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모독과 관심 표현은 종이 한 장 차이

병신아, 빨리 타라고!

by 프로성장러 김양



인격 모독의 잣대가 있나요?

네, 있어요!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 겨우 몸을 구겨 넣었다.

휴, 간신히 탔다,

다행이다,

아이 픽업에 늦진 않겠네,

생각하며 안도하고 있는데 나보다 조금 늦게 할아버지 한 분이 뛰어 온다.

할머니를 밀어 넣고, 억지로 본인의 공간을 만든다.

그런데 문이 닫히지 않을 것 같다.

할머니가 다음에 타자며 내린다.

할아버지가 소리친다.


“병신아, 빨리 타라고!"


나는 이 말이 나를 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분이 나쁘다.

이런 종류의 말을 평생 듣고 살았을 할머니가 가엾기도 하다.


이건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인격을 모독한 걸까?

나는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떤 행동이나 말로 인해 상대의 기분이 나빴다면 그건 인격 모독이라고 인권센터에서 알려줬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욕을 듣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어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이 할아버지를 저지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한테 그러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글쎄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나서면 할아버지의 화를 돋우는 꼴밖에 되지 않을걸 알기에 그저 그 상황을 바라본다.

무엇보다 내가 뭐라든 할아버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에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렇게 지하철 문이 닫히길 기다린다.




나의 전 직장 상사는 쌍시옷 욕을 자주 쓰는 사람이었다.


"그년 ㅆㄴ이네"

(차마 그 단어를 내 손꾸락으로 적지도 못하겠다)


그의 마음에 안 드는 여자는 모두 “년”이었고, “ㅆㄴ”으로 간주됐다.

어느 날 그런 욕을 그만 듣고 싶어졌다.

이제 욕은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더니 그가 매우 의아해했다.

“ㅇㅇ씨한테 한 욕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그럼 저도 박사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ㅆㄴ이라고 욕해도 되나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우리는 타인에게 다른 타인의 욕을 맘껏, 쌍시옷 욕을 써가며 해도 되는 걸까?

그는 어려운 상사 앞에서도 그런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상사를 겨냥한 욕이 아니니까?



이런 미친 x

진짜 미쳤....;;



내가 당시 상사에게 들은 말을 친한 사람들에게 전하면 나의 사람들은 내 앞에서 시원하게 욕을 날려줬다.

그렇다면 이건 인격 모독일까?

아니, 나는 내입장을 이해해 주고 나를 대신해 그를 욕해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비슷한 욕인데도 내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이렇게 욕의 단계는 내가 다른 사람과 어느 정도로 친밀한가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본적인 상식선을 지키고 예의를 차리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나는 친한 사람이 나와 한마음으로 누군가를 같이 욕해줄 때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상사가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을 욕할 땐 기분이 나빴다.

별로 관심도 없었고, 듣고 싶지도 않은 욕이었다.

지하철에서 처음 본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ㅂㅅ”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서도 기분이 매우 나빴다.


같은 욕인데 왜 내 기분이 이렇게나 다른가?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친밀도와 당시의 상황, 욕의 강약 정도 등등 많은 것들이 얽혀있기도 하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어떤 건 관심 표현이자 공감의 표시인데, 어떤 건 인격 모독이 될 수 있다.

회사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항상 경계하고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은 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의 기분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회사에서 부하직원에게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하고자 한다면?

같은 말을 상사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못할 것 같다면 그 말은 참는 게 좋다.

선을 지키자.

상사가 먼저 나서서 모범을 보이자.


자꾸 내 기준에서 선을 넘는 말을 하는 상사와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이라면?

한두 번 정도는 참아주자.


비슷한 상황과 말이 반복되면?

예의를 갖춰 얘기하자.

“이러이러한 말은 듣기가 불편하니 삼가 주세요”


그런데도 안 고쳐진다면?

더 높은 상사에게 얘기하자.


그래도 개선이 안되면?

인권센터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직장이면 증거를 잘 모아서 신고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만약 이런 장치조차 없는 회사라면?

빨리 더 나은 곳을 알아봐서 나가자.

그런 직장은 다닐 가치가 없고, 그런 상사와 계속 일하면 진이 빠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업무에 지장이 생기고, 일상생활까지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 수 있다.


“쟤는 괜찮다는데 너는 왜 그래? 네가 예민한 거 아냐?“

이런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마시라.


세상의 모든 인권이 하나의 잣대로 평가될 순 없어도,

인권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해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내가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다”면 그게 인격 모독이다.



상사를 인권센터에 신고했어요.



나는 전 직장을 퇴사하면서 남욕을 일삼았던 상사를 인권센터에 신고했다.

“직장 내 괴롭힘 인정”도 받았다.


세상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회사를 나서며 행동으로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아 기쁘다.

그때 내가 받았던 상처를 떠올리며 사내에서 누구에게든 말조심을 할 수 있어서 그것도 좋다.

정말 유익하고 좋은 교훈을 얻은 셈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예의를 갖춰 선을 긋는 법도 배웠다.

그걸로 족하다.


이건 분명 한 번은 해 볼만한 일이었다.

결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진 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정면돌파를 해본 나는 이제 피하기를 더 선호한다.


어디서든 인격 모독이 일상인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

그런 사람이 상사라면 언제라도 그만둘 결심을 한다.

피 터지게 싸우면 뭐 하나,

결국 피해자만 만신창이가 될 텐데.....


아,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좀 더 쉬운 길이 좋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욕하는 할아버지도 그냥 모르는 척 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를 다 실현하면서 살 수 없다는걸 알게된 덕일까?

그냥 나이가 든걸까?

모르겠다.

이유가 뭐든 나는 내게 주어진 제한적인 에너지와 시간을 최대한 아끼고 중요한 일에 써야 한다.


다시 인격 모독 상사와 일하고 있는 경우로 돌아가보자.

안전한 장치가 마련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막돼먹은 상사와 일하고 있다면 “신고” 역시 고민해 볼 만한 일이기도 하다.

현 직장이 좋고, 계속 다니고 싶은데 오로지 한두 명의 상사만 문제라면 제도의 도움을 받는 일도 한 번은 해볼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이 역시 힘든 만큼 배우는 것도 많다.


하지만 어차피 그만둘 직장이라면?

진지하게 고민해 볼 만한 일이다.

"신고"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상황과 의지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제로 전 직장을 퇴사하고, 신고한 게 알려지면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여러 번 받았다.

내 상사만 이상했던 게 아니구나, 생각하니까 마음이 더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내 경험과 느낌을 최대한 상세하게 공유해 줬다.

내가 가해자를 직접 상대하고, 진술서를 쓰고, 신고하고, 조사받으면서 당시에 느꼈던 감정까지 말이다.


글을 쓰며 내가 겪었던 일을 돌아본다.

이 경험이 내 삶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뭐든 시간이 지나면 어떤 감정을 선택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도 와닿는다.

나는 “감사”를 선택했다.




고민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연락 주세요.

고민 상담도 해드립니다.

직장 내 괴롭힘 고민 상담을 위한 계정도 따로 만들었어요.


sk.kim158@gmail.com


힘내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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