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늪
“수경아, 너도 논문만 쓰면 되니까 빨리 써서 박사 학위를 받는 게 어때?”
어느 날 아빠가 뜬금없이 교환일기에 이런 글을 적어놨다.
전혀 아빠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아빠는 본인이 받지 못한 대학 교육에 대해 좌절과 절망이 컸지만 그 욕망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아빠의 장점이기도 했다.
본인에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자식의 삶에 그닥 관심이 없었던 건지, 고학력의 교육 뒷바라지에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이 염려됐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교육에 열을 올리지 않는 아빠가 좋았다.
근데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평소엔 관심도 없던 일인데 죽음이 다가오니까 갑자기 딸이 박사 학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고?
아빠의 죽기 전 소원이라는데 다시 한번 시작해 봐??
아빠가 내 박사 학위를 보기 위해서라도 기어코 잘 살아내도록?
잠깐이지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은 아빠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는 친구 아들 얘기를 꺼내면서 아빠의 나약해진 심리를 부추겼다. 우리 엄마 주변엔 엄친아가 몇 있다. 그 중 하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로스쿨까지 나와 잘 나가는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엄마는 그 엄친아가 이번에 박사 학위를 받아 대학에 강의까지 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축하의 마음도 있었겠지만 배가 아픈 마음이 더 컸다. 그 자리에서 ’내 딸도 박사‘라는 소리를 하고 싶었을 테다. 엄마의 하소연을 들은 아빠가 엄마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내게도 아빠답지 않은 제안을 한 것이었다.
모든 퍼즐이 하나로 껴맞춰지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빠는 평생 남의 말만 듣고 엄마 얘기는 듣지 않았지만 아플 때에는 그렇게 엄마 말만 듣고, 엄마한테 잘해주고 싶어 했다. 나도 이건 보기가 좋았다. 하지만 타인과의 비교로 시작된 엄마의 교육열과 가끔씩은 너무 배가 아파 자식들에게 퍼부었던 분풀이는 사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더 무서운 건 나 역시 무의식 중에 나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면서 나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게 됐다는 거였다. 나는 이 사실을 인지한 뒤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비교의 늪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나는 몇 가지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우리 부모님 시대는 비교의 늪에 빠지기 쉬운 세상이었다는 사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
변하지 않는 사람이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
변하고자 한다면 “타인”이 아닌 “나”를 변화시키자는 것
변하지 않던 사람도 늙으면 조금은 유해진다는 것
우리 부모님 시대에는 친구나 지인, 몇 다리 건너 일어나는 소식을 듣는 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인터넷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가 아닌가!!
근거도 없는 소문이 난무해도 훌륭한 성과들이 친구 아들과 딸을 통해 너무나도 잘, 유독 크게 보이던 때였다. 몇 다리만 건너도 엄친아와 엄친딸이 넘쳐났다. 다들 잘 나가는데 내 자식만 못난 것 같아 보일 때마다 자식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갈구는(?), 심지어 사랑의 매(?)를 휘두르기도 했던 때였다. 자식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시대였다. 자식의 성적표가 곧 부모의 성취로 간주되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타인과 비교하면서 쉽게 절망의 늪에 빠지는 누군가를 구하진 못한다. 하지만 인정하고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동시에 나 자신은 절대 그런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래서 이제 엄마가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엄마의 기대치를 채워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말은 내게 그닥 큰 힘이 없다. 엄마도 이제는 엄친아 스토리로 쉽게 절망의 늪에 고꾸라지진 않는다. 그저 신세한탄 비스무리한 한 두 마디 정도 내뱉는 게 전부다. 마지막엔 꼭 “우리 딸들도 잘났는데 뭐!” 같은 위안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이런 레퍼토리의 엄마가 이젠 조금 귀엽다. “사람 진짜 안 변하네” “근데 우리 엄마 좀 유해지긴 했네” 하면서 말이다.
엄마도 이렇게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
나는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며 엄마의 세상도 이해해 본다.
엄마가 하는 비교와 강요(?)는 절대 엄마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그건 엄마가 하는 말의 일부일 뿐이고, 엄마의 다양한 인격 중 아주 사소한 하나에 불과하다.
“너가 예민한 아이였는데 엄마가 세심하게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 엄마는 이제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성숙한 엄마가 됐다.
“엄마도 그때는 최선을 다 한 거 알아요. 난 이제 엄마, 아빠 안 미워해....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운 거밖에 없어.... 미안하다며! 미안했으면 된 거지 뭐!!“
나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엄마, 아빠도 나를 키우며 행복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 부모님도 나처럼 자식이 웃으면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아 보였을 거고,
아이가 좋아하면 더 큰 마음으로 좋아했을 터였다.
급식이 맛없다 하니까 기꺼이 도시락도 싸주던 엄마였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나는 반찬을 죄다 사서 싸주는데 우리 엄마는 다 직접 만들어주시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도시락을 싸주는 게 어디냐, 생각하며 매우 당당하다. 이게 나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내게 해준 것들은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해주는 것만큼이나 과분하고 감사하고 따뜻한 것들이었다.
이제 나는 부모의 마음을 안다.
가시 돋친 말속에도 사랑이 있었음을 알고, 부모님이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것도 안다.
이렇게 부모님의 세상을 이해해 본다.
내가 사는 세상과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도 생각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가끔은 최선에 짓눌려, 혹은 에너지가 부족해서, 마음에 없는 말을 던지며 화를 낼 때도 있지만, 그건 그저 나약한 인간인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고,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엄마, 고맙고 사랑해요.
아빠, 너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