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쓴 교환일기

아빠의 꿈, 희망, 좌절과 포기, 그리고 인생

by 프로성장러 김양


2023년 10월, 아빠의 흑색종암 재발과 전이 소식을 들었다.

2017년, 왼쪽 발 뒤꿈치에서 처음 발견된 암덩어리는 당시 전이도 없어 수술로 말끔하게 제거가 되었더랬다.

흑색종암은 워낙 예후가 안 좋기로 유명한 암이었지만 아빠의 수술과 완치 소식을 들으며 우리 가족은 아빠의 장수를 더더욱 확신했다. 아빠는 80세를 넘어 90세, 100세까지도 건재하실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내 마음속에도 깊이 자리를 잡았다.


아빠는 곧바로 면역치료를 시작했다. 이때도 나는 이 치료제가 마치 마법의 약처럼 아빠의 암을 치유해 줄거라 믿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3년에서 5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 치료를 받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내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졌다. 아빠는 2024년 초부터 여름까지 뇌가 부어올랐다. 담당의는 아빠에게 뇌전증이라는 또 다른 진단을 내렸다. 뇌가 이렇게 부어오르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덧붙였다.


아빠는 평상시에는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다가도 불안해지면 선망 증상을 보였다. 우리 가족은 아빠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아빠에게 교환일기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아빠의 마지막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 놓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아빠가 남은 시간을 잘 정리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나랑 같이 글을 쓰다 보면 아빠가 더 살고 싶어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아빠에게 허락된 시간이 조금씩 연장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아빠는 평생 일기를 쓰셨고, 우리는 둘 다 말보다 글이 더 편한 사람들이었다. 말로는 표현이 서툴렀지만 글이라면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교환일기를 쓰면서 아빠와 심리적으로 서서히 가까워짐을 느꼈다. 아빠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졌고, 아빠의 꿈이 무너지고 절망과 포기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이 안타까워 눈물도 많이 흘렸다.


나는 아빠가 가정의 경제 사정 때문에, 혹은 막내라서 포기해야 했던 혜택을 다 누리며 살았다. 아빠가 문턱을 넘지 못해 설움에 가득 찼던 대학도 나왔고, 대학원 유학도 다녀왔다. 내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면 부모님께 반항하고 대들 수도 있었다. 교육과 함께 문화의 혜택도 받았고, 소비의 자유도 어느 정도는 누리면서 살았다.

아빠와 나는 다른 시대를 살았으니까, 그만큼 시대가 빠르게 변했으니까, 우리나라가 그만큼 발전한거니까, 라고 말하기엔 우리 부모님의 노고와 희생을 너무 과소 평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좋은 시대를 타고나 부모님의 값진 노동 활동의 혜택을 받았다고 하면 내 마음이 좀 편해지나? 그것도 잘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온 서로 다른 세계는 내가 어떻게 표현하든 그저 달랐을 뿐이고 아빠와 내가 인생에서 누리며 살아온 것들의 차이를 좁히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내가 주고 받은 교환일기는 내 인생에 아빠의 인생을 겹쳐볼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아빠, 글은 영원히 남는 거잖아. 우리가 이렇게 1년, 2년, 3년.... 같이 오래도록 글을 쓰다 보면 이 일기장을 책으로 출판할 수도 있어요. 아빠 할 수 있지?”


아빠는 흔쾌히 교환일기장에 아빠의 기억과 인생의 기록을 남겨주셨다.


“우리 딸, 브런치 작가가 됐다면서! 우리 딸이 진짜 작가가 된 거야? 자랑스럽네. 아빠 글이 너무 못나서 쑥스럽다. 부끄럽기고 하고......“


나는 아빠의 어떤 글도 부끄럽지 않았고, 아빠가 응원해 줬던 기억 하나로 계속 글을 쓰고, 브런치에도 글을 올린다.


아빠를 글로 기억할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이렇게 우리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고 말이다.


아빠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이렇게 살면서 아빠의 생애와 유전자를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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