변화에 휩쓸려 갈팡질팡하면서도 정부 정책과 경제 상황에 맞춰 일과 자식 교육에만 올인했던 부모님 세대와 달리 나와 언니는 나름 선택지가 있는 삶을 살았다. 대학까지는 어쩌지 못해도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이어져도 나는 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갔다. 선택지가 있는 양갈래길에 섰을 때 늘 “새로운 도전”을 택했고, 아빠는 그런 나를 철부지로 생각했다.


“그 좋은 직장을 왜 때려쳐?“

“또?”

“휴.....”

“대체 그 정도로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 라떼는.....“

“서른에 무슨 유학이야?“

“시집이나 가!!!!”


당시에는 아빠 말이라면 다 무시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다른 시대를 산 아빠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자식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하는지, 어떡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아빠는 그런 것들을 배우기 힘든 시대를 지나왔다.


나는 한국 사회의 경제 부흥과 부모님의 성실한 경제 활동으로 당연하게 고등 교육을 받으면서,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한껏 부푼 마음도 가져볼 수 있는 삶을 살았다.

내 부모님은 부모나 큰형의 말이라면 법처럼 따라야 하는 시대를 살았지만 나는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았다. 과거처럼 그저 말 잘 듣는 자식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길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 게 맞는지 고민했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삶을 선택하며 살았다.


이런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한국이라는 장소에 1980년대라는 꽤 풍요로운 타이밍에 태어난 내가 누린 혜택이었다. 중산층을 윻지하고자 하는 성실한 맞벌이 가정에 태어나 얻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 시대를 지나면서 나와 언니는 “문화”라는 영역에도 곁눈질을 할 수 있었다. 언니는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을 다 좋아했고, 스포츠 경기 관람도 즐겼다. HOT, 젝스키스, SES, 핑클, GOD같은 국내 가수를 넘어서 X-Japan까지 좋아했다. 언니가 어둠의 루트로 비디오나 테이프를 구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 문물을 접하는 게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요즘 시대에는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내가 아빠를 고전 유물처럼 생각했듯이 이 말을 듣는 젊은 친구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나는 지금이나 어렸을 때나 미디어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스포츠 관람은 좋아했다. 언니가 경기장에 갈 때마다 따라다니면서 언니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했다. 농구, 배구, 축구, 야구 가릴 것 없이 모든 스포츠의 룰을 웬만큼 알게 된 건 다 언니 덕분이었다.




반면 아빠의 유년과 청년 시절은 절망과 포기로 가득했다. 식구가 많았고, 막내여서 많은 부분을 양보하고 희생하며 살았다. 아빠의 중장년 시기도 학습된 결과인지 많이 다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실패할지, 왜 하면 안 되는지를 설명했다.


“해보고 안되면 그때 포기하면 되잖아?”

“그럴 일을 왜 해?”

“하고 싶으니까.....”

“어차피 해도 안될 거라니까???!!!!“

“그걸 아빠가 어떻게 알아?”

“해봤으니까 알지?”

“이건 안 해봤잖아”

“다 해봤다고, 다 안다고! 해봐야 안 되는 거니까 제발 아빠 말 좀 들어라”


부모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던 아빠에게 나 같은 딸은 혁명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다. 어렸을 때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돈을 대 달라고 당연하게 요구했고, 직장에서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한 퇴사도 강행했다. 더 넓은 다른 세상이 궁금해서 서른에 대학원 유학도 다녀왔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가 진짜 철부지였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철부지처럼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하는 나이이기도 했다. 직접 경험해 보고 실패도 해봐야 교훈도 얻을 수 있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았고, 아빠는 다른 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꽤나 큰 심리적 거리감을 안겨줬다.


내가 맘대로 선택하며 살았던 경험과 인생 앞에 별다른 후회가 없는 건 부모님이 보장해 준 경제적 뒷받침이 큰 몫을 했다.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이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하다. 내가 누린 혜택과 선택의 자유에 다가서지 못했던 부모님, 특히 돌아가신 아빠한테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진다.


언니는 나보다 모범생이었고, 부모 말도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 첫 직장을 거의 20년 가까이 다녔고,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하소연해도 아빠에게 비난의 소리를 들었다.


“아빠가 미웠어”

아빠의 장례식을 치른 지 며칠 만에 언니가 이런 얘기를 했다.


“나 너무 힘들어서 직장 관두고 싶다 하는데 네가 뭐가 힘드냐고 했을 땐 아빠가 너무 미웠다고....”

“나도 그랬어”

“.......”

“근데 미워하면 뭐 해?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셨는데..... 이제 아빤 죽고 없는데.....”

“알아.....그래서 짜증나”

“나도 그래.....”


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

아빠는 떠났지만 우리는 아빠의 싫었던 부분까지도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를 기억하고 아쉬운 부분은 추억할 수 있을 만큼만 미워서 다행이다.

아빠의 죽음이 슬프고,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라 감사하다.

어떤 가족은 죽음 앞에서조차 서로 용서하기 힘든 죄를 짓고 살기도 하니까, 그 죄와 용서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그 무게가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짓눌렀을지, 그조차도 아는 나이가 됐으니까,

우리 사이가 그 정도는 아니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빠의 죽음 이후 아빠를 여느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하며 맘껏 슬퍼하고, 울고, 미워하고, 또 좋았던 것들을 추억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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