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슬픔의 변주곡
“엄마, 아빠 MRI 결과 어떻대요?”
“길어야 1년 살 수 있대.....“
“.......”
아빠의 흑색종암 재발과 전이 소식을 처음 듣고 가족 모두 충격에 빠졌던 날이 떠오른다. 때는 2023년 10월이었다. 아빠가 제일 힘들었겠지만 가족 모두 믿기지 않는 상황 속에서 절망과 희망의 감정을 반복하며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좋은 면역 치료제가 있다고 하니 이 약만 잘 듣는다면 3-4년은 버티실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충격과 사실 부정이 이어지다 인정으로 변해갈 때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떤 날 저녁에는 꺼이꺼이 소리 내서 울 때도 있었고, 자다 깨서 멍하니 앉아 조용하게 흐르는 눈물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아빠는 10월 31일부터 3주 턴으로 3회 동안 면역 치료 투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뇌전증, 수많은 검사와 입원, 면역치료 중단 등의 과정이 이어졌다. 아빠는 말할 것도 없이 아빠를 간호하는 엄마 역시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몸과 마음 모두.
아빠의 뇌는, 특히 방향 감각을 지시하는 뇌가 원인이나 이유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부어오르고 있다고 한다. 이제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진통제를 주고 3개월 간격으로 MRI 추적 검사를 하는 것뿐이라고. 이번 결과가 3개월 전과 비교했을 때도 좋지 않아 앞으로 나아지는 것을 기대하기도 힘들다고.
가족의 이런 잔인한 사형 선고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지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아빠, 괜찮아?“
(다행인 거는 아빠는 아직 MRI 판독 결과를 모르신다)
“아빠가 괜찮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조금 힘드네, 미안해...“
정말 기운이 없는 목소리다. 겉모습은 아직도 전혀 환자같지 않은 아빠인데....
“아빠는 환자니까, 당연히 그렇지. 뭐가 미안해.....“
“.......”
“아빠, 나 갈게. 잘 자요. 내일 또 만나요“
이내 고요하게 잠든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려온다. 아빠의 젊은 시절과 나의 어린 시절도 함께 떠오른다. 이렇게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매일매일 행복 키워드를 떠올리면서 즐겁게 살고자 했지만 이렇게 찾아오는 슬픔의 감정도 온전하게 나의 감정임을 받아들이고 싶다.
그저 오늘만큼은.
어떤 감정이든 소화의 시간이 필요한 거니까.
슬픔의 감정이라면 더더욱 그렇고.