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이해하기 위한 한 걸음

아빠는 떠나고 없지만....

by 프로성장러 김양

연말이라 그런가?

올해 있었던 일을 돌아보니 아빠 생각이 정말 많이 난다.


아빠의 부재가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하면서 슬픈 날이 급 늘어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아빠를 떠올리며 펑펑 울었다가 다음 날은 또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기도 한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우리 아빠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입체적인 사람이었다. 평상시에는 그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너무 놀라워서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한 네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할머니와 언니, 내가 나란히 앉아 서로 원하는 채널을 보겠다고 티비 채널을 돌리며 싸우니까 망치로 텔레비전을 부쉈던 적이 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 집은 할머니, 큰아버지, 고모들과 얽히고설킨 일이 많았다. 우리 부모님이 할머니를 모시기로 결정한 날, 나는 강제로 방을 빼앗겼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내게는 당시 기분이 그랬다. 이 모든 일이 나와 어떤 상의도 없이 내려진 결정이라는 사실에 분노했다. 나는 내 침대와 책상이 부모님 방으로 옮겨지는 걸 보면서 내 방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와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뤄진 결정에 반항하자 아빠는 바가지로 내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내 머리에서 플라스틱 바가지가 산산조각 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바가지의 색이 민트색이었다는 것도.

정확한 이유가 생각나진 않지만 언니가 아빠한테 대들었던 적이 있는데 아빠는 언니의 안경이 날아가도록 귀싸대기를 휘갈긴 적도 있었다.

어느 겨울, 엄마가 아빠의 겨울 재킷을 사 왔다. 아빠는 옷의 가격을 듣더니 기함했다. 이렇게 비싼 옷을 어떻게 입냐고 노발대발 소리를 질렀던 기억도 난다. 이 날 두 분은 이혼 얘기까지 오가며 크게 싸웠다.


이 일들은 아빠의 인격을 의심할만했고,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지만 그 사건들이 곧 아빠의 전체를 규정할 수는 없었다. 이 일들이 곧 아빠일 순 없었고, 이 몇 가지 일을 일반화시켜 아빠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저 아빠의 일부일 뿐이었다. 내가 아빠를 떠올렸을 때 오로지 네 개의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른다는 것은 그게 잘 일어나지 않는 아주 특이한 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던 시기, 아빠는 나름의 40대 갱년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힘들다는 부모의 갱년기와 자식의 사춘기가 만난 시기였다.


‘가장의 위엄과 위상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나때는 안그랬는데.....)

‘왜 애들은 내 말을 안 듣지?‘ (나때는 부모 말이 법인줄 알고 무조건 순종했는데.....)

‘내가 힘든 건 왜 아무도 몰라주는 걸까?’ (나도 힘든데......)


아빠는 체력과 정신의 한계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이젠 아빠에게 물어볼 수가 없으니 더더욱 알 길이 없다.

아빠가 살아생전엔 아빠한테 궁금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궁금한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나는 이렇게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아빠와 조금씩 거리감이 생겼고, 어느 순간 완전히 멀어졌다. 아빠의 이상한 행동 몇 개로 아빠를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다. 아빠의 작은 행동과 실수를 아빠의 전체로 봤다. 어른도 분노할 수 있고, 감정조절이나 감정표현이 미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난 너무 어렸다...... 는 의미 없는 변명을 해본다.


모든 가정사가 이렇게 나름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이 덜 아프다거나 더 의미 있다고 할 순 없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에 더 큰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엄마가 들려준 기억과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빠와의 추억 중엔 평생 간직하고 싶은 일들도 있다.


아빠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갔던 기억

아빠가 내 숟가락에 이런저런 반찬을 올려줬던 일

아빠가 김에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을 같이 싸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알려줬던 것

엄마랑 싸운 나를 위로해 준 아빠

내가 유학 중 힘들어할 때 여자도 많이 배우고 성공할 수 있다고 힘을 낼 수 있게 써준 편지 등등


아빠가 자식을 키우며 힘겹게 지나갔을 40대를 나 역시 그때 아빠 나이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이해해 본다.


아빠도 삶이 힘겨울 때가 있었겠지만 우리와 함께 기쁜 일도 많았겠지.

간혹 화도 내고, 분노했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었겠지.

인생은 이렇게 다양한 희로애락을 느끼며 지나가는 거겠지.


이제야 아빠와 내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아빠가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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